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묵향의 매혹, 국현 덕수궁관의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_인싸 전시 #4

덕수궁 대한문 안쪽 비밀스러운 정원을 지나 만난 묵향 가득한 서예 전시.

BY양윤경2020.08.07
덕수궁 미술관 전경.

덕수궁 미술관 전경.

 
덕수궁에서의 우중 산책은 아름다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외 장르 챙기기의 일환으로 개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개최하는 본격 서예전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대한문을 지나 1906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식 정원과 30여 년 뒤 일제가 들여놓은 분수대에 다다르면 미술관이 나온다. 입구 계단을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보면 중화전, 함녕전의 의젓한 기와지붕 너머로 높다란 빌딩들이 낭만적인 시간의 겹이 드리우며 펼쳐진다.  
 
《미술관에 書_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미술관에 書_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미술관에 書_한국 근현대 서예전》 전시 전경.
 
이번 전시는 미술사의 관점에서 서예를 조망한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서예가 낯선 관람객들에게 미술관은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 등 근현대 미술가들이 시서화 일치 사상을 계승하고 재해석한 작품들로 전시를 시작해 시선을 끌어모은다. 둥그런 달항아리, 흐드러지게 핀 하얀 매화, 단정하게 쓰인 발문이 어우러진 운치 있는 김환기의 유화, 김기창의 강렬한 문자 추상 작품 등을 보며 서예가 회화나 조각 같은 장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김환기, '항아리와 시', 1954. 서세옥, '사람들', 1988.
 
2부 전시장에서는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을 조명한다. 사실 지난 세기 서예가들의 작품이 과연 흥미로울까, 하며 별 기대 없이 전시장에 들어섰다가 단아하고, 세련되며 대범한 실험정신까지 갖춘 작품들에 혀를 내둘렀다. 20세기 한국 서단을 대표하는 소전 손재형이 충무공 생신제를 맞아 빠르고 힘찬 필력으로 추념한 ‘이충무공시’, 소암 현중화의 취권을 보는 듯 자유로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취시선’, 평생 궁체의 보급에 앞장선 갈물 이철경의 강직하고 청청한 ‘고시조 연작’ 등을 감상하며 탄성이 새어 나왔다.  
 
소암 현중화, '취시선', 1976.소전 손재형,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탁본', 1956. 갈물 이철경, '한용운의 님의 침묵', 1983.
 
전시의 후반부에는 현대 서예의 실험과 파격을 다룬다. 일필휘지를 통해 필묵이 지닌 강렬한 기를 보여주는 작품을 보며 붓과 먹의 퍼포먼스를 상상하고 서예의 회화적 요소를 극대화한 작품들을 보며 추상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얻기도 했다. 문장의 내용이나 가독성보다는 이미지에 집중함으로써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로 나아가는, 순수예술로서의 서예를 만날 수 있는 것. 디자인을 입은 서예의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에서 찾으며 전시는 마무리된다. 모든 작품에 상세한 캡션이 달려있어 꼼꼼하게 읽으며 집중해 감상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미술관을 나오니 광화문 빌딩 숲 한복판, 비밀의 정원 같은 덕수궁의 운치는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MMCA_오수환, 'Variation', 2008.

MMCA_오수환, 'Variatio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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