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눈치는 한국인의 행복과 성공의 비밀일까?_라파엘의 한국살이 #40

한국인의 K-파워라고 불리는 눈치에 대하여.

BY김초혜2020.11.06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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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뉴욕타임스에 독특한 시각을 가진 기사가 올라왔다. “눈치의 힘: 한국인의 행복과 성공의 비밀”이라는 책을 낸 저자가 쓴 기고문이었다. 눈치를 보는 일이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저자는 눈치라는 유용한 도구 덕분에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눈치 없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종업원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딱히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고, 우연히 그런 사람과 시간을 보내야 할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눈치는 도대체 뭘까? 국립국어원 사전에 따르면 눈치는 타인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다. 모두 동의하겠지만, 눈치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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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는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한국 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화가 난 부모의 표정을 읽고, 친구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파악한다. 반려동물들도 화가 난 주인 앞에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특정 문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 눈치를 보는 일은 모든 문화권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거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한 눈치는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눈치가 있다는 건
- 쓸데없는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 의견을 피력해서 선생을 난처하게 하지 않고
- 질문하지 않으며, 정답을 말하고, 받아쓰기를 잘하고
- 튀는 행동을 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만 하는 것
 
 
회사에서 눈치가 있다는 건
- 막내는 회식 자리에서 고기 굽는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
- 상사의 술잔은 비어 있으면 안 된다
- 퇴근 시간이 지나도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
- 고객사의 요청은 밤 12시라도 처리해야 한다
- 상사의 성차별적 코멘트를 재밌는 척 웃어넘겨야 한다
- 회식 후 여성 직원들은 ‘남자들만의 시간’을 위해 알아서 귀가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눈치가 있다는 건
- 선배나 윗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본인의 위치를 알고, 나대지 않는 것
- 개인 SNS에도 본인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자기 검열을 철저히 거친 내용을 업로드하는 것
- 게이라면 본인의 성 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커플링이나 이성의 프로필 사진을 준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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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눈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벌어진다. 사회적 약자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원하는 행동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낮은 직급에 있는 사람이다.
 
 
눈치는 지위, 가부장제, 장로 권력과 같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며 재생산한다. 내가 경험한 눈치는 신비한 힘이나 도구가 아니다. 단지 약자를 억압하는 수단이다. 한국 사회에서 눈치는 자신보다 남의 마음을 더 헤아려 그에 맞게행동하게 한다. 숨 막히는 현실이다.
 
 
특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눈치를 활용해서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약자는 강자에게 상처나 실망을 줄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눈치는 ‘복종의 기술’로 정의할 수 있겠다. 아쉽지만 눈치는 K-파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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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살이 10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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