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음악의 유기적 모멘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패션과 음악의 유기적 모멘트

런웨이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패션과 음악의 상관관계.

김지회 BY 김지회 2023.06.19
 
CHANEL_PARIS HILTONBLACKPINK
가끔 인스타그램 피드를 넘기다 보면 누군가의 선곡표나 심정을 담은 가사를 캡처해 올린 것이 눈에 띈다. ‘난 이런 노래를 들어’라는 것 같은 피드를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무슨 기분인지, 어떤 앱을 즐겨 쓰는지, 좋아하는 장르가 뭔지 꽤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패션쇼도 비슷하다. 쇼를 하는 시기와 장소, 컬렉션 주제와 이미지 등 많은 것이 쇼에 쓰이는 음악과 닿아 있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지난달 잠수교에서 펼쳐진 루이 비통의 2023 프리폴 쇼는 칼바람 부는 날씨와 큰 야외 장소 때문에 쇼가 시작되기 전까지 꽤 부산스러웠다. 하지만 쇼 시작을 알리는 노래는 귀를 번쩍 뜨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바로 김덕수 사물놀이의 호남 농악 가락이 쇼장에 흘러나온 것. 그뿐인가. 뒤이어 “아니 벌써!” 하며 이어진 산울림의 노래는 파란 윈드브레이커에 가죽 스커트를 매치한 정호연의 등장과 함께 분위기를 한순간 경쾌하게 바꿔놓았다. 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참여한 루이 비통 쇼는 김창완의 목소리로 허를 찌르며 현장에 있던 게스트에게 놀라움을 선사했고, 그 분위기는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됐다.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패션과 음악은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라프 시몬스가 프라다에 합류하자마자 콜을 보낸 20년 지기 친구 리치 호틴의 말처럼 이제 패션쇼에서 음악은 쇼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섰다. 팬데믹 이후 강화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패션쇼가 더 이상 소수 인원이 트렌드를 점치는 장이 아닌, 영화나 음악처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감상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ALEXANDER MCQUEENBFRNDRICHIE HAWTINPHARRELL WILLIAMSNIGO
‘플라스틱 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리치 호틴은 쇼 준비 단계부터 미우치아 프라다, 라프 시몬스와 함께 밑그림을 그려나간다. “컬렉션마다 구체적인 주제가 있고, 그 안에서 프라다의 시각적 언어와 음향적 미학이 아름다운 공생관계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쇼 음악을 디렉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도시 곳곳을 누비며 음악 인재들을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인 ‘프라다 익스텐즈(Prada Extends)’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연인이자 소울메이트인 뎀나와 비프렌드는 2017년부터 발렌시아가 특유의 전위적 아이덴티티가 묻어나는 쇼를 완성하고 있다. ‘Sunglasses at night’를 재구성한 발렌시아가 2021 프리 컬렉션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했고, 래퍼 Ufo361과 프로듀서 Sonus030와 협업한 2023 S/S 사운드트랙 ‘Elephant’는 앨범으로 공식 발매되기도 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모델을 무대에 올리는 뎀나의 런웨이에선 비프렌드가 모델로 서는 일도 많았다. 캠페인뿐 아니라 심슨 시리즈나 게임 캐릭터를 선보이는 쇼에서까지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니 둘의 돈독한 교감을 런웨이 안팎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 20여 분간 진행되는 쇼장엔 룩의 포인트를 짚어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만 기술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BFRND, Uf0361 & Sonus030의 ‘Elephant’This Mortal Coil의 ‘Song to the siren’Nigo의 〈I Know nigo!〉’산울림의 ‘아니 벌써’Plastikman의 ‘Inxtro’BFRND의 ‘Sunglasses at night’Kendrick Lamar의 ‘Count me out’
뜨거운 메시지로 마음을 울린 음악도 있었다. 올 초 엘리자베스 여왕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던 2023 S/S 런던 패션위크 동안 쇼는 대체로 숙연했다. 많은 쇼가 여왕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시간을 갖거나 음악 없이 진행됐고, 리처드 퀸은 ‘Song to the siren’을 틀며 스물두 벌의 블랙 룩을 선보여 여왕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했다. 전날까지 룩의 개수가 바뀌고, 쇼 디렉팅에 따라 워킹 속도가 달라져 음악 길이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뜻을 모아 민첩하게 쇼를 선보인 것이다. 고(故) 버질 아블로와 함께했던 음악감독 벤지 비가 그를 추모하는 방식도 남달랐다. 무대 한가운데 스피커를 쌓아 올리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에게 음악을 의뢰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음악을 완성한 것. 루브르박물관에서 진행된 루이 비통 2023 S/S 남성복 컬렉션에선 래퍼 켄드릭 라마가 자리에서 마이크를 쥔 채 신곡 ‘Count me out’을 부르며 나직이 읊조렸다. “버질, 버질, 버질….” 퍼레이드 음악과 함께 축제 분위기로 마무리된 컬렉션이 끝나고 발표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패션계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퍼렐 윌리엄스가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됐기 때문. 그의 친구인 음악 프로듀서 니고가 먼저 겐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세 시즌째 쇼를 선보인 이후였다. 그간 패션과 힙합을 하나의 장르로 엮어왔기에 루이 비통 남성 컬렉션은 그의 영입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KENDRIKLOUIS VUITTONLOUIS VUITTON
한편 다시 활발해진 콘서트와 페스티벌 현장은 또 다른 런웨이의 장이 됐다. 비욘세는 르네상스 월드 투어에서 알렉산더 맥퀸, 로에베, 데이비드 코마, 발망의 룩을 맞춤 제작해 화제가 됐다. 알렉산더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과 비욘세의 스타일리스트가 만난 건 지난 2023 F/W 쇼가 끝난 뒤였다. “저는 그녀의 스타일리스트 시오나 트리니와 의견을 나누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룩을 반복적으로 스케치했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적인 그림에서 영감받은 룩을 그녀를 위한 보디수트로 변형했죠.” 블랙핑크 역시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헤드 라이너로 두 번의 공연을 서는 동안 돌체 앤 가바나, 뮈글러의 룩을 맞춤 제작해 화제가 됐다. 디자이너마다 다른 색깔로 핑크 컬러를 표현해 실키한 소재에 란제리 디테일을 더하거나 절제된 컷아웃 룩을 선보인 것. 이쯤 되면 패션과 음악은 동시대 흐름 안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음악은 패션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패션은 음악을 시각적으로 발견할 수 있게 만드니까. 결국 모든 쇼는 짧은 시간 동안 무대 위의 메시지가 전달되기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다각도로 센스를 발휘해 새로운 컨셉트를 설득시키는 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완성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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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지회
    COURTESY OF CHANEL
    COURTESY OF LOUIS VUITTON
    COURTESY OF IMAXtree.com
    COURTESY OF GETTYIMAGESKOREA
    디자인 김려은
    디지털 디자인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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