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운영하는 식물 가게, 큐이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시인이 운영하는 식물 가게, 큐이디

'시인이 운영하는 식물 가게'라는 문장은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ELLE BY ELLE 2023.07.25
 
흰 꽃이 짧은 시간에 피고지는 꼭지윤노리나무는 가늘고 기다란 가지가 특징이다.

흰 꽃이 짧은 시간에 피고지는 꼭지윤노리나무는 가늘고 기다란 가지가 특징이다.

시인과 식물의 시간, Q.E.D. 

‘시인이 운영하는 식물 가게’라는 문장은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그 신비로운 명제가 실재하는 곳이 바로 서교동의 ‘큐이디(Q.E.D.)’다. 지난해 첫 시집 〈스킨스카이〉를 출간한 시인 성다영은 매일 이 조용한 식물 가게의 문을 열고 있다. 그녀가 식물 가게를 시작한 건 3년 전 초여름이었다. 이전에도 식물을 좋아했지만, 가게를 열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큐이디를 함께 운영하는 세미가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잘 키우는 것을 보고 관심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둘이 식물을 정성껏 심고 가꿀 무렵, 그녀는 시 창작 세미나를 위한 자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와 식물이 결합한 공간을 떠올렸다. ‘식물 가게 겸 세미나실’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화분에 식재하며 식물에 묻은 흙을 털고 있는 성다영 대표.

새로운 화분에 식재하며 식물에 묻은 흙을 털고 있는 성다영 대표.

이곳에서는 가게를 열기 전에 그들이 계획했던 것처럼 평소에는 식물을 판매하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시 창작과 편지 쓰기 세미나, 가드닝 클래스를 열고 있다. “비건으로 산 지 5년 정도 됐어요. 그래서 큐이디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도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향을 지향하죠.” 그들은 야생에서 채취한 식물이나 돌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흙도 늪과 습지에서 가져오는 피트모스보다 코코넛 열매를 수확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코코피트를 사용한다. 큐이디의 시그너처가 된 펄 화이트, 청보라, 파스텔 톤의 핑크와 블루 등 색색의 화기 역시 식물에서 추출한 무독성 플라스틱인 PLA를 사용해 3D 프린트로 직접 만든다. 가볍고 컬러플하며 기능적으로도 충실한 화기를 기성품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큐이디 화기들은 56℃ 이상의 온도에서 생분해되는 소재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지만, 앞으로 재활용 소재의 비율을 높여갈 생각이다. 
 
큐이디 쇼룸은 두 면이 통창이라 햇빛이 한가득 든다.

큐이디 쇼룸은 두 면이 통창이라 햇빛이 한가득 든다.

그들이 큐이디의 느낌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식물은 방패처럼 동그란 이파리와 고풍스러운 꽃을 가진 한련화 그리고 기다란 줄기가 만드는 여백의 아름다움을 가진 꼭지윤노리나무다. 둘 다 가지는 가늘고 잎은 여리지만, 생명력이 강한 수종들이다.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상호는 라틴어의 약자로, 직역하면 ‘이것이 보여져야 할 것이었다’란 뜻이다. “수학에서 증명을 마치는 시점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죠. 이 식물 가게에서 이뤄지고 보여지는 모든 것이 그런 느낌이에요. 이게 큐이디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며, 자유롭게 말하고 싶은 거라고 나열하는. 굉장히 거대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매일 거창하지는 않은 것처럼요.” 간판 없는 식물 가게인 큐이디는 앞으로도 쭉 그럴 예정이다. 그들이 증명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될 수 없고,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계속 흐르며 변화할 예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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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정윤주
    사진 맹민화
    디자인 정혜림
    디지털 디자인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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