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허리에 집착하는 이유
올가을엔 옷의 허리 라인을 특히 신경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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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런웨이는 온통 '오피스 사이렌'의 여전사로 가득했습니다. 과장된 어깨의 블레이저와 탄탄한 비즈니스 백 그리고 마치 사무실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워킹까지, 그야말로 일하는 여성의 전성기였죠. 하지만 2026 S/S 시즌,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묵직했던 실루엣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옷은 한층 가벼워졌으며, 몸의 곡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디자인이 주를 이뤘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허리가 있습니다.
시몬 로샤 2026 S/S 컬렉션
필라테스부터 위고비까지, 아름다운 몸매를 향한 탐미가 끊이지 않는 시대에 허리가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한층 더 또렷해진 허리선은 동시대를 상징하는 새로운 미의 기준으로 올라섰죠. 런웨이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분명했습니다. 뉴욕의 제인 웨이드는 풍성한 스커트에 브라톱을 매치해 대비감을 강조했고, 런던의 시몬 로샤는 쇼 노트에서 간단하게 "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 과장된 모래시계 형태 드레스를 선보였죠.
제인 웨이드 2026 S/S 컬렉션
디자이너들은 왜 하필 ‘허리’에 집착하게 됐을까요? 단순히 신체의 곡선이 선사하는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대부터 허리와 엉덩이의 황금 비율은 젊음과 생식력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마 최근 사회가 30대 이후의 여성을 나이 든 존재로 치부하는 시선과 저출생에 얽힌 불안이 맞물리면서 여성의 허리를 강조하는 미학이 다시금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건 단순한 회귀에 그치지 않습니다. 1950년대의 대표적인 코르셋 실루엣과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의 극단적인 드레스처럼 여성의 몸을 통제하던 시절과는 달리,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같은 허리선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끌어왔죠.
이번 시즌, 미우치아 프라다는 라프 시몬스와 함께 여성성이라는 코드 자체를 완전히 해석했습니다. 그녀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풍성한 스커트에 일부러 상식적인 구조를 무너뜨린 브라톱을 매치해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의 정의를 전복하고자 했죠. 질 샌더와 막스마라의 허리선은 보다 건축적이고 단정하게 탈바꿈했고,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 데뷔 무대에서는 미니멀한 브라톱이 대담하게 등장했습니다.
샌디 리앙 2026 S/S 컬렉션
허리에 이어 배가 훤히 드러난 룩은 젊음과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소녀스러운 무드로 가득한 샌디 리앙의 체크 셋업처럼요. 하지만 이보다 더욱 극단적인 형태의 허리선은 단순한 패션을 넘어, 여성의 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성성이란 무엇이고, 과연 어디까지가 사회가 만든 아름다움의 기준일지 말이죠.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이 모든 담론에 대한 해답을 허리선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프라다가 미우미우의 에이프런 드레스로 전통적인 여성상을 비튼 것처럼, 수많은 브랜드들은 ‘영원히 젊고 완벽한 모습이어야만 한다’는 사회적인 압박을 있는 그대로 런웨이에 올려놓았습니다. 런웨이는 늘 환상의 영역이지만, 그 환상을 움직이는 심리는 놀랍도록 현실적이죠. 결국 이번 시즌을 장악한 과장된 허리선은 단순한 패션 트렌드를 넘어, 여성의 몸에 사회적인 욕망과 불안이 어떤 식으로 투영되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잘록한 허리선 안에는 사회가 정의한 미의 기준과 젊음을 향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여성성의 재해석이 한데 공존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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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VÉRONIQUE HYLAND
-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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