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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퀸즐랜드로 한 번 떠나면 돌아오기 싫어지는 이유

빌딩 숲 그림자 사이로 스며드는 자연의 속삭임, 도시와 야생이 한데 살아 숨쉬는 브리즈번과 골드코스트에서 보낸 시간.

프로필 by 박지우 2025.04.30
탁 트인 하늘과 산세가 맞닿는 탬버린 마운틴의 행글라이더 전망대.

탁 트인 하늘과 산세가 맞닿는 탬버린 마운틴의 행글라이더 전망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도시란 그런 곳이다. 인류의 고향인 대지와 바다를 거스른 채 콘크리트와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곳. 평생 광활한 대자연으로부터 유예된 나날을 보내야 했던 내게 이상적인 도시의 조건이란 사소하기 그지없다.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른 도시의 속도와 미세 먼지, 신경증을 자극하는 소음 따위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때쯤, 10년 만에 호주 퀸즐랜드(Queensland)를 다시 찾았다.


코알라, 캥거루, 빌비 등 호주를 대표하는 야생동물이 한데 모인 호주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드림월드’.

코알라, 캥거루, 빌비 등 호주를 대표하는 야생동물이 한데 모인 호주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드림월드’.

브리즈번 공항을 나서자마자 더운 바람이 뺨과 목덜미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그 순간 나는 이 축복 어린 땅과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황금빛 해안선을 품은 골드코스트(Gold Coast)와 도회적인 공기를 머금은 브리즈번(Brisbane)은 호주 북동부에 있는 퀸즐랜드 주를 대표하는 도시다. 으레 호주 하면 멜버른과 시드니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야생과 도시가 적절히 뒤섞인 이 대륙의 진정한 묘미는 퀸즐랜드에 있다. 골드코스트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는 브리즈번 공항에서 차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천국이다. 이름처럼 호주에서 최고의 파도를 자랑하는 해변은 하얀 포말에 몸을 맡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서퍼들로 365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마천루와 함께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엔 일출을 가장 극적으로 마주하는 법이 따로 있다. 커다란 열기구에 몸을 실은 채 2000피트 상공에서 푸른 대지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와 마주하는 것. 도시에 두고 온 감정이 저 멀리 브리즈번의 빌딩 숲처럼 작고 사소한 점으로 스러지는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원시의 공기를 간직한 듯 울창한 열대우림이 펼쳐지는 ‘탬버린 마운틴 국립공원’.

원시의 공기를 간직한 듯 울창한 열대우림이 펼쳐지는 ‘탬버린 마운틴 국립공원’.

골드코스트를 넓고 낮게 굽어살피는 탬버린 마운틴(Tamborine Mountain)의 신묘한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도 빼놓을 수 없다. ‘서던 크로스 투어스(Southern Cross Tours)’에선 커피 농장, 와이너리, 열대우림을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다. 실크처럼 얇은 우유 거품이 일품인 플랫 화이트의 원조답게 호주는 커피의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중에서도 ‘탬버린 마운틴 커피 플랜테이션’은 원두 수입부터 로스팅, 블렌딩, 유통까지 진행하는 호주의 몇 안 되는 커피 로스터리. 푸릇푸릇한 커피 농장을 거닐며 생두를 직접 만져볼 수 있으니 스페셜티 커피 애호가에게 이보다 황홀한 산보는 없을 터. 카페인의 여운을 충분히 즐겼다면 호주의 로컬 와이너리를 경험할 차례다. 목가적인 정원이 딸린 ‘메이슨 와이너리(Mason Winery)’에선 호주의 유서 깊은 와인 산지인 ‘그래닛 벨트(Granite Belt)’의 향을 입 안 가득 머금을 수 있다. 높은 해발 고도와 서늘한 기후 덕분에 호주를 대표하는 시라즈는 물론 샤르도네, 베르델호 등 다채로운 품종이 자라나는 곳이다. 기분 좋은 취기를 안고 퀸즐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탬버린 마운틴 국립공원’에 들어서면 서울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깊고 짙은 녹음이 반긴다. 울창한 유칼립투스 군락지인 시더 크릭부터 신비로운 커티스 폭포까지, 화산이 분출하며 탄생한 생태계의 보고는 오늘날까지 생생히 살아 숨 쉬며 도시인에게 쉴 자리를 내어준다.


도심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강과 그 곁을 감싸는 녹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브리즈번의 풍광.

도심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강과 그 곁을 감싸는 녹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브리즈번의 풍광.

골드코스트의 감동은 천혜의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호타(HOTA; Home of the Arts)’는 예술의 집이라는 이름처럼 전시와 공연, 영화, 미식을 한데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호타 갤러리의 총천연색 외관은 브리즈번 출신 아티스트 윌리엄 로빈슨의 작품 ‘The Rainforest’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1층에는 제철 로컬 재료를 활용하는 파인 다이닝 ‘팔레트 레스토랑’이, 옥상에는 구불구불한 네랑 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숨어 있다. 그런가 하면 차로 30분 남짓 떨어진 호주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드림월드’는 오감을 자극하는 특별한 체험으로 가득하다. 코알라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자유롭게 뛰어노는 캥거루를 쓰다듬으며, 독특한 외모의 멸종 위기종 빌비를 눈앞에서 마주한 경험은 내가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한 구성원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호주와 아시아·태평양의 시선을 아우르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 현대미술관’.

호주와 아시아·태평양의 시선을 아우르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 현대미술관’.

골드코스트가 자연과 사람을 이었다면, 브리즈번은 우리가 알던 도시를 재정의한다. 골드코스트에서 차로 1시간이면 당도하는 이 쾌활한 도시는 굽이치는 브리즈번 강을 따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진화했다. 하얀 모래와 야자수로 둘러싸인 도심 속 인공 해변을 목전에 두면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도마뱀마저 여유를 부리는 ‘사우스 뱅크(South Bank)’를 정처 없이 거닐다 보면, 호주와 아시아·태평양의 현대미술을 잇는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 현대미술관(QAGOMA)'에서 망중한을 즐길 시간이다. 홍콩,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30개국 아티스트의 사적인 작품세계를 꼭꼭 씹어 삼키고 길을 나서면, 브리즈번의 떠오르는 랜드마크 ‘퀸즈 워프(Queen’s Wharf)’로 이어지는 ‘네빌 보너 브리지(Neville Bonner Bridge)’가 모습을 드러낸다. ‘더 스타 그랜드 브리즈번’ 호텔에 자리한 100m 높이의 전망대인 스카이데크와 이어지는 다리 위에선 관람차와 수상 택시를 비롯해 2032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껏 분주한 도시의 활기찬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브리즈번의 스카이라인을 가장 짜릿하게 즐기는 법은 따로 있다. 무려 80m에 이르는 스토리 브리지 위에 올라 도심을 내려다보는 ‘스토리 브리지 어드벤처 클라임’은 전 세계에 단 세 개뿐인 교각 등반 액티비티 중 하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정상에 올라선 순간 깨달았다. 도시와 자연은 물과 기름이 아닌, 늘 서로를 완성해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오롯이 숨 쉴 수 있는 도시는 어쩌면 아찔한 발 밑 아래,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체인에 몸을 의지한 채 교각 위를 걷는 짜릿한 ‘스토리 브리지 어드벤처 클라임’.

체인에 몸을 의지한 채 교각 위를 걷는 짜릿한 ‘스토리 브리지 어드벤처 클라임’.

Credit

  • 에디터 박지우
  • 사진가 이경옥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정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