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브 생 로랑을 카피하지 마세요.’ 2016년 4월의 어느 아침, 생 로랑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된 안토니 바카렐로에게 경고장과도 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 뜻밖에 발신인은 이브 생 로랑의 오랜 파트너이자 재단 대표인 피에르 베르게. 생 로랑 하우스에 공식적으로 부임한 당일 오후, 바카렐로는 곧바로 베르게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의 만남은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저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냥 베르게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죠. 그는 아주 너그럽고 존경할 만한 분이었어요. 오랜 세월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 컬렉션들과 오리지널 ‘카산드르(1961년 그래픽 디자이너 아돌프 무론이 브랜드의 이니셜 ‘YSL’을 겹쳐서 만든 시그너처 로고)’ 포스터를 제게 보여줬죠. 저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해요. 무언가를 계승하는 행위 같았으니까요.” 첫 만남인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2011년 안담(Andam) 패션 어워드에서 각각 창립자와 수상자로 만난 적 있다고. “아카이브 컬렉션을 연구하기 위해 제가 생 로랑 스튜디오 팀을 보낸 것에 대해 베르게가 많이 놀랐다고 전했어요.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하더군요”라고 이야기하는 30대 젊은 디자이너의 입가엔 만족스런 미소가 번졌다. “영감을 얻는 데 실제 아카이브 컬렉션만큼 좋은 소재는 없으니까요.”2017 S/S 쇼를 앞두고 생 로랑의 헤드쿼터가 될 건물 안마당에 설치된 YSL 로고.안토니 바카렐로는 전설적인 이브 생 로랑의 역사를 탐구함과 동시에 지나간 과거를 지우는 일 또한 서슴지 않았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은 이미 눈치챘을 거다. 바카렐로가 영입된 후 생 로랑 공식 인스타그램의 피드들은 마치 계산이라도 된 듯 질서정연하게 삭제됐으니까.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한 에디 슬리먼이 까다롭게 관리해 온 디지털 유산이 소멸된 그곳엔 심각한 눈빛으로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승계자의 포트레이트 사진만이 자리했다. 그건 ‘이젠 생 로랑을 이끄는 건 에디 슬리먼이 아닌, 안토니 바카렐로다’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와도 같았다. 바카렐로는 무엇보다 자신은 정신없는 법정 분쟁과 요란한 일탈 속에서 브랜드를 놓아버린 자아도취적인 전임자 같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지난해 6월, 에디 슬리먼은 생 로랑을 소유한 케어링 그룹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다른 경쟁 브랜드와 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300만 달러를 받았다. 바카렐로가 생 로랑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슬리먼에 의해 줄여진 하우스 본래의 풀 네임을 되찾는 일이었다. ‘이브’의 유산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 하지만 슬리먼의 흔적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브랜드의 웹사이트 속의 ‘라 메종’이란 카테고리엔 슬리먼이 직접 촬영한 흑백사진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말이다. 또 슬리먼의 시대는 마켓에서만큼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건재하다. 2012년에서 2015년 사이 록 문화와 영 제너레이션에서 파생된 그의 스타일은 생 로랑의 연매출을 약 6천억~1조원으로 껑충 올려놓았다. 사하리언이나 르 스모킹에서 볼 수 있듯 자유로운 여성관을 기반으로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려는 무슈 이브 생 로랑의 기준은 굉장히 지적이며 철학적이었다. 하지만 에디 슬리먼은 이런 기준을 쇄신했고, 그야말로 스트리트 패션에 가까운 지극히 동시대적인 컬렉션을 추구했다. 절대 따라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에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바로 생 로랑의 새로운 수장이 된 바카렐로의 최대 도전 과제일 거다. 2017 F/W 생 로랑의 런웨이.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토니 바카렐로. 라 캄브레 모드를 졸업한 후 펜디 디자이너를 거쳐 자신의 레이블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베르수스의 게스트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파격 승진한 그는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룩의 대명사로 불리며, 패션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첫 생 로랑 쇼는 과거 국방부 건물이자 브랜드의 새로운 헤드쿼터가 될 건물의 아치형 통로에서 열렸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건물 안마당엔 거대한 YSL 로고가 기중기에 매달려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과연 공사가 끝난 후엔 어떤 모습일까? 바카렐로를 만나기 위해 파리의 유니벡시테 거리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무드보드와 책상이 한눈에 보이는 그곳엔 온화해 보이는 젊은 청년이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가 앉은 소파 옆의 티 테이블엔 이브 생 로랑에 관한 근사한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에게 긴장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스트레스는 저를 마비시켜요. 그래서 웬만하면 스트레스 받는 일들을 사전에 피하려 하죠. 예를 들어 드레스 하나가 쇼 1주일 전에 완성돼 있지 않으면 저는 그 드레스를 취소해 버려요.” 그는 생 로랑 하우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생 로랑은 제가 꿈꿔온 유일한 하우스 브랜드예요. 만약 다른 브랜드였더라면 제 레이블을 포기하면서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진 않았을 거예요.” 본인을 지적인 쿠튀리에보다 몸을 조각하는 디자이너에 가깝다고 설명하는 바카렐로의 비전은 굉장히 명확했다. “저의 첫 번째 도전은 생 로랑의 여성적인 관능성을 다시 실현하는 거예요. 생 로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항상 매니시한 여성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죠. 생 로랑엔 르 스모킹만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맑고 깨끗한 여성스러움 역시 존재했어요. 이브 생 로랑에게 중성적인 매력의 베티 카트루와 그와 반대로 여성스러운 화려함으로 가득한 룰루 드라 팔레즈라는 두 뮤즈가 함께했던 것처럼요.” 그의 패션쇼 퍼스트로 자리는 제인 버킨의 딸들이자 ‘프렌치 시크의 로열 패밀리’인 샬럿 갱스부르와 루 드와이옹 자매가 차지했다. 마치 베티와 룰루를 대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그는 디자이너와 셀럽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사진 한 장을 위해 5천달러씩 주고 데려오는 스타들을 퍼스트로에 앉히기 싫어요. 그건 진심이 아니니까요. 전 진실된 뮤즈를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