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데뷔 이후 드라마 32편, 영화 16편. 연극 빼고도 48편이에요
함께 일하는 회사 본부장님과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이래서 무섭고 저래서 무서운, 자주 망설이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다르긴 해요.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죠. 우리에겐 많은 작품을 해봐야 쓸모가 생긴다는 전략이 있었어요.
원 버튼 수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Dior Men. 스니커즈는 Converse.
화이트 레더 트렌치코트는 Bottega Veneta. 팬츠는 Jacquemus. 이너 웨어로 입은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초조함을 느끼기도 했나요. 하루빨리 더 알려지고 싶달지
초조하지는 않았어요. ‘나 그렇게 미운 사람 아닌데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하지?’ 하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극중 악역을 맡으면 미움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관객들, 시청자에게 어떤 이미지 하나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아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로 다작했는데 요즘도 촬영 전에 밥이 안 넘어간다면서요
왜 이럴까요? 좀 어려워해요, 카메라를. 어쩌면 그래서 겨우 이만큼 펼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어릴 땐 무척 패기 있게 했는데, 이제는 카메라에 어떻게 보여야 맞는 건지 자꾸 생각하게 돼요. 경험에도 양면이 있더라고요. 더 능숙해지기만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끼는 부분도 생겨요. 그런데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들 있잖아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지는 사람들. 그렇게 본능적으로 하는 분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는 아직 지식을 쌓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언젠가는 연기가 체화되면 좋겠어요.
배우 이학주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걸요. 이런 경험은 어때요
긴장돼요. 새롭고. 사실 화보 촬영은 어려워요. 익숙하지 않으니까.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이야기한다는 것도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요.
독립영화 〈밥덩이〉를 시작으로 경력의 방점을 찍은, 본인에게 가장 어려웠던 역할로 〈부부의 세계〉에서 맡은 인규 역을 꼽은 적 있죠. “내가 싫어하는 인간이라서”라는 이유가 인상적이었어요
가치관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보는 이 인물에 내 가치관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서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다가 처음으로 동물을 떠올린 거예요.
‘굶주린 하이에나’요. 인규의 어떤 면이 가장 싫었나요
나에게 왔다는 점(웃음)? 왜 나에게 와서 그렇게 큰 시련을 준 건지….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어요. 그 사람을 나쁘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도 싫었고. 착한 면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냥 너무 미친 애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미쳐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건 또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강약 조절이 힘들었죠.
〈부부의 세계〉 속 인규 역과 만난 이후로 배역에 동물을 빗대어 접근했어요. 〈공작도시〉에서 불의에 민감한 보도국 기자 한동민은 강아지라 생각했죠. 동민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도 잘 맞는 연결이라 느껴져요. 이학주는 언제 본능적으로 움직이나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 관해서는 좀 그런 편이에요. 제 일에는 아니고요. 그런데 동민이도 마찬가지죠. 사건을 취재할 때 본능적으로 움직이는데, 취재 자체는 동민의 일이지만 자신에 관한 건 아니니까.
화이트 슬리브리스 셔츠와 레이어드한 셔츠는 모두 Séfr. 타이는 Haider Ackermann. 그린 벨티드 팬츠는 Beluti. 블랙 슈즈는 Paul Smith.
베이지 컬러의 트러커 재킷은 Kimseoryong.
브라운 카디건과 이너 지오메트릭 패턴의 슬리브리스 톱, 벨트는 모두 Prada.
〈공작도시〉 속 인물들 사이에 숨은 의외의 관계성을 극의 매력으로 꼽기도 했어요. 작품에서 조금 다른 포인트를 읽더라고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이하 〈이상청〉)는 어땠나요
감상자로서는 정치물을 재미있게 보는데, 막상 제가 하려면 어렵고 두렵게 느껴졌어요. 〈이상청〉은 재미있고 쉬웠어요. 정치는 신념과 투쟁의 서사로 알았는데 〈이상청〉에는 생활감이 있었죠. 생활에서 통제하지 못해 생긴 여러 사건을 해결해 간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보좌관 역할을 해야 하니 도서관 가서 검색 란에 ‘보좌관’이라고 쳐서 나오는 책을 읽으면서 준비했어요.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에 출연했을 때, 칭찬 같은 걸 들으면 얼굴이 굳더라고요
쑥스러운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생경한 경험이어서… 익숙해질지는 모르겠네요. 계속 그런 관심을 줄지 모르니까요. 모두의 오해일 수도 있어요.
그런 말 몇 번 했죠. 자신에 대한 관심이 오해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미션이 생겼어요. ‘오해가 아니었네요’라는 걸 보여줄 수 있길 바라요.
