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인공지능 시대에도 아날로그 시계가 필요할까?
인공지능이 일상 언어가 된 세상에서 아날로그 시계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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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다시 시작한 수영에 재미를 붙이면서 스마트 워치를 즐겨 착용한다. 새벽 수영으로 옮기면서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스마트폰 기상 알람은 물론이고 수면 시간까지 측정해 주는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잤다. 요즘 스마트 워치는 방수 기능도 좋아 수영할 때 착용하면 킥판부터 자유영, 평영, 접영까지 몇 분간 몇 미터를 오고 갔는지 기록해 주니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 시에도 필수다. 그뿐인가. 여러 앱에서 알려주는 알람부터 전화까지 스마트폰과 멀리 있어도 놓치지 않는 장점이 있어서 업무에 요긴하다. 시계 업계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시계를 구입해(1960년대 기계식 수동 시계부터 실리콘을 적용한 고진동 기계식 시계, 건전지를 교환하는 쿼츠 시계) 때와 장소에 따라 골라가며 착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스마트 워치까지 가세한 것이다. 스마트 워치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2015년으로 돌아가보자. 삼성, LG에서 먼저 스마트 워치를 내놨지만 그해 애플 워치가 세상에 나오면서 시계 업계는 또 한 번 파장이 일었다. 이미 전통 기계식 시계시장은 1970년대 쿼츠 무브먼트의 출현으로 80% 이상 도산하는 쿼츠 파동을 겪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부품 수를 줄여 대량생산이 가능했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태엽을 자주 감을 필요 없이 몇 년에 한 번씩 건전지만 교환하면 되고, 기계식 시계처럼 하루 몇 초가 아닌 1년에 몇 초 오차가 날 정도로 정확했다. 모두 쿼츠 시계에 집중한 결과였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 기계식 시계는 소수의 브랜드와 독립 시계 제작자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나갔고, 1990년대를 지나 2000년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각을 알려주는 도구에서 주얼리처럼 때에 따라 바꿔 차는 패션 액세서리로, 역사와 전통 있는 공예품으로서 시대에 맞게 가치가 달라졌다. 그렇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기계식 시계와 이미 자리 잡은 쿼츠 시계로 양분된 시계시장에 전자식, 그것도 미니 컴퓨터라 할 수 있는 스마트 워치가 출현했으니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바젤 월드, 국제고급시계박람회 등에서 여러 시계 회사 대표는 ‘앞으로 기계식 시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공통 질문에 답변해야만 했다. 그들은 “스마트 워치는 전자 기기일 뿐 시계와 다르다” “자주 충전해야 하고 방수 성능이 떨어져(당시에는 오랜 시간 방수가 안 됐다)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소모품” “시간을 알려주는 여러 기기의 보급으로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다 습관이 되면 다른 시계, 고급 시계 쪽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일부 회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르마니 · 마크 제이콥스 등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시계를 생산했던 파슬 그룹은 2015년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생산하던 미스핏을 인수해 스마트 워치 생산을 예고했고, 프레데릭 콘스탄트 · 브라이틀링 · 불가리 등은 아날로그 다이얼에 스마트폰 앱과 연결할 수 있는 칩을 심은 하이브리드 시계를 내놓기도 했다. 2015년 당시 LVMH 그룹에서 시계 부문 총괄과 위블로 대표를 역임했던 장-클로드 비버(Jean-Claude Biver)는 초기 스마트 워치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그해 바로 인텔 · 구글과 파트너십을 발표했고, 태그호이어 · 위블로 · 루이 비통에서는 지금까지 커넥티드 시계라는 이름으로 고가의 스마트 워치를 생산하고 있다. 리치몬트 그룹에서는 몽블랑이 시곗줄에 끼우는 기기로 시작해 스마트 워치를 내놓고 있고, 스와치 그룹에서는 스와치 페이까지 탑재한 모델을 출시했다. 이런 열풍도 잠시, 최근 시장은 다시 아날로그 시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샤넬 · 루이 비통 · 불가리 등 패션과 주얼리 브랜드까지 자체 제작 무브먼트 생산에 돌입하는 등 시계 생산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팬데믹을 거치며 전통적인 시계는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압도적인 시계 매출 1위 롤렉스를 비롯해 파텍 필립 · 오데마 피게 · 바쉐론 콘스탄틴 등 전통적인 시계 브랜드의 엔트리 레벨 격인 스틸 소재 스포츠 시계는 구매 대기자 목록에 올리기도 힘들어졌고, 일부 중고 시계는 공식 판매가격의 2~3배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한두 개도 아닌데, 왜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까? 이미 언급한 대로 가치 영역이 확장됐기 때문이다. 우선 시계가 시간 계측 도구에서 최상의 공예 기술로 만든 예술품으로 자리 잡았다. 귀금속과 에나멜, 조각, 보석 세공 등 여러 공예 기술이 총망라된 시계는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됐다. 한정판, 인기 제품을 ‘잘 구입한다면’ 추후 환금성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 소유할 수 있다. 스마트 워치는 신제품이 자주 나와 기본적으로 2~3년, 길게는 5년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쿼츠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는 50년 이상, 기계식 시계는 100년이 지나도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1000만 원 이상의 고가 시계만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다. 몇십만 원의 아날로그 시계도 관리를 잘하고,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대를 이어 소유할 수도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올해 아날로그 시계의 성장세는 살짝 하향세다. 여행이 재개되면서 보복 소비가 줄었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플렉스 소비도 시들해지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니, 메타의 라마, 네이버의 클로바 등 회사마다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드는 시점에서 아날로그 시계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두 세계는 각자의 방식대로 지속할 것이고, 결국 만날 것이라는 결론이다.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생산되던 스마트 워치는 케이스 지름 40mm 전후의 크기에 교체 가능한 스트랩, 사파이어 글라스와 티타늄 소재 등 전통적인 시계와 닮은꼴로 변화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아날로그 시계시장은 티타늄부터 그래핀을 포함한 카본 등 신소재부터 재생 스틸과 골드, 페트병 등을 재활용한 스트랩과 부피를 줄인 케이스 등 탄소발자국을 감소시키는 친환경 소재의 사용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하이브리드 시계는 스마트 워치처럼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 문제가 있지만, 언젠가 반영구적 아날로그 시계에 칩을 결합하고 새로운 칩으로 교환 가능한 단계까지 진화한 시계가 나오지 않을까. 파텍 필립이나 오데마 피게 등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이 시계 청소나 분해 주기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에 질문을 던져봤다. ‘AI는 디자인을 개선하고 제조 과정을 자동화하고 품질관리를 강화해 더 나은 시계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답변했는데, 이조차 어느 누군가의 글에서 기반했을 것이다. 시간을 말하는 방식은 계속 바뀔 것이고, 결국 태엽과 나사, 톱니바퀴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만들고 조립한 시계는 언젠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속에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한 가치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냄새는 쉽게 잊히지 않기 때문에.
「
시계 입문서 <시계이야기>의 저자이자 시계 전문지인 <시계지식탐구>를 제작하고 여러 시계업체의 직원 교육을 하고 있는 매뉴얼 세븐의 대표. 2015년부터 스위스 고급시계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아카데미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시계업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스위스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GPHG; the 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éve)’에서 심사위원, GPHG 아카데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정희경 대표
」Credit
- 에디터 손다예
- 글 정희경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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