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몇 년 전 함께 산 여름 가방을 안 들고 다니길래 어쨌느냐고 물었더니 온통 곰팡이가 피어서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고 한다. 재활용 수거함도 아닌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꽤 고가에, 일하는 데도 딱 좋았던 가방이라 듣기만 했는데도 아쉬움이 컸다. 나 역시 보관을 잘못해 떠나 보낸 소품들이 많이 있다. 악어가죽 가방은 항공 수하물에 넣었다가 제대로 찌그러져 두 번 다시 원형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장마에 신은 에스파드리유(Espadrille)는 진흙에 젖고 밑창 올이 다 풀려버렸다. 특히 덥고 습한 여름철 잘 쓴 모자, 가방 등 소품은 이듬해까지 고스란히 보관하기가 꽤 까다롭다.
「 라피아· 이레카 ·토퀼라 야자 소품들은 습기와 중력이 적
」 해외여행은 못 갔어도 국내 여행 트렌드와 폭염이 맞물려 리조트 패션이 유행한 여름이었다. 헬렌카민스키의 라피아(Raffia) 소재 모자, 로에베의 이레카 야자(Iraka Palm) 소재 가방 등 판매가 호조를 보였고 도심에서도 챙 넓은 모자로 뜨거운 햇볕을 차단한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을 나들이에도 어느 정돈 써도 되지만 슬슬 내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일 년간 보관하려면 먼저 더러움을 최대한 없애야 한다. 말 털, 돼지 털 등 소재로 된 부드러운 구둣솔 등으로 섬유 사이사이의 먼지를 잘 턴다. 다음 눈에 보이는 큰 가루는 핸디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도 좋다.
라피아 야자, 이레카 야자, 토킬라 야자(Toquilla Palm), 삼(Hemp), 대나무 등 천연 식물 섬유 소재는 세탁할 수 없다. 삼은 물에 젖는다고 강도가 떨어지진 않지만, 세제와 마찰에 소품 전체의 형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 동안 땀, 피지, 화장 등이 묻지 않도록 곱게 써야 하는데 부득이하게 묻었다면 70% 이상 알코올을 손수건에 묻혀 살짝 눌러 닦는 정도가 한계다. 브러시에 묻혀 모자에 문질러 닦아내는 모자 클리너를 직구로 구할 수 있지만, 섬유가 젖도록 너무 많이 쓰거나 세게 문지르면 그 또한 결과적으론 좋지 않다. 모자 안에서 크라운 형태를 유지하고 머리 둘레의 땀을 흡수하는 라이너가 천 소재면 그 뒷면에 키친타월이나 타월을 대고 앞은 중성세제를 약간 푼 물에 적셔 짠 타월로 눌러 더러움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시판되는 착탈식 모자 라이너도 있어서 착용을 시작할 때부터 덧대어 교체해 가며 쓰면 깔끔하다.
완벽하게 물기를 말린 후 종이 등 통풍이 잘되는 소재 상자에 두꺼운 종이를 지름이 모자 크라운과 맞게 원통형으로 말아 넣고, 크라운을 그 안에 거꾸로 넣어 챙이 위로 가도록 한다. 크라운이 상자 바닥에 닿으면 안 되며 챙은 내년에도 쓰고 싶은 모양으로 형태를 잡아야 한다. 돌돌 말 수 있는 라피아 소재 모자들도 말지 말고 완전히 펼친 상태로 보관한다. 얇은 종이를 구겨 크라운 안과 챙 아래를 채우고 곰팡이 방지제, 흡습제 등을 넣는다. 뚜껑을 덮어 집안에서 가장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한다.
「 일부가 가죽인 소품은 가죽 부분만 맞춤 관리
」 여름 가방은 가죽과 식물 섬유를 함께 쓴 게 많은데 두 부분을 완전히 따로 관리해야 한다. 조금 잔인하지만, 가죽이 어떤 동물의 어느 연령대인지, 어떻게 가공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내구성으로 유명한 프라다 사피아노 가죽(Saffiano Leather)은 단단한 풀 그레인(full grain) 소가죽에 철망 모양으로 무늬를 찍고 왁스 가공까지 해 가죽 클리너, 크림 등으로 닦을 수 있는 대표적 소재다. 하지만 샤넬 클래식 백에 흔히 쓰이는 부드러운 양가죽은 물과 기름 모두를 빨아들이고 진한 색 옷에서 이염되기도 쉽다. 양가죽 전용 클리너가 있지만, 검정처럼 진한 색에, 어느 정도 가방을 쓴 다음에 사용해야지 새것이나 다름없는 밝은색 가죽에 쓰기엔 얼룩이 생길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이레카 야자 보디에 송아지 가죽으로 끈과 장식을 단‘아나그램’바스켓 백, 로에베.
가방의 가죽 부분만 닦을 때는 식물 섬유나 천 부분에 클리너나 크림이 닿지 않도록 마스킹 테이프를 살짝 붙여 두는 것도 좋다. (식물 섬유 부분 청소는 모자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 좋은 가죽을 사용한 가방은 어떤 가죽인지, 관리법은 무엇인지 구매 시 설명서가 동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관할 때는 가방 형태가 온전하도록 종이나 천으로 내부를 채우고 손잡이가 벌어지면 손수건 등으로 묶어 고정한다. 더스트 백에 넣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똑바로 세워 보관한다.
거친 평직인
캔버스(Canvas) 소재도 여름에 인기가 많은데 완벽하게 깨끗이 하려면 뒤집어서 먼지를 턴 후 중성세제, 아주 약한 수류로 단독 세탁하면 된다. 여름 내내 썼다면 생각보다 많은 더러움이 빠지면서 새것처럼 되돌아오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단, 원래 직조가 헐거워 전체적으로 크기가 줄고 뻣뻣해지며 염색이 약간 빠지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캔버스 소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한 형태를 원래대로 잡아 걸어 그늘에서 말려야 쭈글거리지 않는다.
천이 두껍고 형태가 무너지면 안 되는 캔버스 소재 가방은 빨지 말고 중성세제를 희석한 물을 묻힌 수건으로 두드리고 점점 더 맑은 물로 교체해 가며 오염물을 닦아낸다. 평소 연필이나 볼펜 같은 얼룩은 묻는 즉시 부드러운 지우개로 그 부분만 지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캔버스 소재인데 자연스러운 형태 변화를 즐기기보다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걸 선호한다면 구매 후 전체적으로
방수 스프레이를 뿌리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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