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 친구, 하물며 애인에게도 하지 말자. 당신이 싱글이라면, 혹은 애인이 초콜릿을 선물할 기미가 없다면, 편의점마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초콜릿들과 밸런타인데이 프로모션을 볼 때마다 이유 모를 패배감과 함께 짜증이 솟구친다는 걸 알고 있다. 평소 단 것을 멀리했더라도 오늘만큼은 갑자기 초콜릿이 당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별일 아니다. 이건 그냥 누가 TV에서 치킨 먹는 거 보면 나도 먹고 싶은 거랑 똑같다. 내 돈 주고 내가 먹고 싶은 종류로 사 먹는 게 속 편하다. 아, 애인이 초콜릿'만' 주는 게 불만이라고? 한 달 뒤를 생각해 보자. 벌써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 않나?

하필이면 밸런타인데이가 금요일이다. 불금이라는 핑계로 술자리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폭음만은 금물이다. 특히 당신이 외롭거나 구남친, 구여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만취했다면, 일단 휴대폰을 버리거나 친구에게 줘 버리자. 21세기의 모든 연애 사고는 술 그리고 스마트폰 때문에 벌어진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왠지 이대로 집에 가긴 아쉽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오늘 밤 달려도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술과 외로움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우리는 틴더를 켠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왼쪽으로 스와이프해야 할 '벤(교포인가?), 32세(아닌데?), 변호사(일 턱이 없는데?)', 상반신을 탈의한 '벤'의 거울 셀카에 나도 모르게 '슈퍼 라이크'를 보내고 있다. 그다음은 바로 "우리 집에서 넷플릭스 볼래요?"다. 이 단계에서 스마트폰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틴더 앱을 삭제 해야겠지만 우리의 자제력은 원래 이따위다. 남은 건 내일의 이불킥 뿐. *틴더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폭음 후 만취 상태에서 하지 말라는 거다. 이불 좀 차 봐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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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오르고, 침대에 누웠는데 자꾸만 구남친, 구여친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그때 걔만 한 애가 없었지, 내가 잘못했지, 우리 참 좋았었는데, 작년에는 걔가 초콜릿도 만들어줬지 등등 과거를 곱씹다 보면 갑자기 걔가 잘사는지 궁금해진다.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니까, 안부 문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건 순수한 호기심과 선한 그리움이지, 다른 의도는 없어. 새벽 두시에? 착각하지 말자. (물론 낮에도 안 된다. 다 안 된다) 보내는 입장에서야 '오늘은 밸런타인데이니까'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찌질한 놈이 무슨 기념일마다 문자로 보내고 난리'에 가깝다. 차라리 틴더를 켜라. 모르는 사람과의 해프닝은 하루 부끄러울 뿐이지만 이건 최소 두 달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