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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 인터뷰 왔다! 자경단은 엘르로 모여라

실없는 폭소가 넘실대던 실리카겔의 아침의 기록.

프로필 by 이마루 2025.09.05
최웅희가 입은 퍼플 & 핑크 컬러 슬립웨어는 Tekla. 김춘추가 입은 폴카 도트 파자마는 2dreamers. 김한주가 입은 옷은 본인 소장품. 김건재가 입은 로열 블루 컬러 슬립웨어는 Tekla.

최웅희가 입은 퍼플 & 핑크 컬러 슬립웨어는 Tekla. 김춘추가 입은 폴카 도트 파자마는 2dreamers. 김한주가 입은 옷은 본인 소장품. 김건재가 입은 로열 블루 컬러 슬립웨어는 Tekla.


멤버들이 입은 옷은 모두 본인 소장품.

멤버들이 입은 옷은 모두 본인 소장품.


김건재가 입은 틸그린 클래식 배스 로브는 Tekla. 김춘추가 겉에 걸친 실크 가운은 2dreamers.

김건재가 입은 틸그린 클래식 배스 로브는 Tekla. 김춘추가 겉에 걸친 실크 가운은 2dreamers.


김한주 • 보컬, 키보드

7월 10일 발표한 신곡 제목은 무려 ‘남궁페페레(南宮Fefere)’다. 이미지에서 파생한 곡명과 가사의 장단점이 분명히 있을 텐데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지, 검색되는지 같은 이슈에 대해 알고는 있다. 다만 그런 걸 계산해서 결정하자니 소모적인 부분이 있고, 그럴 바에는 직관적으로 선택하자는 결론으로 모아졌던 것 같다. 지금 써둔 곡들 중에서 제목이 미정인 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도 이런 추상성을 가져갈지 고민 중이다.

신곡을 함께한 미셸 자우너와의 작업은 어땠나

바밍타이거의 무대 디렉팅 때 만난 적이 있어 DM으로 안부를 물으며 제안했더니 곧바로 수락했다. 데모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공유하고, 녹음을 요청하는 정도의 소통이 오갔다.

오늘 촬영은 해외 투어 중 실리카겔의 숙소를 상상한 느낌이었다. 잠옷부터 헤어핀까지 가져왔는데 원래 준비성이 철저한 편인지

나도, 멤버들도 준비하는 데는 진심이다. 오늘 촬영을 위해 ‘후지록페스티벌(이하 ‘후지록)’에서 돌아오자마자 투어용 캐리어에 넣어둔 걸 다 꺼내고 필요한 것을 챙겨 넣었다.

삼아뮤직의 유튜브 채널 <안국전자음악단>과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실리카겔이 얼마나 원하는 사운드 구현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안정기를 찾은 상태일까

절대적 안정기라는 건 없겠지만 공연 사운드에 한해서는 이렇게까지 만들어낸 것에 대한 보람과 만족은 분명히 있다. 장비를 바꾸면 그 악기에 맞게 편곡도 다시 하고, 몇 년 동안의 공연 데이터를 정리하는 과정도 따른다. 결코 쉽지 않지만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지금 보강한 사운드가 단독 콘서트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8월 30 · 31일 단독 공연 ‘Syn. THE. Size X’를 앞둔 마음은

콘서트가 결정되면 마치 경주마같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다. 빨리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

클래식 영재 교육을 받았다. 진로가 정해졌다는 느낌이 무겁지는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권유로 고전음악 교육을 받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세상살이나 사회적 공감대가 다소 결여된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기에는 많은 이가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고, 다양한 사람과 작업하고 있지 않나. 타인의 기질과 성격 중 김한주가 높게 평가하는 것은

어떤 프로젝트든 내가 일방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로 참여한 적은 없다. 그런 만큼 나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동료들이 좋다. 내가 의견을 던졌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면 나도 조심스러워지니까.

