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익스텐션 테이블과 북 스탠드 그리고 알바 알토 디자인의 스크린 100이 샬롯 페리앙의 메리벨 체어,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611체어와 함께 놓여있다.
볕이 잘 드는 집과 알바 알토의 가구는 궁합이 좋다. 알바 알토가 프랑스에 설계한 빌라 ‘루이 카레’, 아내인 아이노 알토와 함께 지은 집 ‘알토 하우스’처럼. 알토 부부가 거주하던 알토 하우스는 스틸과 철근 콘크리트 구조와 같은 모더니즘 요소와 벽난로, 넓은 폭의 원목 등 전통적 건축자재 등 여러 양식과 소재가 캐주얼하게 섞여 있다. 알토 디자인과 아르텍의 빈티지 가구를 수집해 온 권혁도의 서울 부암동 집도 마찬가지다. “나무가 주는 따뜻함을 좋아해요. 알토 디자인에 심취한 이유죠. 이 집은 선반부터 주방 가구, 화장실조차 다 나무여서 빈티지 알토 디자인을 두니 나무 위에 나무를 더한 격인데, 저는 그 점이 더 좋았어요.”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모으는 일을 좋아한다는 그는 한번 마음에 들면 집요하게 파고든다.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알바 알토의 디자인 철학에서 가전제품 연구원인 자신이 공감하는 지점을 찾아냈다. “가구를 접하면서 제품의 표준화라는 면을 가장 먼저 보게 됐어요. 제품을 표준화하는 일은 그것을 양산할 때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알바 알토는 ‘아트’와 ‘테크놀로지’라는 두 가지 면을 조합해 성공적으로 실현한 것 같아요. 소비자에게 단순히 예쁜 물건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산성 면에서도 좀 더 나은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했다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북 셸프 112b와 파이미오(Paimio) 체어가 어우러진 방. 파란색 스툴은 우드우드(WoodWood)와 협업해 만든 알바 알토의 스툴 60.
수집을 거듭하면서 그는 결국 알바 알토가 ‘엘 레그(L-Leg)’라는 하나의 표준화된 폼을 만들고, 이것의 길이나 크기에 변화를 주면서 제품을 확장한 측면에 더욱 매료됐다. “다리가 주는 특징이 커요. 그 안에서도 다양성을 줘 ‘엑스 레그’ ‘와이 레그’ 등으로 변주하면서 다양성과 품질을 확보했죠. 이 점이 결국 알바 알토 디자인을 믿고 쓰도록 한다고 봐요. 어떤 제품이 시장에 나가서 어떻게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자주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표준화’라는 개념이 특히 와닿았죠.” 지금은 빈티지 알토 디자인으로 가득한 집이지만, 권혁도가 처음 구매하고 사용해 본 알토 디자인은 아르텍에서 생산된 현행 모델의 테이블이었다.
컬러 조합이 산뜻한 LC 3 앞에는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슈 랙(Shoe Rack)’이 있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펄프 회사의 오피스 ‘스토라 엔조(Stora Enzo)’에 있던 것.
“그러다 빈티지 가구 편집 숍 원오디너리맨션에 가서 처음 아르텍 66 체어를 한 쌍으로 구매했어요. 한 종류를 모으고 나니 다른 모델에 또 관심이 갔죠. 빈티지 제품은 현행 모델에서는 보기 힘든 컬러를 가졌어요. 자연적으로 나이 들어간 나무의 색깔을 이길 수 없어요. 한번 빈티지 스툴을 보고 나면 새것 사기 쉽지 않죠.” 그길로 권혁도는 급히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물론 핀란드도 일정에 넣었다.
권혁도의 집. 나무 원목 패널을 붙여 만든 주방 가구를 비롯해 훌륭한 채광까지 어딘지 알토 하우스의 분위기를 닮은 듯하다.
“그때 아르텍이 운영하는 빈티지 숍인 ‘세컨드 사이클’이라는 곳을 처음 알게 됐어요. 별천지였죠. 전 마음에 꽂힌 것은 쉽게 잊지 못하거든요. 여러 번 방문하면서 그곳 매니저와도 친해졌어요.” 권혁도는 조금 더 직선적인 아이노 알토 디자인에도 남다른 진심을 쏟고 있다. 권혁도가 언젠가 수집하고 싶은 궁극의 컬렉션은 아이노 알토의 플로어 램프. 아이노 알토의 제품은 알바 알토에 비해 희귀한 데다 플로어 램프는 더욱 구하기 힘든 편이라고.
아이노 알토는 알바 알토에게 중요했던 시기를 모두 같이 보냈고, 알바 알토가 건축 외관에 집중할 때 인테리어는 아이노 알토가 전담했어요. 빌라 마이레아도 그렇게 탄생했죠.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서 그녀의 디자인을 오히려 더 모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