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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애'의 배우 여정

수애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경험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간다. 시간이 흐르면 이 여인들은 시공간을 넘어 어떤 실로 엮여 있는 한 배우의 여정으로 남을 것이다.

프로필 by ELLE 2012.10.05










인터뷰 시간을 앞당겼으면 한다는 얘길 듣고 달려간 스튜디오. 브라운 톤의 니 렝스 스커트와 니트 톱을 입은 수애는 막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가죽 장갑을 끼던 차였다. 화보 촬영이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동시에 말을 건네기엔 한 발 늦은 상황임을 의미했다. 잠깐의 눈인사. 그리고 한동안 때이른 코트를 걸친 그녀를 목격자로서 방관했다. “수애 씨, 눈빛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요? 뭔가 순하면서도 고혹적일 것 같았는데 매섭게 이글거리는 느낌이랄까요.” 마주 앉은 스태프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조금 전 인사를 나누던 때로 슬며시 시간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기품 있어 보이는 외모는 그대로였지만 기대하던 눈빛과는 좀 달랐다. “재난영화를 찍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막연한 반문. 문득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최우선으로 반응하는 신체 부위가 어디일지 궁금해졌다. 곧바로 교감신경을 통해 가장 먼저 감정의 빛을 발하는 부위는 눈이라는 답도 내놓았다. “작품이 바뀔 때마다 눈빛이 달라지죠. 매섭다, 그런 얘긴 첨 들어보는데 오! 나쁘지 않은데요.”

수애에게 목숨을 건 사투의 장은 비단 얼마 전 촬영을 끝낸 재난영화 <감기> 촬영장만은 아니었을 거다. 생경하게 다가오는 상황과 캐릭터, 새로운 스태프들과의 호흡을 이어가야 하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녀는 어쩌면 재난과 맞먹는 스트레스와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연기할 때 이미 짜인 상황, 내몰린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분출되는 감정들이 있어요.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땐 물론 기분 좋죠. 다만 그 순간을 좋게 표현하면 카타르시스지만 다르게 얘기하면 스트레스라는 이중성이 있거든요. 매 순간마다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게 <천일의 약속>이었어요. 배우로서 얻은 것보단 깨달은 게 많은 작품이에요. 그걸 표현하기엔 아직 서툴지만 스스로에게 든 생각이 많아서 뜻 깊은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주로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은 그 기저에 어떤 고찰이 있었는지를 막론하고 마케팅 포인트나 혹은 가십 거리로 회자된다. 그런 다음엔 경험의 수치에 의미를 부여하며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수애의 경우는 좀 달랐다.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이미지, 두꺼운 장벽을 가진 그녀에게 관객들이 거는 기대는 유연한 변화였고 솔직하게는 ‘여자’였다. “아무래도 많이 두려웠죠. 장르 영화를 선택한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처음 맡은 엄마 역할이라는 점에서 더 그랬어요. ‘엄마? 내가 감히? 어떻게?’라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떠돌았죠. 시나리오를 보니 동선이 딸과 겹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심야의 FM>이 그녀를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딜레마에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면 이후의 드라마들은 그녀의 행보를 이해하게 만든 실마리가 됐다. 니 킥을 스스럼없이 날리며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실감케 한 <아테나: 전쟁의 여신>의 NTS 특수요원 윤혜인과 신경쇠약 직전의 알츠하이머 환자로 진짜 같은 가짜를 실감나게 선보인 <천일의 약속>의 이서연은 수애가 내보인 유연한 반박이었다. 

<감기>를 통해 또 한 번 장르 영화 그리고 엄마에 도전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픈 딸, 그래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딸을 구하기 위해 고분군투하는 상황은 어떤 의미에선 <심야의 FM>과 비슷해요. 하지만 강한 모성애를 표현해야 한다는 건 어김없는 딜레마였죠. 촬영을 마무리할 때쯤 되니까 배우로서 어떤 성취감 같은 게 느껴지긴 해요. 9년간의 공백기 동안 갈고닦은 김성수 감독님의 감성과 열정, 상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이 드는 작품예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다른 모습들이 여전히 궁금하다. 

시간을 늘이고 줄이고 뛰어넘고 이어 붙이면서 만들어지는 영화와 같은 맥락으로 대학 전공 수업을 재개하고 짬짬이 여행 계획을 세우며 더러는 일탈을 꿈꾸고 그 와중에 <야왕>이라는 차기작을 선택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위해 고분군투한다. 시간이 흘러 한 여배우의 여정을 단단하게 채우기 위해, 수애라는 개인적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기 위해.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EDITOR 채은미
  • PHOTO 김영준
  • WEB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