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이토록 친밀한 실수들
건축사무소 ‘사사건건’의 전중섭이 짓고, 그리고, 조각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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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다 만들 것 같고, 조금 꼼꼼한 느낌이 있는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다. 건축학과 출신 중 가구와 작업을 싫어하는 이가 많은데 나는 그 반대다. 작은 것까지 하고 싶은 사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 수 있는 작업이 재미있다. 그런 측면에서도 나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사사건건으로 작업을 전개한 지 4년 정도 됐다. 그간 더퍼스트펭귄, 푸하하하프렌즈에 소속돼 있었고 이제는 독립적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해 볼 예정이다.

현관부터 침실까지, 길게 따라 걸으면 ‘U’자 동선을 그리도록 고안된 전중섭의 집. 기다란 동선을 가진 공간을 원한 그는 집 한가운데 가벽을 세우고 벽장으로 수납과 공간 분리를 시도했다. 벽장 사이에 낸 이른바 ‘게으름의 게이트’ 덕분에 주방과 거실 간의 이동이 쉬워졌다.
사사건건 작업으로 관심이 가는 형태 중에서 ‘해결만 된 형태’가 있다. 디자이너가 드러나지 않거나, 디자인되기 직전인 형태들. 문제가 해결된 그 상태에서 최소한으로 작업해 만들어내는 걸 좋아한다. 이 집엔 사사건건에서 작업해 본 샘플도 있고, 집의 필요에 따라 직접 여러 재료로 만든 것도 있다. 입주할 땐 벽면 페인트도 칠해져 있지 않은, 말하자면 ‘해결도 안 된’ 상태였는데(웃음) 살면서 계속 뭘 만들고 추가하는 중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만든 집이랄까. 싱크대는 이전 집에 있던 것을 가져와 이 집 크기에 맞게 키메라처럼 덧붙였다. 서재 테이블도 마찬가지. 원래는 타원형만 있었는데 조금 더 큰 크기가 필요해 추가로 만들어 합쳤다. 대부분의 가구를 모듈형으로 만들어 필요에 따라 변형하고 확장하고 축소해 사용할 수 있다.

주방 그리고 장롱 역할을 하는 벽장은 모두 모듈식이다. 소나무 합판으로 직접 만든 벽장에는 타투를 새기듯 마음에 드는 선과 그림을 천천히 그려 넣었다.
사실 무척 작은 집인데 전 주인이 주방과 창고와 김치냉장고가 있던 방 사이에 작은 문을 만들었더라. 그 문을 보는 순간 내가 원하는 집의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보통의 아파트 구조, 거실이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공간이 나에겐 심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집을 구상할 땐 동선과 구조를 바꾸는 일부터 고민하는데, 이번엔 전 주인이 만든 작은 문이 생각의 물꼬를 터줬다. 항상 구조와 동선상 길쭉한 집을 만들고 싶고, 침실은 가장 깊숙한 곳에 두고 싶었다. 물론 ‘U’ 자 구조 사이에 거실과 주방을 단숨에 오갈 수 있는 ‘게으름의 게이트’를 하나 만들어두긴 했지만(웃음). 저게 없었다면 솔직히 조금 힘들었을 것 같다.

전중섭이 자신의 건축사무소 ‘사사건건’을 운영하며 관심을 가져온 ‘해결만 된 형태’들은 최소한으로 발전시켜 완성한 가구와 사물.

현관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벽면에 소나무 합판으로 만든 벽장이 있다. 옷도 수납하고 갖가지 물품을 넣는데, 그 무렵 한창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프레스코화로부터 모티프를 얻는 기회가 생기면서 프레스코화에 매력을 느껴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림 중 하나는 오래된 성당의 기둥인데, 세월이 지나면 기둥들이 터지기 때문인지 띠를 둘러 묶는 디테일이 좋아서 그려봤다. 최근 이탈리아 소도시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군사 시설의 천장에도 프레스코화를 그렸더라. 그 시대엔 천장에 프레스코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아닐까. 관습 자체가 멋지게 남아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꽤 자유롭게 적용해보고 있다. 이 집에선 내 공간이고 내 것이니까 신나게 실수해 가면서 이것저것 만든다.


집 고치는 게 가장 재미있는 일 같다. 방 구조를 바꾸고, 가구의 배치를 바꾸고.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낸 물건은 서로 어떻게 해야 어울리는지 알지만 새 집에 들어서면 다시 두고 써봐야 알기에 오래 들여다 보는 중이다.


집을 구성할 때 집 전체보다 사물 하나를 먼저 떠올리는 편이다. 주로 사물과 관련된 레퍼런스를 보는데, 테이블을 디자인할 때 절대 테이블을 찾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옛날 비행기나 우주선 같은 것들을 본다. 고도화돼 해결된 형태나 산업화된 구조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것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모습을 볼 때 편안함을 느낀다.




생활하는 동안 내 시야에 다른 사람의 일상이 안 보이는 공간. 그래서 공간적인 레이어를 많이 만든다. 그래야 집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 맹민화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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