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본업과 부업 사이, 나만의 리듬을 만드는 일
건축 디자이너이자 번역자 민성휘는 본업과 부업을 구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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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에서 건축설계와 번역 일을 하며 일본 건축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탄파쿠나(@tanpakuna)’를 운영한다.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를 기획·번역했다. 민성휘
」일본에서의 생활이 길어졌기 때문일까? 여태껏 옳다고 믿었던 사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가령 나는 생각보다 사람을 싫어한다. 외국인에게 일본어를 잘한다는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으니 워라밸은 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온전히 나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양제를 먹기도, 달리기도 해보지만 결국 덤벨을 들고 근육을 키우는 일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편 바쁘다는 핑계로 무거운 덤벨을 드는 대신 삶의 무게를 가중해 보려는 잔꾀를 부리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야 덤벨을 들 수 있는 체력이나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하루 중 무엇보다 건축설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좋든 싫든 세상은 건축을 내 본업으로 본다. 본업 외에는 번역, 글쓰기를 포함해 이따금 의뢰받는 인터뷰, 원고 마감도 있다. 본업과 부업이라는 다양한 일 속에서 내가 하는 일을 이항 대립으로 정의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나에게 건축이란 ‘내부와 외부’ ‘개방과 폐쇄’처럼 대립하는 개념에서 탈피해 ‘건물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잘 헤아리는 일’이다. 번역은 ‘의역과 직역’, 가독성의 ‘좋고 나쁨’이 아닌 ‘타인의 목소리에 빙의하는 일’이다. 취미로서 달리기는 ‘느리거나 빠른’이 아닌 ‘나를 지워가는 일’이다. 이처럼 이항 대립에서 벗어나는 일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도, 때로는 적절한 무게를 더해주기도 한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이라는 단단한 축에 의해 기어코 회전당하는, 한없이 나약한 톱니바퀴와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회전하려는 의지가 있거나, 스스로 기름칠을 할 줄 아는 믿음직한 톱니바퀴다. 최선을 다하지만 충성을 맹세하는 건 곤란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선언할 줄 아는 골치 아픈 톱니바퀴이기도 하다. 회전 또는 멈춤에서 벗어나 ‘저렇게 유능한 톱니바퀴가 멈춘다면 큰일’이라고 여겨지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세상 흐름에 맞물릴 수밖에 없다면 유능한 톱니바퀴가 돼 타인을 고무시키고 세상에 일조하겠다는 이타심과 그 속에 적절히 내 이기심을 고수하는 일은 이항 대립을 초월한다.
이런 투쟁 속에서 나는 완벽한 건축이나 완벽한 번역을 좇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바쁘게 살다 보면 문득 미래를 향한 불안이 요동칠 때가 있다. 건축은 무엇보다 몰두해야 하는 본업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모셔야 하지만, 어떤 날은 취미 비슷한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그것이 주는 즐거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다 그 흥겨움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텅 빈 자리를 보며 한숨 섞인 ‘나마비루’를 들이켜기도 한다. 이처럼 직장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성과보다 몹쓸 감정의 밸런스를 잘 추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
건축도, 번역도, 달리기도, 이따금 들어오는 자잘한 의뢰도 무엇이 본업이고 부업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묵묵한 일상과 어떻게 만나고 이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도 애써 평온함을 유지하거나, 자극적인 것에서 잠시 물러나 나만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일.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다른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 내 언어를 지우고 타인의 의지를 제3의 언어로 채우는 일. 그렇게 나를 둘러싼 대립에 맞서며 아쉬운 오늘에 이별을 고하고 내일을 반긴다. 어쩌면 인생에서 본업이란 고리타분한 이항 대립에 한정되지 않고 나만의 리듬을 연마하고 자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묵묵한 일상이지만,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일이 퍼펙트한 라이프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아마도.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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