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단정한 멋이란 이런 것

‘시몬조’ 조남인이 균형 잡힌 공간을 만드는 법.

프로필 by 윤정훈 2025.04.24
삼각지 카페 ‘쿼츠 세컨샵’. 주택을 카페로 레너베이션하며 생긴 골조를 페인트로 칠해 구조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살렸다. 레몬 컬러의 반투명 유리 벽을 세워 별실을 구분하고,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도는 공간에 적절한 온도를 더했다.

삼각지 카페 ‘쿼츠 세컨샵’. 주택을 카페로 레너베이션하며 생긴 골조를 페인트로 칠해 구조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살렸다. 레몬 컬러의 반투명 유리 벽을 세워 별실을 구분하고,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도는 공간에 적절한 온도를 더했다.


SIMONE CHO

단정하고 균형 잡힌 공간, ‘시몬조’ 조남인.


아장스망 최혜진 디렉터의 오피스.

아장스망 최혜진 디렉터의 오피스.

공간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커피 분야에 있었다고 들었다

커피 로스터로 오랫동안 일했다. 외골수 기질이 있어 20대의 많은 시간을 커피에 할애했다. 그러다 그 일에 회의가 들기 시작할 즈음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의 채용 공고를 보고 덜컥 입사 지원을 했다. 과거 내가 몸담고 있던 카페 인테리어를 더퍼스트펭귄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이미 그곳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 내 가게를 차리고 싶은 바람이 있어 틈틈이 레퍼런스를 저장해 둘 정도로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2016년 3월부터 더퍼스트펭귄에서 근무를 시작해 약 3년간 프로젝트 디렉터로 일했다. 프로젝트의 진행 전반을 조율하는 PM 역할로, 클라이언트 및 디자이너와 소통하면서 현장 시공 감리 등의 경험을 익혔다.


싱크 아래 파스텔 톤 블루를 칠한 시몬조 스튜디오 한쪽.

싱크 아래 파스텔 톤 블루를 칠한 시몬조 스튜디오 한쪽.

독립할 마음을 먹은 건 언제였나? 스튜디오 시몬조의 방향성은 어떻게 정립했는지

일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조금씩 지인들의 개인 작업을 병행하며 창작 욕구가 최정점에 달했을 때 독립을 결심했다. 시몬은 천주교 세례명이다.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이름이 됐다. 스튜디오의 방향성은 아직 잡아가는 중이지만, 공간과 가구 그리고 사물을 통해 창작물이 가지는 균형감을 탐구하고 실험한다. 공간 구조와 가구 형태, 재료의 물성에서 오는 단정함을 지향한다. 사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주안점이 있다면 바로 공간의 분위기일 것이다. 아주 작은 요소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보다 섬세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가령 콘센트 색상을 정할 때도 그것이 자리 잡은 벽만 보지 않고 그것이 공간을 이루는 ‘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한다.


조남인이 디자인한 프로토타입의 체어들.

조남인이 디자인한 프로토타입의 체어들.

카페와 오피스, 쇼룸 등 일상 공간을 특유의 미감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지금의 시몬조를 있게 한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아장스망(Agencement)’ 최혜진 디렉터의 오피스. 클라이언트는 오랜 기간 에디터로 일해 왔는데, 작업 데스크와 많은 책을 보관할 서가 외에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다. 시몬조의 방향성을 충분히 존중한다며 모든 사항을 전적으로 위임한 고마운 프로젝트다. 클라이언트와 나는 코펜하겐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코펜하겐에서 만난 좋은 공간을 참조했다. 잘 디자인된 오브제들이 무심히 놓인 아름다운 공간, 그 속에서 느껴지는 친절함과 다정함을 떠올렸다. 단순한 연출이나 스타일링의 개념을 넘어 좋은 바탕 위에 정제되고 균형 잡힌 요소를 더하는 식으로 공간을 완성해 나갔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무척 즐거웠고, 작업의 중요한 기점이 됐다. 이전엔 평면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후부턴 공간의 원래 얼굴인 기본 조건들과 마주하고 그 속에 녹아들 수 있는 가구나 조명,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까지 아우르게 됐다. 무엇보다 공간의 주인이 잘 보여야 했기에 클라이언트의 전문성이나 성향을 잘 드러내는 데도 집중했다. 출입문을 열었을 때 클라이언트가 그간 발행한 책과 매거진을 꽂아둔 서가가 바로 보이는 점이 그렇다. 공간 역시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기존 골조나 스틸 배관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고, 싱크대 하부 바닥을 푸른색 페인트로 칠하되 쉽게 질리지 않도록 낮은 채도를 택했다.


