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음식'과 '그릇'에 궁합이 있다!

사람도 음식도 ‘그릇’이 중요하다.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채우는 것의 미학.

프로필 by ELLE 2013.12.06

 

서울에 처음 아메리카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길 무렵, 친구들과 자주 갔던 체인 레스토랑이 있다. 맛보다 추억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건만 식사 내내 느낀 어색함은 이루 설명할 길이 없다. 이제 와선 도저히 입을 수도 간직할 수도 없는, 유행 지난 셔츠처럼 촌스러운 플레이팅을 뒤로한 채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또 내겐 오랜 전통의 단골 식당도 있다. 그중엔 지저분한 분위기(하나로 통일된 컨셉트와 거리가 먼 인테리어)가 걸리긴 해도 한결같은 맛의 요리가 투박한 그릇에 담겨 나와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곳, 장인이 만든 맛과 어울리는 담음새를 갖춘 곳도 있다. 하나같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맛과 적절한 수준의 플레이팅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험상 음식의 담음새와 공간의 분위기는 음식의 본질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트렌드에 힘입어 불 같이 유행하던 음식도 어떻게 먹는 사람에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임팩트의 파장이 달라지는 걸 무수히 목격한 바, 아마도 정성껏 만든 음식을 식욕이 생길 정도로 잘 표현하는 게 플레이팅의 관건이 아닐까 한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평소 먹는 음식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담아보곤 하는데, 어느 순간 나만의 ‘보는’ 눈이 생겼다. 플레이팅 하나로 식재료의 표정(사람처럼 채소와 과일도 저마다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만드는 과정의 레이어(요리의 레서피가 순서대로 머릿속에 연상된다), 먹는 시간과 장소의 분위기, 먹는 사람의 기분까지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순수미술을 공부한 뒤 주로 페인팅 작업을 해온 내겐 시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음식을 장식하는 데도 많은 부분을 색으로 표현하는 게 익숙하다. 흥미로운 건 특정한 색엔 특정한 맛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있고, 거꾸로 맛에도 특정한 색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붉은색, 노란색 등 밝고 선명한 계열의 색은 식욕을 자극한다. 음식 자체가 가진 생동감이 크기 때문이다. 녹색과 갈색은 안정감과 더불어 채소와 곡물에서 연상되는 건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에 근거해 녹색, 붉은색의 채소, 과일을 사용한 샐러드는 오일 드레싱으로 윤기를 더하고, 검붉은 고기는 보기 좋게 선홍색으로 살짝 로스팅하는 게 나름의 비법이다. 앞치마를 두른 순간부터 재료 본연의 색과 접시에 담겨 나왔을 때의 색의 변화, ‘메인’이라 부를 만한 식재료와 부재료의 조화 그리고 그것을 담는 그릇과의 어울림까지 모두 생각하는 것도 플레이팅에선 중요한 문제다.

 

한편 음식과 그릇의 색 배치에 있어선 음식을 맛있게 보이게 하고 음식이 담긴 그릇의 모양과 색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지는 이른바 ‘후광 효과(Halo Effect)’를 적절히 사용한다. 뜨거운 고기인지, 차가운 샐러드인지, 전채 요리인지, 디저트인지에 따라서 색의 연출과 그릇 선택이 달라진다. 요리에 신선한 느낌을 주기 위해선 무쇠 그릇은 피하고 가벼운 나무 재질이나 밝은 색의 식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 생생한 자연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천연 재료로 만든 식기에 세팅하는 게 유리하다. 아무래도 뜨거운 고기 요리, 생선 요리는 조리할 때 사용했던 무쇠 그릴에 그대로 담아내는 게 한층 더 청각적으로(‘타닥타닥’하는 효과음이 군침 돌게 한다!) 식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식사를 마무리하는 용도인 디저트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질감의 식기가 잘 어울린다. 다른 한편으로 패션의 핵심이 ‘T.P.O’에 있는 것처럼 음식도 때, 장소, 상황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음식을 먹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그릇과 식탁 분위기를 꾸미는 것이 우선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을 포함한 식탁 위에 올라오는 모든 물건의 색, 소재, 형태 등이 시각적인 맛에 포함되며 인테리어, 음악, 창문의 풍경, 빛, 바람의 흐름, 조도, 기온 등 신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먹는 행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이를테면 아이와 노인이 섞여 있는 가족 모임에서는 되도록 부드러우면서도 잘게 썬 형태의 요리로 메뉴를 구성한다. 개인적으로 덜어 먹을 수 있게 앞 접시를 마련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이때 시끌벅적한 분위기보다 각기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최대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해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기호와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과의 프라이빗한 파티엔 테이블 하나 가득 전체 메뉴가 푸짐해 보이도록 플레이팅한다.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을 곁들이는 건 아주 기본적인 팁이다. 음식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즐겁게 나눈다는 것, 플레이팅에서 잊지 말아야 할 건 ‘베이식이 답’이란 사실이다. 기본을 지키면 기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게 답 없는 접시 꾸미기의 거의 유일한 답이다.

 

 

 

who’s he 글쓴이 박세훈은 페이스북에 올린 근사한 밥상 사진 한 장으로 <엘르> 레이더에 포착되어 <엘르> 매거진에 음식 컬럼을 연재 중이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순수미술을 전공. 현재는 붓을 잡던 손으로 신선한 발상의 요리를 직접 만들고 기록하며, 나름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있다.

 

 

 

Credit

  • EDITOR 김나래
  • WRITER 박세훈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