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할아버지가 그린 집
‘집’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는 우고 라 피에트라.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전방위적 창작자, 우고 라 피에트라. 1960년대부터 건축과 인테리어, 도시 공간, 가구,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그의 방대한 시간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1960~1970년대 산업화와 모더니즘에 맞서 ‘래디컬 디자인 운동’을 이끌며 주목받은 그는 예술과 디자인, 공공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지속해 왔다. 도시 전체를 ‘확장된 집’으로 보고, 그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감각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을 꾸준히 탐색해 온 것이다.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구조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서로 다른 것의 공존’과 ‘삶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그에게 집이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삶의 양식이자 사회적 관계의 무대이며, 개인과 도시를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Interno-Esterno’(1977).
“거주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집에 있는 것(Abitare e‵ essere ovunque a casa propria)”이라는 표현을 오랫동안 강조해 왔습니다. 고정된 장소에 머무는 것보다 공간을 해석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강조한 거죠
‘거주’란 단순히 공간을 ‘사용’하는 것과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집에 살지만, 호텔은 임시로 빌려 쓰는 공간일 뿐이죠. 이처럼 거주한다는 것은(그것이 집이든 도시든) 공간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개성을 확장시키며, 식사· 일· 소통· 여가 등 일상의 모든 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우고 라 피에트라.
건축과 디자인,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집’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주거 공간을 주제로 삼을 때 어떤 점에 집중했나요
주거 공간을 주제로 작업할 때는, 밀란 공과대학 건축학부에서 지오 폰티가 창설한 ‘실내건축’ 전공에서 배웠던 교훈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일상 속의 주거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의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람과 사물, 공간이 맺는 관계를 섬세하게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여기에 저는 건축뿐 아니라 응용미술, 예술 같은 다양한 분야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해왔습니다.

1983년 열린 피에라 디 밀라노(Fiera di Milano)에서 전시한 ‘라 카사 텔레마티카(La Casa Telematica)’는 미래 정보화 사회의 주거 모델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디어와 통신이 앞으로 주거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상상해 봤어요. 낯설고 파격적인 광경이면서도, 거실과 침실에 스크린이 만연한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라 카사 텔레마티카’는 단순히 미래의 집이 어떻게 될지를 예측한 비전적 모델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암시적 제안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는 가구 설계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이 주거 형태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한 스마트 홈을 넘어, 가구와 공간 자체를 어떻게 재조직할 수 있는지, 그것이 기술과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탐구한 거죠.

‘Abitare Con Arte’(1991).

‘La Casa Telematica’(1983).
1986년부터 1997년까지 베로나 가구박람회(Abitare Il Tempo)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992년에 선보인 ‘신절충주의의 집(La Casa Neoeclettica)’이 인상 깊었어요. 다양한 기법과 장식으로 제작된 바 캐비닛이 들어선 공간이었죠.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조합하는 ‘절충주의(Eclecticism)’를 넘어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상징적 요소들을 새롭게 엮어낸 ‘신절충주의(Neo-Eclecticism)’를 강조했는데요. 집이라는 공간에 어떤 화두를 던지고 싶었나요
베로나 가구박람회는 디자인계에서 잘 조명받지 못했던 고전 가구 회사들을 위한 무대였습니다. 매년 젊은 디자이너부터 중견, 원로 디자이너들을 다양하게 초청해 특정 주제 아래 10~20점의 협업 작품을 선보이죠. 약 1년간의 협업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형성됐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모자이크, 조각, 상감 세공 등 정교한 전통 기법을 사용하는 회사들과 협력했어요. 그중 다수는 이전에 이런 실험을 해본 적 없었죠. ‘신절충주의의 집’은 단순히 고전양식이나 그것을 계승한 포스트모던 디자인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시대와 문화· 전통· 소비 문화· 수공예까지 공간에 폭넓게 포용한 시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집’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어떻게 새롭게 상상하고 조직할 수 있는지 탐색했습니다.

‘Naturale/Virtuale’(1992). 1992년 트리엔날레 밀란에서 자연의 집(La Casa Naturale)과 가상의 집(Casa virtuale)을 주제로 선보인 공간.

‘Naturale/Virtuale’(1992). 1992년 트리엔날레 밀란에서 자연의 집(La Casa Naturale)과 가상의 집(Casa virtuale)을 주제로 선보인 공간.
도시라는 공공 공간과 집이라는 사적 공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역시 당신이 지속적으로 실험해 온 주제입니다. 가구와 조명, 커튼 등 실내장식 요소를 건물 외벽에 붙인 세라믹 오브제를 만들거나, 거리의 일부를 거실처럼 연출하는 설치미술 작업이 있었죠. 198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국제 세라믹 타일 및 욕실 가구박람회(CERSAIE)에서는 전통 이탈리아 정원과 가정 공간을 결합한 ‘열린 집(La Casa Aperta)’을 선보이기도 했어요. 집을 열린 개념으로 재구성한 시도는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집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현대 도시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집은 종종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변해버렸죠. 그러나 거주란 본질적으로 사회적 행위이며, 집은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중요한 매개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은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주변과 소통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흔적을 남기는 행위입니다.

세라믹 아티스트 베르토치 & 카소니(Bertozzi & Casoni)와 세라믹으로 만든 지중해 테이블로 자연의 집을, 이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가상의 집을 디자인했다.
현대 도시에서의 거주는 여전히 단절되고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실 ‘도시 속 거주’는 다양한 창의적 분야가 정의하고 개입할 수 있는 열린 영역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고층 빌딩 같은 기념비적 오브제에만 몰두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디자이너들도 소비 중심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 역시 미술계라는 체계에 편입되기 위해 온 힘을 쓰고 있죠. 제가 말한 ‘거주한다는 것은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집에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집’은 단지 개인적 공간을 뜻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공동의 공간’을 포함하죠. 안타깝게도 1980년대 이후, 도시 환경을 구성하는 벤치나 가로등 같은 ‘어번 퍼니처(Urban Furniture)’는 도시를 집처럼 느끼게 하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외식 산업과 결합한 상업주의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식사’의 진정한 의미조차 왜곡되고 말았죠. 이런 공백과 문제에 대해 디자이너와 건축가, 예술가 모두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THE ARTIST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