실리카겔을 알아본 팬들이 어떻게 다가와 주길 바라나

사실 길에서든 공연장에서든 대체로 우리를 존중해 주려는 게 느껴진다. ‘No pain’을 듣고 죽겠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말처럼 팬들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느껴지면 그에 마땅한 책임감이 생긴다. 더 열심히 무대에 서고 있다.

노래방에서 제일 많이 부르는 곡 중학생 때도 다들 음악을 공부하는 친구들이어서 내가 라디오헤드의 ‘Idioteque’를 빠른 템포로 틀고 톰 요크처럼 춤추면 마릴린 맨슨 팬인 친구가 ‘Antichrist superstar’의 퍼포먼스를 따라 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인데 실리카겔 곡이 등록됐을 때는 오랜만에 불러봤다. MR을 열심히 제작해 준 게 느껴져 감사했다.

단독 공연을 본 사람들이 어떤 걸 느끼길 바라나

‘너무 좋다’는 표현에 모든 긍정적 감흥이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 ‘좋았다’라는 범위 안에서 각자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면 더 기쁠 테고.





김건재 • 드럼

지난 6월 열린 ‘아시안 팝 페스티벌’ 첫째 날 실리카겔 공연을 마치고 둘째 날에는 시라카미 우즈로 무대에 올랐다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다. 실리카겔의 무대가 드러머로서 완주하는 힘이 필요하다면, 시라카미 우즈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각기 다른 부담이 있었을 뿐. 원래 드럼을 안 치려고 만든 팀인데 결국 여기서도 드럼을 연주하게 됐다(웃음).

밴드 라이브 공연에서 드럼셋은 물리적 불이익이 분명 있어 보인다

확실히 팀 내 어쿠스틱 비율이 크게 차지한다. 갑자기 정전돼도 드럼은 중단되지 않으니까. 사운드적으로도 드럼이 단단하게 지탱해 줘야 하는 면이 있는데 드럼헤드의 스킨이 온습도에 워낙 민감하고, 해외 투어 때는 현지에서 렌털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테크니컬한 연습에 집중했다면 요즘은 점점 복잡하게 악기를 보게 된다.

보컬로서 김건재는 어떤가? 정규 2집 <Power Andre 99> 수록곡 ‘Gosan’에서도 고음이 돋보였다

그때는 보컬 가이드를 쓸 상황이 안 돼 직접 내 노래를 표현해 보고자하는 시도에 가까웠다. 보컬을 하면 확실히 시야가 넓어진다. 다른 아티스트의 실력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

노래방에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나

어릴 때는 ‘담배가게 아가씨’, 애니메이션 <GTO> OST인 라르크앙시엘의 ‘Driver’s high’ 같은 곡도 불렀다. 대학생 때 끌려간 게 거의 마지막인 것 같긴 하다.

김건재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은 곡은

‘Autumn leaves’. 지금도 수천 명은 이 곡을 연주하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 스탠더드 재즈 넘버인데, 한때는 아이팟에 700가지 버전을 넣어 다녔을 정도다.

한 영상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하려고 했는데 그보다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게 더 좋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 적 있다. 요즘 멤버들과 잘 지내는 나만의 방법은

요즘은 있는 그대로 느낀 것을 그때그때 표현하는 게 오히려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서로 싫어하는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가해자들 아닌가 싶긴 하다(웃음).

단독 공연 ‘Syn. THE. Size X’를 앞둔 지금의 각오

공연장인 킨텍스 자체가 소리가 잘 울리는 곳이라 해내야 할 과제가 많다. 구조적 변경보다 라이브에 맞는 형태로 연주를 바꿔보려고 한다.

올해 섰던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플레이타임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 먼 곳의 나무까지 보이던 탁 트인 시야와 풍광이 기억에 남는다. 산속에서 펼쳐진 ‘후지록’도 정말 재미있었다. 아내가 일본인이라 가족들이 청중으로 온 것도 의미가 컸고.

