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지도 않을 운동화를 수백만원 주고 살까?_돈쓸신잡 #25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왜 신지도 않을 운동화를 수백만원 주고 살까?_돈쓸신잡 #25

수집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다.

김초혜 BY 김초혜 2021.12.23
18년 전 일이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15만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거래는 남부터미널역 국제전자상가 인근에서 이뤄졌다. 내 생에 첫 운동화 직거래가 성사된 날이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 물물거래를 하는 건 왠지 두려웠지만, 별일 없이 ‘쿨거래’를 마쳤다. 그날 구매한 신발은 나이키 맥스95다. 품절된 제품이기에 개인 거래로만 구할 수 있었다. 그 신발의 밑창이 뜯어질 때까지 열심히 심었다.    
 
이처럼 운동화 리셀 시장의 역사는 길다. 20여 년 전에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나이키 운동화를 사고파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개인들이 신발을 사고파는 행위는 대중적이지 않았다. 소위 말해 ‘신발 덕후’들만의 소소한 문화였다.  
 

급성장한 리셀 시장  

@virgilabloh

@virgilabloh

이제 운동화 리셀은 더 이상 소수의 문화가 아니다. MZ세대의 놀이수단이자 짭짤한 재테크로 급부상했다. 수익률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리셀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리셀테크’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인기 있는 운동화는 발매가 대비 리셀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기도 한다. 나이키가 한정판 운동화 구매권을 추첨으로 뿌릴 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다. 신발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 없지만, 오직 재테크 차원에서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추첨에 계속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운동화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리셀만을 위해 이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이 얄미울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근 세상을 떠난 버질 아블로 역시 생전에 리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리셀 문화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버질 아블로가 세상을 떠난 직후 ‘오프화이트X에어조던1’ 등 그가 디자인한 한정판 신발 가격 역시 급등했다.  
 

17억짜리 운동화  

Michael Jordan, gettyimages

Michael Jordan, gettyimages

리셀이라는 현상에서 주목해야 할 건 신발을 파는 리셀러들이 아니다. 프리미엄을 수백만 원까지 지불하면서 이 신발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 중 상당수는 운동화를 사놓고 신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장식장까지 마련해 신발을 전시한다. 신발을 예술품처럼 다룬다. 실제로 어떤 신발은 전통 예술품 이상의 지위를 누린다. 마이클 조던이 경기에서 신었던 농구화는 소더비 경매에서 17억원에 낙찰됐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간편하게 이 본능을 충족하는 방법은 아무나 갖지 못하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자들이 주식을 사고 부동산을 사다가 결국 마지막에 예술품을 사들이는 건 ‘희소성’이라는 상징이 그들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상징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얼마든지 지갑을 연다.  
 
기존 예술 시장에 비하면 아직 한정판 스니커즈 시장 규모는 작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신발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구식이다. 전 세계 미술품 경매업계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이미 스니커즈를 하나의 예술품 카테고리로 다루고 있다.  
 

신을 수 없는 신발까지 품절  

올해 초 RTFKT 라는 패션 브랜드에서 한정판 스니커즈를 팔았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7분 만에 600켤레를 팔아 35억원 수익을 냈다. 그들이 판 신발은 독특하다. 절대로 신을 수 없는 신발이다. RTFKT는 가상 운동화를 파는 브랜드이다. 운동화를 구매한 사람들에게 NFT(대체불가토큰)를 제공하며 소유권을 보증한다. 말 그대로 ‘상징’ 그 자체를 파는 셈이다. 실제 스니커즈와 달리 NFT 운동화는 이것을 보관해야 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 없다. 도둑맞을 위험도 없으며, 관리 소홀에 따른 손상 위험도 없다. 시간이 지나도 낡지도 않는다. 또한 거래하기도 간편하다.  
 
최근 한 거대한 기업이 거금을 들여 RTFKT를 인수했다. 바로 나이키다. 나이키는 왜 가상 운동화 브랜드를 품었을까. 나이키는 신발과 옷을 파는 기업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이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다. 이런 지위를 누리는 기업들은 강력한 팬덤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최근 나이키는 세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 세상 안에 ‘나이키랜드’를 세웠다. 여기에 NFT 운동화까지 인수했으니, 나이키가 그리는 큰 그림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향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오프라인과 가상현실 두 곳 모두에서 동시에 성장할 것이다. 수집은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다. 
 

'돈 되는 쓸모 있는 잡학 사전' #돈쓸신잡 더 보기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