전기 배전함 형태에 아이맥 27인치 비율을 적용한 ‘시몬 셸프(Simone Shelf)’. 벽에 걸거나 바닥에 놓고 쓰는 용도로 디자인했다.

전기 배전함 형태에 아이맥 27인치 비율을 적용한 ‘시몬 셸프(Simone Shelf)’. 벽에 걸거나 바닥에 놓고 쓰는 용도로 디자인했다.

푸른색이나 금속 등 차가운 계열의 색과 재료를 자주 사용하는데 공간의 분위기는 어쩐지 따스하다. 재료나 색을 쓰는 남다른 기준이 있는 것 같다

금속 중에서도 아연을 자주 쓰는데, 그 이유는 차가워 보이지 않아서다. 빛을 받았을 때 표면에 특유의 탁한 질감이 도드라지는 것도 좋다. 이런 본질적 특성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구를 디자인할 때 되도록 면이 잘 보이도록 구성한다. 단정한 형태에 물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데, 이때 공간에 색을 적절히 쓰면 오히려 오브제가 돋보이고 고유한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다.


기존 네일 숍 공간이 가진 언어를 탈피하기 위해 오피스와 갤러리 중간쯤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기존 네일 숍 공간이 가진 언어를 탈피하기 위해 오피스와 갤러리 중간쯤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조남인에게 좋은 공간이란

물리적 조건을 들어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내 생각에 좋은 공간은 사람(주인)을 닮은 공간이고, 나 역시 그런 공간을 좋아한다. 작업실이나 주거공간 등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는 공간 작업을 선호한다. 카페처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고, 매출이 작업의 척도가 되는 공간은 생애주기가 짧아 디자이너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 반면 누군가 거주하거나 일하는 곳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 나와도 행복한 공간, 친구들을 불러모아 자랑하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상업 공간이든 개인 공간이든 이용자가 하는 모든 일상적 행위에 도움이 되면 좋겠고, 공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마음가짐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서포터로서 갖는 사명감이 꽤 크다. 이 일을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좋은 공간은 좋은 분위기를 선물한다.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분위기를 선물해 준다는 게 내겐 무척 중요한 역할이다. 여담이지만, 고객에게 완성된 공간을 보여줄 때 가장 좋은 시간대를 골라 향과 음악을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공간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에 키를 돌려주는 것이다. 어쩌면 클라이언트보다 내게 더 특별한 순간일지도 모른다(웃음).


온양민속박물관 전시 일환으로 만든 ‘Clear Mind’. 전통 소반 ‘서안’을 현대의 산물인 아연 금속으로 재해석한 작업. 한남동 네일 숍 모네 아트워크.

온양민속박물관 전시 일환으로 만든 ‘Clear Mind’. 전통 소반 ‘서안’을 현대의 산물인 아연 금속으로 재해석한 작업. 한남동 네일 숍 모네 아트워크.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개인을 잘 닮은 공간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하다. 작가로서 개인 작업도 병행하고 싶다. 아연을 사용한 가구 라인을 주제로 개인전을 준비 중이며, 오브제나 가구 작업 전시 건으로 해외 디자인 갤러리나 뮤지엄과 소통 중이다.


쿼츠 세컨샵. 파스텔 톤의 배경과 대비되는 진한 계단 라인이 포인트가 돼 균형 잡힌 공간미를 보여준다.

쿼츠 세컨샵. 파스텔 톤의 배경과 대비되는 진한 계단 라인이 포인트가 돼 균형 잡힌 공간미를 보여준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 손미현 ・ 진유정 ・ POLES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