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오함마'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 이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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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오함마'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역사적 의미가 부여된 이유

18선 하원의원, 미국 최초 여성 하원의장, 권력 서열 3위, '구찌 장갑을 낀 강철 주먹'.

라효진 BY 라효진 2022.08.04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정세는 몹시 혼란해졌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공공연히 탈세계화 기조를 내비치는 중입니다. 이미 지구촌이 된 세상에서 나라 문을 잠그고도 살아 남으려면 나라가 커져야겠죠? 러시아가 야욕을 드러내자 중국도 슬금슬금 대만을 압박하는 모양새입니다. 세계경찰 미국이 이런 상황을 좌시하진 않겠죠. 사건 하나만 터지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초긴장상태입니다.
 
 
8월 들어 미중 갈등이 고조된 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아시아 순방이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등 미국 우방국을 방문하기로 했는데요. 여기에 대만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 거죠. 민주주의 국가 하원의장이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 가는 건 그다지 어색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 양안 관계를 생각하면 미국 고위 인사의 대만 방문은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예요. 양안은 서로를 불법 국가로 간주하거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힘이 세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 대만을 자국의 지방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와는 국교를 맺지 않는다고도 했죠. 즉, 중국을 패싱하고 대만과 별개로 교섭하는 건 대만을 온전한 국가로 지지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중국이 적당히 반응하고 넘어갔다면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될 일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건 시진핑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 땅을 밟자 "미국은 대만으로 중국을 제압하려는 시도를 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끊임없이 왜곡하며 대만과의 공식 왕래를 강화해 대만 독립과 분열 활동을 뒷받침했다"라며 "이건 매우 위험한 불장난이다. 불장난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라고 강한 어조의 성명을 냈어요. '불장난 하면 타 죽는다'라는 표현은 지난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 말이기도 해요. 중국의 강경 인사는 의장이 탄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도 있다며 펄쩍 뛰기도 했고요. 올 가을 시 주석의 3연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모습이네요.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으로 가는 도중 대만해협에 전투기를 보냈고, 대만 사방을 둘러싸고 군사 합동 훈련을 했습니다. 또 실탄 사격을 동반한 훈련도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실탄 훈련은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후에 실시되죠. 미국도 필리핀해에 항모를 띄웠습니다. 주고 받은 말만 봐서는 대만이 열두 번은 더 불바다가 됐겠지만 결국 실제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애매한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대만에선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 건물에 'Thank you', 'Speaker Pelosi', 'Welcome to TW(대만)', 'TW ♥ US'라는 메시지를 띄워 의장을 버선발로 맞았습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 훈장인 '특종대수경운' 훈장을 낸시 펠로시에게 수여했고요.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눈썹 하나 깜짝이지 않고 일정을 수행 중인 미국 권력 서열 3위의 펠로시 의장. 그는 워싱턴DC에서 '구찌 장갑을 낀 강철 주먹'이라 불립니다. 이는 USA투데이의 워싱턴 지부장이자 낸시 펠로시와의 대담을 책으로 펴낸 수전 페이지의 표현이죠. 아버지도 하원의원 출신에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골수 민주당 집안에서 태어난 펠로시 의장은 무려 18선 하원의원,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입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는 상징적인 사건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라고 적은 플랜카드를 흔들었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있고 2년 후인 1991년의 일입니다. 당시 중국 계엄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노동자와 시민들을 죽였습니다. 1991년은 그 아수라장을 본 사람들이 침묵해야 했던 시기입니다.
 
리틀빅픽쳐스

리틀빅픽쳐스

 
첫 번째 하원의장 재임 중이던 2007년에는 마이클 혼다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하고, 만장일치 통과에 기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배경이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채택 당시 낸시 펠로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만나기도 했죠. 이후에도 지금까지 낸시 펠로시는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 범죄에 대한 일관적 입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엄청나게 사이가 안 좋기로도 유명한데요. 잘 알려진 두 사람의 기 싸움은 2020년 하원 본회의장에서 일어났죠. 당시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국정 연설을 하게 됐는데요. 연설 전 연설문을 낸시 펠로시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줬습니다. 이때부터 펠로시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트럼프는 펠로시의 악수를 무시했어요. 연설이 끝나자 펠로시는 연설문을 박박 찢었습니다. 펠로시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셧다운 지역 미용실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는 트위터에 "미친 낸시 펠로시"라고 적으며 조롱했고요.
 
 
의원 재직 중 주식 거래로 돈을 벌고 남편이 음주운전을 저지르는 등 비판할 부분이 없는 인물은 아닙니다. 82세의 고령인 데다가 민주당 '고인물 끝판왕'이라 당 내부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낸시 펠로시는 이번 아시아 순방 중 대만 방문도 그 불도저 같은 성격에 힘입어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군요. 무려 25년 만의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입성을 이토록 요란하게 성사시켰으니 말이죠.
 
 
펠로시 의장은 대만 일정을 마치고 3일 밤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대학로 연극 관람 후 배우들과 뒤풀이를 하며 환담을 나눴다고 합니다. 대만에선 총통, 한국에선 국회의장, 일본에선 총리를 만나고 돌아가게 되겠네요.
 

#요주의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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