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여성영화인모임이 주최하는 '2022 여성영화인축제'가 독립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됐습니다. 축제는 여성영화인모임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한 해 결산을 비롯해, 축제의 꽃과도 같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으로 이루어졌어요. 올해로 23주년을 맞은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은 한 해 동안 활약한 여성 영화인을 조명하는 시상식인데요. 최고상인 올해의 여성영화인상부터 올해 새롭게 마련된 ‘강수연상’, ‘신인연기상’ 등 총 11개 부문에서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은 영화 〈오마주〉의 신수원 감독에게 돌아갔어요. 신수원 감독은 “제 앞에 있는 많은 여성 선배님들이 선구자였다. 그분들을 보면서 영화의 꿈을 꿨고, 그 덕분에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라며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신수원 감독은 중학교 역사 교사를 하다가, 교단을 떠나 영화감독으로 전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녀의 작품 가운데 문근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유리정원〉은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칸 영화제와 베를린 국제 영화제, 도쿄 국제 영화제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옴니버스 영화 〈가족 시네마〉에 수록된 단편영화 〈순환선〉은 제65회 칸 영화제에 초청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최초로 카날플뤼스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올해 개봉한 〈오마주〉 역시 제34회 도쿄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기도 했고요. 한편 지난해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은 영화 〈빛나는 순간〉의 배우 고두심이 수상한 바 있습니다.
공로상은 지난해 뇌동맥류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이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배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영화계의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죠. 아역배우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강수연은 이후 다수의 청춘물을 거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 영화로 스물한 살의 나이에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이후 1990년대에는 영화 〈그대 안의 블루〉를 비롯한 작품에서 도시적인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연기하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이르러서는 솔직하고 당찬 여성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도 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계 발전에 앞장섰죠. 여성영화인 측은 강수연이 지난 50여 년간 한국 영화계에 남긴 유산을 기리고자, 올해부터 ‘강수연상’을 신설했습니다.
올해부터 새롭게 마련된 강수연상의 첫 수상자의 영광은 배우 문근영이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강수연상은 연기, 연출, 시나리오, 제작과 스태프 부문에서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상이에요. 문근영은 항상 닮고 싶었던 우상 강수연 선배님의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는 기쁜 수상소감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한 이후, 올해로 데뷔 23주년을 맞이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단편 영화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를 통해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또 문근영은 과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강수연과의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는 제가 아프고 난 뒤였는데, 제 팔에 있는 흉터를 보시더니 '사람들은 모두 다 너의 연기만 볼 거다, 그러니까 너의 상처는 그 어떤 방해물도 흉도 되지 않을 거다'라고 하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라며, 강수연과 관련된 따뜻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신인연기상은 영화 〈경아의 딸〉에서 전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된 ‘연수’를 연기한 배우 하윤경이 차지했습니다. 그녀는 〈경아의 딸〉 개봉 이후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일 이 세상의 모든 연수들에게 잘못한 게 없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라며, 어딘가에 존재할 연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어요. 지난 6월 개봉한 ‘경아의 딸'은 개봉과 동시에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 전체 박스오피스 9위에 진입한 바 있습니다.
영화 외에도 하윤경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허선빈’ 역과 올해 인기몰이를 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최수연’ 역할을 맡기도 했죠. 2015년 연극으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독립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윤경, 앞으로의 필모그래피가 더욱 기대를 모으는 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