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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을 고치겠다고?

처음엔 몰랐다. 우리집을 고쳐 줄 전문가를 찾는 일, 그것이 내맘에 꼭 드는 결혼상대를 찾는 일만큼이나 어렵다는 걸! 파트너를 찾는 데에만 두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프로필 by ELLE 2016.05.05



집을 구했으니, 이제 사람을 구할 차례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지인찬스를 써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도면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아 서울에서 살다가 몇 년 전 귀촌한 제주 이민자였다. 그녀가 설계와 공사 감리를 맡기로 하고, 함께 시공 업체를 찾아 나섰다. 1번 후보는 면사무소 근처에 위치한 작은 건축소 사장님. 현장에서 만나 한참의 미팅 후 집으로 돌아간 그는 연락이 없었다. 어렵게 연결된 통화에서 퉁명스러운 거절의 말을 들었다. 그 짧은 통화는 이후 이어진 길고 긴 거절 릴레이의 시작이었다.



집을 구한 뒤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미지 맵을 만드는 것. 집의 본래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짠 지인의 도면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이미지맵을 꾸며보았다.



지역 시공업체 대표들을 수소문해 여럿 만났지만, ‘흙집의 틀을 살려야 한다‘는 우리의 대전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술자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오래된 집을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낫다는 것. 흙집을 고치는 일은 티도 안나고 힘이 들어 하고싶지 않다는 거였다. 우리의 욕심이 과했던 걸까.


하지만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를 마음을 떠올려보면,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었다. 툇마루에 가만히 앉으면 느껴지는 수십년 세월을 견딘 나무의 질감. 마당 너머로 펼쳐진 풍광만큼이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간의 따스함. 수십번의 계절을 꼿꼿하게 버틴 기둥들. 나는 그걸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우리가 도보여행중에 만났던 신축 한옥들을 떠올려 봐. 아무리 큰 돈을 들여 아름답게 집을 짓는다 해도 세월을 견딘 이 집처럼 만들 순 없어.” 설사 공사중에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몇 개의 기둥만 남게 된다 해도, 난 그 편이 좋았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것들. 반질반질해진 툇마루와 세월을 견딘 기둥들.



차가운 거절에 무뎌지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해가 바뀌었다. 함께하기로 했던 지인도 등을 돌리고 떠났다. 허망하게 남겨진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꽃은 피었는데 집은 없는 우리. 영화 <카모메 식당>을 오랜만에 다시 보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저 언니는 저 타국에서 시공업체를 어찌 구해 식당을 고쳤을까? 대단하다. 부럽다. 훌쩍.”


어느날은 화개장터 근처를 지나다가 꽤 멋지게 리모델링한 미용실을 발견하곤 불쑥 들어가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구루뿌’를 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두 할머니 사이에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 사장님, 공사한지 얼마 안되셨나봐요. 누가 고쳤어요?” 서울여자의 어리숙한 여우짓. 하지만 그 미용실을 고친 젊은 목수도 현장 미팅 후 연락이 끊겼다. 이번엔 근처 대도시로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 딱 봐도 듬직해 보이던 창원의 목수아저씨, 억대의 외제차를 끌고 나타난 진주의 잘나가는 업체 사장 등등. 결과는 모두 꽝. 현장미팅때 의욕넘쳐보이던 이들은 돌아가는 즉시 연락두절이었다.


그러던 중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한 건축가를 알게 됐다. 얼마전 서울 쌍문동의 40년된 낡은 주택을  구해 고쳐 살고 있는 사람.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글들. 하지만 서울에 사는 건축가가 시골 작은마을의 흙집에 관심을 보일까? 멀고 거대한 북이라고 느껴졌지만, 우리는 일단 두드려보기로 했다. 일단 두드려 그 소리를 가늠해보자! 집 사진과 대략의 설명을 이메일로 보내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한 문장. “흥미로운 프로젝트네요.”


낡은 흙집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제주이민자와 툇마루, 카모메 식당, 구루뿌, 외제차, 웹서핑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우리의 시도를 ‘흥미롭다’ 여기는 한 사람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지난 가을, 40년된 주택을 리모델링한 건축가 강성진(건축사무소 틔움(TIUM), 디자인랩 오사(5osa.com)).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건 그의 프로필이 아닌, 그의 집 사진이었다. 리모델링 전과 후, 알리샤 하우스 외관.



집고치기를 준비할 때 읽었던 책들
<착한 집에 살다>, 쓰나가루즈, 휴, 2015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오미숙, 포북, 2013
<작아도 기분좋은 일본의 땅콩집> 주부의친구 편집부, 마티, 2011



to be continued...



Credit

  • WRITER & PHOTOGRAPHER 김자혜
  • EDITOR 채은미
  • ILLUSTRATOR 김참새
  • DIGITAL DESIGNER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