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완벽에 가까운 공간의 초상
칸디다 회퍼는 공간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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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 회퍼.

스위스 장크트갈렌 부속 도서관을 담은 ‘Stiftsbibliothek St.Gallen 2021’.
국제갤러리는 내게 집이나 다름없다. 그간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았다. 갤러리를 찾는 관객에게서는 언제나 젊고 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팬데믹 이후 이국적인 공간과 그런 공간이 품은 평온함, 광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작업한 신작을 선보인다. 모두 팬데믹 기간 중 방문한 장소들인데, 당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촬영을 망설이는 날도 많았다고
내 작업은 기본적으로 여행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떠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지만 레너베이션 중이거나 공사를 마친 장소에 먼저 방문해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팬데믹이 합법적 휴식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움직여야 할 또 다른 이유를 준 셈이다. 이렇게 양가적 감정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위) ‘Komische Oper Berlin I 2022’. (아래) ‘Komische Oper Berlin II 2022’.
모두 오래전부터 촬영했던 곳인데 카르나발레 박물관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레너베이션 후 새로운 모습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무척 영광스러운 제안이었고, 무엇보다 공간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다. 호기심은 언제나 내 작업의 강력한 동기였으니까. 장크트갈렌 수도원 부속 도서관의 경우 2001년 때와 달리 사람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라 더 새로웠다. 다시 찾은 수도원은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나를 매료시켰는데,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로 인해 영적인 기운마저 느껴졌다.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주로 ‘사람이 없는 문화적 용도의 공공 공간’을 촬영했다. 줄곧 그런 공간에 끌리는 이유는
이야기한 공적 장소들은 많은 사람을 위한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긴 역사를 품고 있다. 이로 인해 공간은 풍부한 개성(Personality)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다양한 개개인(Persons)’을 만날 수 있는 건 일종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앞에 선 칸디다 회퍼.
사람이 없는 공간 사진 앞에 누군가 섰을 때, 그가 사진 속 공간과 개인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본다. 마치 사진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저마다 다양한 기능을 품은 공간들은 사회적 욕구를 드러낸다. 주어진 역사적 맥락에서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기대와 이용자들이 그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에 관해 말해 줄 수 있다고 본다.

2020년 작업한 카르나발레 박물관 연작. 레너베이션으로 추가된 나선형 계단

2020년 작업한 카르나발레 박물관 연작. 레너베이션으로 추가된 나선형 계단
쾰른에 거주하는 튀르키예 노동자들에 관한 시리즈였다. 독일 문화에 적응하는 가운데 그들이 조성한 생활공간에 초점을 맞췄는데, 그들은 나를 환대해 줬지만 내가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민자들이 고향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만든 장소를 다니면서 공간의 중요성을 다시 고찰하게 됐다. 이후 내 시선은 사람에서 공간으로 옮겨갔다.
작업이 대체로 서구 유럽의 공간, 외관보다 실내에 한정된 것도 사실이다. 다른 대상을 촬영하고 싶을 때도 있는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같은 것 말이다
작업 대상으로 삼는 공간은 주로 내가 친숙하게 느끼는 문화 환경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침해하거나 전유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에 편안하게 다가가 머물 수 있다. 벽이 없는 풍경은 나를 벗어나게 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주변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간 외에 음식이나 거리 디테일 찍는 것을 즐긴다.

2020년 작업한 카르나발레 박물관 연작. 1925년 무도회장을 위해 제작된 붉은 벽화에 집중해 공간의 새로운 변화를 담아냈다.
자연광이든 인공 조명이든 빛은 공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크롭과 인화는 불가피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추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공간을 비난하거나 조롱하고 싶지 않다.
이 외에 당신이 고수해 온 원칙이 있다면
카메라를 중앙에 둠으로써 공간의 대칭과 디테일에 집중한다. 또 적절한 높이에 카메라를 두고 바닥이 드러나도록 찍는다. 이미지 속으로 한 발 내딛는 초대장을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Neue Nationalgalerie Berlin XI 2021’.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하고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복원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복합적인 감정을 안겨주는 것. 당신이 아주 잘 설명했듯이 말이다.

국제갤러리 안뜰에 선 회퍼.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잊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신문과 잡지를 읽는다. 집 앞의 라인강과 보트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한다. 내 생활공간엔 다양한 물건이 있는데, 한스-페터 펠트만(Hans-Peter Feldmann)의 작품처럼 어딘가 장난스러운 구석을 띠는 것이 많다.
당신이 찍은 최초의 사진에 대한 기억은 무엇인가
유년시절부터 카메라를 가까이했지만 처음 찍었던 사진에 대한 기억은 없다. 대신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던 많은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내부. 재정비를 마친 공간 곳곳을 포착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결국 중요한 건 이미지 자체보다 이미지가 우리 마음에 미치는 영향력일 것이다. 따라서 매체는 부차적인 것이 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공개를 앞둔 작품에 대해 들려준다면
공개될지는 모르겠으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찍고 있다. 풍경에 대한 경외심을 극복하려는 나만의 제한적이고도 소심한 노력이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사진가 양중산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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