김건재가 했던 가장 큰 도전은

열일곱 살 때 드럼을 시작해서 예술대학에 들어갔지만 이후 오히려 음악에 흥미를 잃었다. 실망감도 있었던 것 같다. 책 읽고, 영화도 질릴 때까지 보고, 재봉틀도 배우고, 미디어아트나 건축 쪽도 찾아보며 음악 빼고 다 했다. 그 시간이 6~7년 정도 되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아 그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

어떻게 음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나

자주 가던 PC방이 만석이면 기다리는 동안 영화를 무작위로 틀어줬다. 어느 날 이소라 선생님의 ‘Tears’ 피아노 반주가 영화 배경음악으로 깔렸는데, 그 순간 내가 노래 듣는 걸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에피소드가 더 영화 같다

실리카겔의 첫 앨범이 나온 게 2016년인데,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훨씬 어른스러워졌다. 예전에는 못하는 걸 피하고, 다른 것으로 때우려 했다면 이제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좀 더 직시하고 있다.





김춘추 • 기타

오늘 촬영은 해외 투어 중 실리카겔의 숙소를 상상한 느낌이었다. 마침 막 ‘후지록’에 다녀왔는데 숙소 실제 풍경은 어떤가

멤버마다 성향이 다른데, 나는 컨디션을 생각해 웬만하면 덜 놀고 호텔에 오래 있는 편이다. 원래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 실제로 겨울이면 파자마를 입는다. 지난해 공연으로 대만을 찾았을 때도 내내 파자마를 입었던 것 같다.

최근 ‘노보 기타(NOVO Guitars)’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음악 키드로서 유명한 기타리스트와 브랜드의 긴밀한 관계를 지켜보며 자랐다. 예를 들어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는 레스폴 기타, AC/DC의 앵거스 영은 깁슨 SG 기타의 상징 같은 느낌이 있다. 평소 빌더의 철학과 방향성이 잘 맞는다고 느껴 주목했던 노보 기타와 함께하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현재 내가 요청한 스펙대로 제작해 보내준 모델 두 대를 갖고 있다. 공연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카더정원> 채널의 ‘스쿨 오브 락’ 무대를 보고 실리카겔이 밴드를 꿈꾸는 10대들의 롤모델이 됐다는 걸 느꼈다

경이롭다. 나도 예전에는 좋아하는 밴드의 유튜브 영상을 띄워두고 찰나에 잡히는 앰프나 이펙트를 참고하기도 하고, 크라잉넛, 노브레인 형님들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거니까.

연주자, 엔지니어, 프로듀서 등 다양한 정체성 중에서 요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요즘은 확실히 A&R에 가까운 느낌이다. 국내에서 받는 사랑도 감사하지만 파이를 키우고 싶다는 동력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활동을 전개해야 하는데 그에 관한 열망을 갖고 있는 게 나와 웅희여서(웃음). 국내 밴드의 해외 진출 레퍼런스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고민인 점도 있다.

작업실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니 기타뿐 아니라 드럼, 키보드, 피아노 등 악기와 페달보드, 이펙터 등 온갖 장비가 많더라

기본적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음악은 사실 라이브와 음원이 다르고, 또 CD와 바이닐같이 물리적 매체로 저장되는 게 또 다르지 않나. 그 과정마다 달라지는 소리와 테크닉, 방법 등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때로는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20대 초의 김한주는 김춘추의 집에 ‘기생’했다고. 그게 어떻게 괜찮았는지

사실 좋았다. 학교 근방에서 자취하던 중 자연스럽게 대학교 친구들이 같이 사는 것처럼 어울렸는데 그 시간이 엄청 생산적이었다. 합주도 하고, 곡도 쓰고, 좋아하는 걸 교류하고, 서로 배우면서.

