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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깊게 만나기, <장 미셸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_인싸 전시 #12

검은 피카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28세에 요절한 천재 화가, 마돈나의 연인, 뉴욕 거리의 반항아…. 어마어마한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집중해서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바스키아의 삶과 작품에 대해 사려 깊게 스토리텔링 해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BY양윤경2020.10.16
〈장 미셸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은 바스키아가 첫 전시에 참여한 1980년부터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1988년까지 무려 3천여 점의 작품을 남긴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를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소개한다. 뉴욕의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호세 무그라비 소장품으로 꾸려졌으며 보험가액만 1조 원에 달하는 이번 전시는 바스키아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사진 등 작품 15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다.  
 
장 미쉘 바스키아.

장 미쉘 바스키아.

 
'New York, New York' 1981.

'New York, New York' 1981.

 

거리  

바스키아의 작품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한 뉴욕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대안학교에서 만난 그래피티 아티스트 알 디아즈와 함께 당시 뉴욕의 힙한 클럽, 갤러리, ‘쿨 키드’들이 사는 로프트 외벽 등에 철학적이면서 유머러스한 낙서를 시작한 1977년에서 시작한다. 전시 초입 양쪽 벽에 바스키아가 극단에서 활동하며 만든 ‘부캐’ ‘SAMO’에 저작권 기호 ©를 붙여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의미의 SAMO©로 활동하던 시절의 그래피티 이미지가 펼쳐진다. 학교를 자퇴한 바스키아는 직접 그린 엽서와 티셔츠를 팔아 생활했는데 그때부터 이미 다운타운 클럽들에서 영화 제작자, 아티스트 등의 눈에 띄었고, 그 인연으로 1980년, 당시 뉴욕의 에너지 넘치는 유스 컬처를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전시 〈더 타임스 스퀘어 쇼〉에 참여하게 된다. 무명 아티스트로 남고 싶어 했던 디아즈와 스타가 되고 싶었던 바스키아. ‘SAMO© IS DAED’라고 공표한 후에 바스키아는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한다.  
 

예술

“누군가 내 작품을 지우거나 덧그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바스키아의 그림만큼 텍스트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했던 그는 제품 설명서, 해부학, 성경, 노래 가사 등을 화면에 옮겨 적어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했다. 이렇게 텍스트를 쓴 후에는 그 위에 선을 긋거나 덧칠을 해서 글자를 지워나갔다. 또한, 자신이 드로잉한 이미지들을 복사하고 이것을 화면에 나열하듯 붙이거나 포스터나 잡지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들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일상의 물건들을 화면과 결합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을 이용했다. 자연스럽게 리믹스하고 리포스팅하는 시대에 사는 오늘날을 예견하는 듯한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는 마치 그가 사랑한 재즈와도 같다. 예술적 유산과 문학적 영감, 어릴 적 당한 교통사고로 비장 제거 수술을 받은 후 천착하게 된 인체 형태 등의 개인적인 관심사가 즉흥적이고 유려하게 믹스된 바스키아의 작품은 잼 연주가 들리는 듯한 공감각적인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Untitled (Bracco di Ferro)', 1983.

'Untitled (Bracco di Ferro)', 1983.

'Old Cars', 1981.

'Old Cars', 1981.

 

영웅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늘 스타가 되기를 꿈꿨다.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같은 우상들을 떠올리며, 이들이 스타가 되는 과정을 동경했다.”
SAMO©시절부터 등장한 저작권 기호와 왕관, 삐죽삐죽 거친 형태의 후광, 공룡, 배트맨과 슈퍼맨, 그리고 뽀빠이 등의 만화 주인공 등 바스키아의 그림에는 다양한 도상이 등장한다. 아이티공화국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종차별을 겪은 바스키아는 영웅과도 같았던 아프리카계 운동선수와 뮤지션들의 초상화를 통해서 유색인 영웅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무하마드 알리와 슈거 레이 로빈슨의 이름을 혼합하여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의 이니셜 ‘CPRKR’을 반복적으로 표기하며 마일스 데이비스, 루이 암스트롱의 이름과 가사를 적으면서 말이다.  
 
'Victor 25448', 1987.

'Victor 25448', 1987.

  
'Untitled (Yellow Tar and Feathers)', 1982.

'Untitled (Yellow Tar and Feathers)', 1982.

 

그리고 앤디 워홀  

서로의 천재성을 알아본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은 1982년 첫 만남 이후 가족이자 예술적 동지로 함께 했다. 당시 유명한 아티스트였던 워홀은 바스키아를 통해서 회화의 힘을 재발견했고 바스키아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워홀의 인정 속에서 콜라주, 실크스크린 프린트, 아상블라주 등 다양한 실험을 지속했다. 3년간 150여 점이 넘는 공동 작품을 제작하며 서로의 예술 세계에 깊이 관여한 두 사람은 1985년 공동 전시를 열기도 했다. 비록 이 전시가 평단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공동작업은 막을 내렸지만 2년 뒤 워홀이 1968년의 저격 사건이 발단이 된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우정은 계속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협업 작품 5점과 함께 앤디 워홀의 일기에서 발췌한 바스키아에 대한 내용도 살필 수 있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기간 2020년 10월 8일부터 2021년 2월 7일까지. 
장소 롯데뮤지엄

홈페이지www.lotte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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