SOCIETY
[엘르보이스] 서울 바깥의 삶을 상상하기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서울을 떠나는 것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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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로서의 서울은 과연 지속가능할까? ⓒ Yoon Insung / unsplash
나라고 이주 후의 삶이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뭘 하면서 돈을 벌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여기서든 저기서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면 생활을 지탱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도 줄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비가 줄어든다는 건 필요 이상으로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그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최소한으로 해도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끔 서울에 정착해 이만큼 살고 있는 게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20대 후반,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한 후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이 도시의 일원이 됐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낮이나 밤이나 아름다운 한강, TV에서나 봤던 유명한 공간들, 그 밖의 수많은 가능성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니. 서울에서 아는 얼굴들이 이만큼이나 늘었다니. 문제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버티듯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달에 드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통장에 남은 돈, 앞으로 벌어야 할 돈을 비교하며 초조해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쩔 수 없이 캘린더를 꽉꽉 채울 정도로 해내고, 그러다 보면 정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은 활동에는 사용할 자원이 남아 있지 않은 생활이 지겹다. 처음 서울에 왔던 때는 그게 곧 끝날 임시적 삶의 방식이라 예상했는데, 40대를 눈앞에 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 미래를 바꿔보기 위해 이주를 결심했다. 다른 지역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무작정 이주를 결정할 수 없어서 지난해 말부터 마음 맞는 친구와 다양한 곳으로 탐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말이 탐방이지 현실적으로 시간을 길게 내기 어려워 보통 1박 2일, 길어도 2박 3일 정도의 여행이다. 방문한 지역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기보다 그곳과 겨우 안면을 트는 시간인 셈이다.

서울을 떠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개별적인 고민과 이유가 필요하다 ⓒ Tuan.P / unsplash
목포와 대전, 공주는 각각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고, 나는 각각의 지역에 갈 때마다 빠르게 그곳에 반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곳이 좋았는데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주를 머나먼 언젠가의 일이 아니라 곧 닥쳐올 일이라고 생각하자, 현실적인 고민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탓이다. 지금 하고 있는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이주해서도 지속할 수 있을까? 대학원 졸업까지 1년이 남았는데 이건 어떻게 한담? 서울에서 KTX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가야 하지 않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어야 뭘 해도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할수록 중심은 내가 아니라 ‘돈 벌어 먹고살 수 있는 가능성’이 됐다. 모든 사람이 더 적게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애초에 이주를 고려했던 이유인 ‘적은 노동으로도 유지 가능한 생활’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주 후 바뀌게 될 삶이 미리 겁나서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움직이려는 게 아니라 단지 서울을 벗어나겠다는 각오만 있으며, 그것만으로는 훌쩍 떠나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지역에 대한 짧은 체험이나 막연한 환상으로는 서울의 인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주를 결심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서 가끔 서울 생활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나,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는 행동파인 나에게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서울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서울에서 되도록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러나 여전히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에 대한 가능성도 놓고 싶지 않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다른 것에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살고 싶은 곳과 살고 싶은 삶의 모순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단 이곳저곳을 계속 다녀보려고 한다. 서울보다 더 강한 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길 곳을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란 기대를 품으면서.

「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황효진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글 황효진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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