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이 만든 루이스 폴센(Louis Poulsen)의 ‘PH5’ 펜던트 조명이 매달린 다이닝 공간. 한가운데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디자인한 카시나(Cassina)의 ‘사르피(Sarpi)’ 테이블이 놓여 있다. 식탁을 둘러싼 나무 의자는 엔초 베르티(Enzo Berti)가 디자인한 ‘유미(Yumi)’ 체어로 칸타루티(Cantarutti) 제품. 새빨간 사이드보드는 부부가 직접 라 보테가 델 팔레냐메(La Bottega del Falegname)에 의뢰해 맞춤 제작했다.
거실에 모여 앉은 다비드 바레리와 노혜민, 그리고 부부의 딸 가에.
“이 집을 구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건축가 다비드 바레리(Davide Barreri)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트 디렉터이자 세트 디자이너인 아내 노혜민(Hyemin Ro)과 함께 그가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정착한 것은 수년 전.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바쁘게 일하던 아티스트 부부는 당시 18개월이던 딸 가에(Gae)와 함께 세 가족이 정착할 장소를 물색 중이었다. “족히 서른 곳은 둘러본 것 같아요. 손봐야 할 곳이 많긴 했지만 이 집을 보는 순간 확신이 들었죠.” 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평화로운 동네 분위기. 시내 중심까지 자전거로 10분밖에 걸리지 않으면서 포(Po) 강과 도라 리파리아(Dora Riparia) 강이 맞닿은 곳에 자리한 이 아파트라면 완벽한 휴식이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여기에 거실 발코니로 나가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는 토리노 전경과 또 다른 창문으로 보이는 그림 같은 알프스산맥까지, 이 다채로운 풍광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부부는 1960년대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 구조를 본격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 했다. “첫 번째 원칙은 자연광이 어떤 장애물과도 부딪히지 않고 집 안 가득 스며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공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인테리어로 유명한 건축설계회사 플락(PlaC)의 공동창립자 다비드가 입을 열었다. 부부가 추구한 것은 칸막이를 최소화한 오픈 플랜 스타일의 인테리어. 천장 높이의 슬라이딩 도어를 활용해 개방감을 더하고, 벽 대신 컬러플한 슬라이딩 커튼을 설치해 때에 따라 공간을 숨기거나 완전히 드러내며 연극적인 효과까지 불어넣었다. 노란 커튼을 걷으면 아늑한 서재가 나타나고, 파란 커튼을 치면 주방의 크고 작은 수납장이 순식간에 가려지는 식. 이런 접근방식은 유쾌하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개성 가득한 보금자리에서 부부가 가장 아끼는 아이템은 식탁. 베네치아 출신의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가 1970년대 초에 디자인한 카시나(Cassina) 제품이다. 팔각형으로 재단된 유리 상판이 특징인 이 식탁이야말로 바깥 풍경뿐 아니라 어느 좌석에 앉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테리어를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소라고 다비드와 노혜민은 입을 모았다. 식탁 주위로는 60~70년대에 탄생한 이탈리아 가구, 클래식한 멋을 품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가구와 모던한 실루엣으로 맞춤 제작한 가구가 눈에 띈다. 서로 다른 미학을 자랑하는 가구를 관통하는 유일한 특징은 강렬한 컬러. 빨강과 파랑, 노랑의 원색 팔레트를 중심으로 그린(주문 제작한 거실 책장), 핑크(화장실의 비스포크 세면대), 오렌지(아이 방 벽지) 컬러를 가미해 한층 생기 넘치는 세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혜민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인테리어에는 결코 끝이 있을 수 없어요. 집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신하고 진화하는 존재니까요.”
가운데 놓인 카시나의 ‘슬레드(Sled)’ 소파는 거실에서 몇 안 되는 뉴트럴 컬러의 아이템으로 짐머 앤 로드(Zimmer+Rohde)의 컬러플 쿠션으로 생기를 더했다. 벽에 걸린 커다란 사진 작품은 노혜민이 스타일링하고 사진가 마티아 발사미니(Mattia Balsamini)가 촬영한 것.
취향이 느껴지는 사물로 가득한 커피테이블은 부부가 맞춤 제작했다.
심플한 무지(Muji) 침대 위에 파치니(Fazzini) ‘스쿼(Squaw)’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넥타르(Nectar)’ 베드 스프레드로 재미를 더한 안방. 화장실은 안방에 딸린 샤워실과 세면대가 놓인 또 다른 공간으로 분리해 효율성을 높였다.
안방의 한쪽 모퉁이에 딱 들어맞도록 맞춤 제작한 초록색 미니 책상. 벽에 걸린 밀짚 머리 받침은 다비드와 노혜민이 디자인했다.
바깥 전망을 인테리어 요소로 적극 활용한 디바드와 노혜민의 집.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가장자리에 각종 쿠션을 놓아 안전한 놀이 공간으로 꾸민 딸 가에의 방. 방 전체에 깔린 러그는 펌 리빙(Ferm Living), 파란 장식이 대롱거리는 ‘탱고(Tango)’ 모빌은 플렌스테드 모빌스(Flensted Mobiles) 제품이다.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가장자리에 각종 쿠션을 놓아 안전한 놀이 공간으로 꾸민 딸 가에의 방. 방 전체에 깔린 러그는 펌 리빙(Ferm Living), 파란 장식이 대롱거리는 ‘탱고(Tango)’ 모빌은 플렌스테드 모빌스(Flensted Mobiles)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