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상적, 아니 치명적인 시네마였다. 제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 막힌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갔고, 영화는 끝이 났는데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던 그 영화는 바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1월 16일 개봉이지만 감사한 기회로 며칠 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VIP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와인 한 병을 비우며 남편과 신나게 대화를 나눴지만, 끝없이 차오르는 이 여운을 글로 남겨야만 할 것 같다. 사랑과 삶을(이는 감상하는 이마다 다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그녀들의 삶 모두 주체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체적으로 선택한 두 여인의 이야기는 응시로 시작해 응시로 끝난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가슴을 가지고 있나?’
‘정해진 삶의 기로에서 용기 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주체적인 선택이란 무엇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그렇게 남겨진 자국이 꽤나 오래가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영화다. 꾹 눌렀다가 뗐을 때 빠르게 복원되는 좋은 메모리폼 침대와는 달리(요즘 수면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이 많다) 좋은 영화는 다 보고 극장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달아오른 심장이 좀처럼 본래의 온도로 빠르게 복원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영화 리뷰에서는 딱 한 문장으로 내용을 요약하고,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고 싶다.

‘그녀 둘은 그림으로 만났고 그림으로 타올랐으며 그림으로 서로를 기억한다.’
한 신 한 신을 떼어다가 낡은 우드 액자에 고이 넣어 침대 머리맡에 걸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인물 간의 감정을 쌓는,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들이 많다. 두 여인 각자의 신분의 벽을 허문, 완벽하게 같은 높이에서의 응시가 여러 번 교차한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간혹 광활한 자연 속과 여인의 모습 등으로 타오르는 가슴을 식혀주곤 하지만 역부족이다. 따라서 영화의 엔딩에 다다르면 숨이 가빠진다. 마치 보는 내가 그 사랑을 겪고 그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장면을 가득 채운 배우들의 표정이 시나리오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엘로이즈 역(아델 에넬)과 마리안느 역(노에미 멜랑), 두 여인의 연기가 압권이다. 개인적으로 엘로이즈의 뾰루퉁한 듯 무심했던 표정에 제대로 반했다. 자전적인 전작들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온 셀린 시아마 감독은 칸영화제 각본상과 퀴어 종려 상을 수상했으며, 여성 촬영 감독 클레어 마통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뉴욕 비평가 협회, LA 비평가 협회, 전미 비평가 협회 촬영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삶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길을 택한 여성들의 용기, 사랑에 바치는 영화”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의도를 100% 아름답게 담은 올해 나의 첫 시네마. 올해 2020년 첫 영화를 이 숨 막히는 시네마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우리, 좋은 영화 같이 봐요.
*김모아 작가의 '무엇이든 감성 리뷰'는 매주 화요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