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이라 가능한 일이 있다. 예컨대 오래된 교도소를 호텔로 만드는 일 같은 것. 바로 베를린 칸트슈트라세에 호텔 빌미나(Wilmina)가 실현한 일이다. 19세기에 재판소와 여성 교도소로 쓰였다가 한동안 버려진 건물을 흥미로운 호텔로 탄생시킨 것이다. 나치 시대에는 정치범과 레지스탕스를 가둔 곳이기도 하다. 레너베이션은 그룬투흐 에른스트 아키텍처가 맡았는데 어떤 프로젝트보다 묵직한 방식으로 접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벼움과 개방감,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과거의 흔적을 통합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우리의 미션이었다.” 재판소였던 건물 리셉션에서 체크인하고 객실이 있는 건물까지 긴 진입로를 걸었다. 그리고 나서 높은 담벼락 아래의 삭막한 철문을 밀고 들어서야 하는데, 문을 지나면 잘 가꿔진 코티야르의 안온한 풍경이 무드를 뒤바꾼다. 반딧불 같은 여름 꽃들과 각종 야생화, 터프한 나무 사이로 두터운 벽돌의 색채가 새어 나온다. 고립됐던 반사회적 공간이 비밀스럽고 사적인 은신처로 변모되는 풍경이랄까. 카드 키를 터치하면 모든 문이 스르르 열리는 지금이지만, 옛날엔 이 통로를 걸어가면서 세상과 멀어지는 마음이 어땠을까. 객실이 늘어선 복도와 난간은 교도소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지만, 조명 브랜드 보치(Bocci)의 세라믹 펜던트 램프들이 둥그스름한 빛을 떨어뜨린다.
룸으로 들어서자 외부의 육중한 느낌과는 다른 화이트 주조의 따스함이 감싼다. 담쟁이 식물들이 큰 창들을 뒤덮은 어둑한 조도 속에서도 아늑함으로 다가오는 공간. 침대맡의 작은 창에는 쇠창살이 그대로 달렸다. 옛 감옥의 흔적이다. 두 손바닥 정도의 창문 너머로 세상의 모든 걸 펼쳐내듯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객실은 넓고 고요하다. 칸트슈트라세의 혼성적이고 쾌활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세계로 잠입한 기분이 든다. 어떤 건축가는 디테일을 “눈을 감았을 때조차 좋다고 느껴지는 공간감”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내 오감을 신뢰할 때 발생하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감각일 것이다. 5층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고 루프톱 수영장으로 나갔다. 한낮의 햇볕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이미 몇 명의 투숙객이 자리를 점유한 채 사색에 빠져 있었다. 샬로텐부르크 지역의 붉고 뾰족한 지붕들이 시원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지붕들의 풍경을 바라보는 건 언제나 극적이다. 높은 곳에 올라와서야 만나게 되는 시야는 늘 보상처럼 느껴진다. 찰랑거리는 수영장에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니 몸이 질량만큼 폭포처럼 물은 바깥으로 넘쳐흐른다. 차가움과 알싸함, 하늘과 수평을 이룬 내 몸의 감각이 여름날의 오후를 추억으로 만드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