실리카겔 네 명 모두 비슷한 시기에 입대해 제대한 2020년 싱글 <Kyo181>을 발표하며 복귀했다. 군 공백기까지 고려한 것이 마치 BTS 같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입대 시기를 정한 건 맞다(웃음). 2018년 초 활동을 정리하고 입대할 때 아쉬움은 있었지만 차라리 다 같이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우리가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렬한 목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싱글 프로젝트 놀이도감의 김민수로도 활약 중인 김춘추가 노래방에 간다면

중학생 때를 돌아보면 김동률 선생님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종종 불렀다. 우리 내부적으로 이적파와 김동률파가 꽤 나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실리카겔 공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Tik Tak Tok’의 김춘추 기타 솔로다. 솔직히 힘들 때는 없나

무대 위에서 힘들 때는 없다. 설령 힘들더라도 연주하는 시점에는 그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다음에 뭘 하면 좋을지다. 항상 다음 스텝이 뭔지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서.




최웅희 • 베이스

‘후지록’에서 막 돌아온 참이다. 평소 해외 투어 풍경은 어떤가

보통 공연을 마치면 우리끼리 돌아보기도 하고, 흥분감에 장난을 치기도 한다. ‘후지록’은 워낙 기대가 컸다 보니 내 연주 자체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많은 관객이 열광해 줘 약간 황홀했다. 올해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무대 위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상대적으로 즐기면 되는 포지션인 것 같다. 베이스가 돋보이는 구간이 있긴 하지만 솔로 연주 대서사가 있는 다른 멤버에 비하면 플레이가 조금 편하달까. 관객과 함께 흥분하며 즐긴다.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던 ‘2023 MMA’ 당시 긴장한 나머지 대기실에서 춤추는 모습이 포착됐다. 긴장한 이유는

이제야 말하면 긴장한 건 핑계고, 그냥 춤추고 싶어서 춘 거다. 춤추면 즐겁지 않나. 보는 사람도, 추는 사람도.

노래방에서도 춤출 수 있는 노래를 부르나

노래방처럼 소리를 제약 없이 내지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부르기 힘든 곡을 부른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Painkiller’ 같은.

최웅희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은 곡은

아무래도 비틀스다. 스탠더드라는 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현대음악은 결국 비틀스가 정리해 놓은 공식에서 시작되지 않나. 평생 듣지 않을까?

실리카겔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등 영상 작업도 활발하다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을 꼽자면 당연히 ‘Ryudejakeiru’지만, 얼마 전 베이시스트 멀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는데 여러 시너지 효과로 의도가 120% 잘 담긴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영상을 만드는 데 예산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채 웅희최 널>에 ‘Silicagel Awesome Moments’도 업로드 중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 재미있고 좋은 그림이 많은데, 그런 장면이 그냥 사라지는 게 아쉽더라. 처음에는 캠코더,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틈틈이 만들고 있다. 최웅희 취향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나 음악을 제외하면 어릴 때부터 해온 축구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승부의 연속인데 그 메커니즘을 축구를 통해 계속 공부하게 된다. 실력으로 밀릴 때는 또 다른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거나.

단독 공연 ‘Syn. THE. Size X’를 앞둔 마음은

아마 실리카겔 사상 가장 웅장한 쇼가 될 것 같다. 이전부터 꾸준히 작업해 온 송기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공연 전반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 정규 2집부터 이어오는 스토리의 마지막 퍼즐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지.

“음악은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고 말한 적 있다. 그 마음은 변함없나

전업 뮤지션이라면 평생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런데 뭐든지 진지하게 임해서 결과를 내고 싶다면 마냥 재밌을 수만은 없다. 축구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그냥 이런저런 감정이 오가는 걸 즐기는 중이다.

실리카겔을 상징하는 표식에서 ‘Pillowy(폭신폭신한)’를 맡고 있다. 본인 기질을 잘 표현한 단어 같은지

김건재(Connective), 김한주(Firm), 김춘추(Strict), 최웅희(Pillowy)로 나뉘어 있지만 우리 네 명 모두 그런 면모를 갖고 있다. 살다 보면 이 넷 중 내가 제일 착하긴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은 들지만.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사진가 하태민
  •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창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김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