대학에서 연극영화학을 공부했어요. 수능 점수로 입학했고, 연기 전공을 하려고 진학한 것도 아니라면서요. 입학하고 보니 연기가 학문적으로 재미있었던 건가요
머리로는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2학년 때 처음 연기 수업을 받아봤는데 피가 확 돈달까,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긴장감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너무 못했지만 그 느낌이 기억에 남았고, 군대 가서도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에이, 모르겠다’며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웠어요. 그러다 4학년이 되고, 졸업 후에는 토익 학원에 등록했고요(웃음). 토익 학원 다니다가 돈이 없어져 필름 메이커스 같은 데 지원해 영화를 찍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토익 학원은 또 빠지고….
이학주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독립영화 〈12번째 보조사제〉를 촬영한 때가 그 무렵인가요
비슷해요. 그 영화를 계기로 여러 기회가 생겨 지금까지 달려왔어요. 그때부터 5년은 두려움 그 자체였어요. 참여한 작품의 촬영 분량이 많지 않아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5년을 했어요. 대사 외우는 것도 힘들고, 배우라는 직업과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했죠. 그때마다 회사 본부장님이 “너는 잘할 수 있다”면서 멘탈 케어를(웃음)…. 저는 많은 분에게 영향을 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저를 캐스팅해 준 많은 감독님도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역할을 맡겼는지 모르겠어요. 집에만 있는, 그릇이 작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든 키워주려고 도와준 분들 덕분이죠.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나 봐요. 잠재력이 명백히 보였든가
연기로 자신의 어떤 면이 완전히 변하거나 영향을 받은 경험이 있나요
악역이라는 걸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해봤거든요. 연극영화과를 다니긴 했지만, 그땐 아무도 제게 악역을 시키지 않았고 저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죠. 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내 지점을 누군가 발견하고 만들어준 거잖아요. 그걸로 이름도 알리게 됐고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죠.
화이트 레더 트렌치코트는 Bottega Veneta.
니트 베스트는 Sandro Homme. 이너 웨어로 입은 셔츠는 Tod‘s. 와이드 팬츠는 From Arles. 슈즈는 Paul Smith.
악역과는 반대로 처음부터 꽤 자신 있던 배역이 있을지
아니요, 상업 작품으로 처음 찍은 게 〈무뢰한〉이에요. 단역이었죠. 웨이터 성철. “조심히 들어가십시오”라는 대사를 쳐야 하는데 그걸 열두 번인가 찍었어요. 타이밍도 모르겠고, 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촬영 전까진 어쩌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뒤로 촬영장이 항상 공포였어요. 이젠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조금 더 긴 대사도 소화할 수 있게 됐죠. 자신 있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도 어떤 일을 지속하는 데는 일말의 자기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달지
누군가 작품이 괜찮았다고 이야기해 주면 큰 동력이 돼요. 물론 그러지 않아도 계속 열심히 했었죠. 지금 회사와 계약을 5년 했거든요. 어쨌든 5년 동안 결과가 어떻든 간에 성실히 해봐야겠다. 그냥 그 마음으로 했어요.
많이 무던해요. 그런데 너무 웃긴 조합이죠? 겁 많고 예민하고 촬영장에서는 카메라를 많이 의식하는데 무던하다니.
수줍고 겁 많은 사람이 어떤 힘으로 계속 자신을 선보이는 걸까요
정말 좋은 영화나 드라마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때 되면 한 번씩 보고 싶은, 그렇게 여러 번 보게 되는 작품이 있잖아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아, 그리고 요즘 저에게 기이한 일이 하나 생겼는데요.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가 조금…. 팬클럽이 생겼거든요.
그분들이 저를 정말 좋아해주시는 게 신기하고 감사해요. 어안이 벙벙해요. 그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늘 합니다.
지금까지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가 요즘 조금 쉬고 있어요. 아침 되면 강아지 모카가 절 깨워요. 이렇게 막 가슴팍을 앞발로 긁어요. 밥 달라는 거죠. 모카 밥을 주면서 일어나요. 요즘 권투를 시작했거든요. 여력이 되면 권투하러 갔다가 점심 먹고 또 오후나 저녁에는 모카와 산책 가요. 또 책을 보려고 노력해요. 주로 소설을 읽어요. 최근에는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를 e북으로 샀어요. 편하더라고요. 가끔 일기도 씁니다. 별로 쓰지는 못했지만.
네, 5일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못 쓴 날이 더 많아요(웃음). 노트 비싼 거 샀거든요. 몰스킨. 열심히 써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