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문득, 매년 여름 주말마다 열리던 뮤직 페스티벌이 올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름은 음악인데 말이다. 음악에 젖어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잔디밭 위에서 맥주를 손에 들고, 땀을 흘리며, 스텝을 밟고 어깨춤을 춰야 하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잃은 채로 여름을 나고 있다. 페스티벌이 사라진 여름이라니...
잔디밭으로 뛰어 나가 음악을 크게 틀고 다 함께 스텝을 밟을 수 없으니 영화 속 춤 장면으로 흥을 분출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3편의 춤 영화, 그것도 매력적인 프랑스 여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카페나 트레이닝도 홈카페, 홈트로 대체하는 하는 요즘인데, 춤이라고 안 될 것 없다. 춤캉스도 내 방에서 즐겨보자!
1번째 춤캉스는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1991)이다. '프랑스 여자처럼'의 시작(프랑스 여자처럼 #1)에 레오 까락스의 영화 〈나쁜 피〉 속 스타일을 소개했다.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사랑 3부작이라고도 불린다.
〈퐁네프의 연인들〉 안에서도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대부분 알고 있을 테지만 꺼내보지 않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을 다음의 장면.
강렬하게 사랑하는 두 남녀 알렉스(드니 라방)과 미셸(줄리엣 비노쉬)가 감정적으로 끓어올랐을 때.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파리에서 펼쳐지는 휘황찬란한 축제, 팡팡 터지는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퐁네프 다리에서 절규하듯 춤을 추고 질주한다.
이 장면에서 음악은 4번이나 바뀐다. 레바논의 전설적인 가수 파이루즈(Fairuz)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시작해 이기 팝 'strong girl'로 팔팔 끓어오르며, 퍼블릭 에너미의 'You're gonna get yours'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로 폭발의 경지에 이르른다. 퐁네프 다리에서 처음 만난 그 둘의 강렬한 감정 폭발신(scene)인 동시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레오 까락스가 내한했을 때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랑 3부작은 전부 영화 〈소년, 소녀를 만나다〉처럼 소년이 소녀에게 다가갈 땐 어떤 식인지 생각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 그때 느끼는 감정들을 춤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보여줬다." 춤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감독의 의도와 고집 덕분에 극도로 아름답게 완성된 장면이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포스터.
마음에 쌓인 감정의 쓰레기들을 맘껏 내던지고 싶을 때,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을 때 이 장면을 보며 마음을 달래자. 시원하게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옆에 두고 낭만의 파리에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처절하고 아린 사랑에 참여하는 거다. 비루한 현실의 초라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두 남녀의 춤과 질주는 음악을 잃은 이 시대 청춘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 프렌치 패션, 리빙, 음악, 미술, 책... 지극히 프랑스적인 삶! 김모아의 '프랑스 여자처럼'은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