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부엌의 역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유부녀였지만, 주부였던 적은 없었던 지난 3년. 이제야 비로소 자문하게 됐다. 내게 부엌은 어떤 의미를 가진 공간인가?::스페셜에디터, 김자혜, 시골집, 하동, 이사, 시골 생활, 라이프스타일, 건축가, 강성진, 지리산, 둘레길, 엘르, elle.co.kr :: | 스페셜에디터,김자혜,시골집,하동,이사

결혼 후 3년간 나의 부엌살림은 대략 3단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배달의 주부. 두 번째 거대한 한끼. 세 번째, 어제의 반찬. 배달의 주부란 간단하다. 퇴근 후 남편을 만나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거나, 사 들고 귀가하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 다행히 남편과 나는 둘 다 어린이 입맛을 갖고 있었고, 사먹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편리했다. 장보는 시간과 조리시간, 설거지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니까. 당시의 내게 부엌이란, 예쁜 그릇을 사서 보관하는 장소였다.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컵과 접시와 커트러리를 잔뜩 사서 한 짐 들고 들어오면 남편이 묻곤 했다. “우리 혹시 다음달에 카페 오픈해?”두 번째 ‘거대한 한끼’ 시즌은 결혼 후 약 6개월정도 지났을 때 시작됐다. ‘이대로 괜찮은걸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의 체중에 변화가 생기고, 둘 다 어딘가 몸이 안좋아지는 걸 느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you are what you eat)’이라는데, 그렇다면 나는 페퍼로니 피자고 너는 치즈 떡볶이란 말인가! 마음을 다잡고 요리책을 산 뒤 마트로 향했다. (있어보이는 외국재료들 위주로)카트 한가득 사다가 거하게 한 상 차렸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더 거대한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가 쌓였으니까.세 번째 시즌이 되어서야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매일매일 나를 기다렸던 엄마의 소박한 식탁을. 찌개를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쓰고 남은 재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멋진 재료를 잔뜩 사다가 그럴듯한 요리를 하는 ‘이벤트’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식재료를 영리하게 관리해 매 끼니를 마련하는 ‘살림’은 아무나 못한다는 걸. 서론이 길었다. 오늘은 부엌에 관한 얘기다. 이 집을 처음 만난 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부엌이었다. 집에서 가장 큰 문을 가진 가장 넓은 공간이 거실도, 침실도 아닌 부엌이라니. 집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을 부엌으로 사용한 이유는 뭘까. 식탁도, 의자도 없이 커다란 아궁이 두 개만을 둔채로. 공사 전 부엌의 모습. 두 개의 아궁이, 방으로 통하는 문, 툇마루쪽으로 음식을 내어주는 작은 미닫이문이 보인다. 이 집이 지어진 건 70년 전. 그 시절,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낮에 밭에서 마련한 식재료로 직접 저녁 식사를 마련하는 단순한 삶. 형광등 밑에서 야근하느라 저녁을 거르는 일이 없는, 내 식구 식사를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맡기는 일이 없는, 일상적인 임무에 충실한 생활.부엌, 그리고 끼니에 대한 생각은 집 공사를 하는 동안 숙소생활을 하면서 더 깊어졌다. 부엌이 없는 방 한칸에서 지낸 다섯 달의 시간. 부재는 존재를 실감하게 하는 법. 내 주방에서 만들어 먹는 한끼의 식사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하루 세끼를 모두 밖에서 사 먹어 보니, 알게 됐다. 있는 반찬 꺼내 먹던 나의 비루한 집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숙소생활동안 우리의 부엌. 커피 머신과 커피잔이 전부였다. 익지도 않은 아보카도를 잘라 예쁘게 사진찍어 SNS에 올리는 건 가짜다. 진짜 부엌은 제철 음식을 담백하게 조리하는 지혜와 성실에서 시작된다. 진짜 부엌살림은 예쁜 말이 그려진 (가보지도 않은) 북유럽풍 행주를 사는 게 아니다. 낡았지만 하얀 행주를 매일 삶아 쓰는 헌신이다. 내가 만든 나의 첫 부엌은 담백하게 꾸미고 싶다. 남편보다 못한 요리실력을 가졌지만, 매 끼니 애쓰고 싶다.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남에게 맡겨두었던 나의 일상을 되찾아 올 때가 바로 지금이니까. 그 일상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른곳이 아닌, 이 작은 부엌에서 시작될 테니까. 서까래 끝 지붕을 확장한 부분. 이 부분이 부엌으로 꾸며진다. 조적(벽돌쌓기)를 마친 모습. 목공과 도장, 타일 시공 후의 모습. 조명과 싱크, 마루 시공 후 완성된 부엌.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