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근과 파리
"예술은 그 무슨 의식이 아니다. 절실한 인간의 기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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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Yun Hyong-keun, 1980 © Yun Seong-ryeol, Courtesy of PKM Gallery

<윤형근/파리/윤형근>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of Yun Hyong-keun: Yun/Paris/Yun (제공: PKM Gallery)

Yun Hyong-keun, Burnt Umber & Ultramarine, 1981, Oil on hanji, 47 x 63 cm, © Yun Seong-ryeol (제공: PKM Gallery)

Yun Hyong-keun, Burnt Umber & Ultramarine, 1981, Oil on hanji, 48 x 65 cm © Yun Seong-ryeol (제공: PKM Gallery)

<윤형근/파리/윤형근>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of Yun Hyong-keun: Yun/Paris/Yun (제공: PKM Gallery)
1974년 8월 6일 책자 속 기록이 시작되는 첫 장에서 46세의 작가는 “예술은 그 무슨 의식이 아니다. 절실한 인간의 기록일 뿐”이라고 했다. 백발의 노장이 된 1990년에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아주 짧다고 썼지만, 그 이면에는 캔버스 앞에 앉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삶의 자세에 대해 사유하고 흘려보내고 지우고 덧그리며 그 누구보다도 예술에 임했던 마음가짐을 중시하던 그의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며 쌓은 경험, 노동과 땀과 혼이 배도록 하루이고 며칠이고 때때로 몇 달을 두고 몇 번을 되풀이해 마음에 들 때까지 완성을(혹은 미완성을) 기한 노장의 기록은 겸허하고도 소박한 어조로 일상다반사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낸다. 장인 김환기 화백의 죽음도 등장하고, 여행하며 느낀바, 아내와 아들에게 오손도손 작성한 엽서와 편지도 실렸다. 비가 내리는 날에 관해 적는가 하면 간간이 현대미술에 대한 회의나 진정한 예술, 영원불변한 예술에 대해 자신이 통감하는 바를 써 내려 갔다.
어느 날은 예술이란 생활의 흔적일 뿐이라 생각했고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빛깔이 영원성을 지니고 있는 미가 아닌가 싶다며 흙 빛깔을 두고 자연이 썩어서 정화된 빛깔인가 되묻기도 한다. 추상화를 그리는 것은 무에서 유를 낳는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고 토로하고, 이러한 진통과 고뇌를 겪으며 대가가 감지한 시대의 직관적인 예술적 통찰도 오롯이 편찬되었다. 미술 이전에 사람과 그 사람의 자세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더 차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노장의 포용력과 기백, 수수함을 추구한 와중에도 감출 수 없는 품위와 고아함이 여과 없이 담긴 기록을 읽어 보는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

기간 2024.5.2 — 2024.6.29

Credit
- 에디터 박지우
- 글 황다나
- 사진 PKM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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