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혁신, 퀄리티와 프랑스적인 우아함, 시크함과 모던함을 동시에 표방하는 명품 브랜드로 매년 발표되는 파리 오트 쿠틔르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랑방이다. 현대 여성에게 랑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비 넥타이를 매고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수석 디자이너 알버 엘바즈. 그러나 그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한인물은 바로 랑방을 설립한 잔느 랑방이다. 엄마와 딸이 손을 잡고 있는 다정한 모습의 랑방 하우스 로고 속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는 20세기 패션을 이끈 디자이너로,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전세계 여성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1890년대부터 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왕성한 활동을 한 패션 디자이너로 코코 샤넬과 함께 20세기 초 프랑스 패션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그녀는 1867년 프랑스의 브리타니에서 10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16세부터 옷 만드는 법을 익혔던 그녀는 탈보(Talbot)라는 양장점에서 양재사로 일하다가 1890년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모자 부티크 ‘메종 잔느 랑방’을 열면서 본격적인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모자를 만들면서 틈틈히 여동생과 딸에게 입힐 드레스를 만들곤 했던 그녀가 의상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바로 그녀의 딸이 입은 드레스가 다른 엄마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로 인해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풍요로운 유럽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다양하고 성공적인 작품을 발표, 프랑스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1927년 선보인 알데히드계의 향수 ‘아르폐쥬’가 세계 3대 향수에 등극함으로써 향수업계에서도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1920년대 최고의 유행 스타일인 ‘플래퍼 룩’를 가장 잘 표현한 디자이너 중 하나로 랑방을 대표하는 ‘로브 드 스타일(Robes de Style)’은 플래퍼 룩의 대표적인 스타일 중 하나다. 가는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로 대표되는 랑방의 슈미즈 스타일의 간결한 드레스는 사교계에 데뷔하는 젊은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2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인의 기본 모델이 되었고 이 후 2차 대전 직후 크리스찬 디올이 선보인 ‘뉴룩(New Look)’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잔느 랑방은 독특한 느낌의 블루 컬러를 특히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녹색을 띤 짙은 청색의 이 컬러는 그녀의 이름을 따서 ‘랑방 블루’라고 불리게 되었다. 쟌느 랑방에게 여성은 르느와르의 그림 모델처럼 아름다운 ‘색’을 가진 사람이며 그녀 자신도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그녀의 옷을 부끄러움 없이 입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시작된 그녀의 패션 사업은 아동복에서 젊은 여성들을 위한 야회복으로, 딸이 결혼한 뒤에는 남성복 ‘랑방 옴므’를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창조, 혁신, 영원, 호기심(Creative, Innovative, endless, curious)’라는 말로 곧잘 표현되는 그녀는 당대를 대표하는 인상파 예술가와 사진가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비즈니스 감각 또한 뛰어나 이후 스포츠 웨어와 란제리, 데코레이션과 향수에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반세기 동안 랑방 하우스를 이끌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공로를 인정해 1926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훈장인 ‘슈바리에 드 라 메종 드뇌르’를 수여했으며 1938년에는 이 상의 심사위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194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랑방은 그녀의 딸인 마리 블랑슈와 사촌인 이브 랑방, 3대손인 메릴 랑방을 거쳐 90년대 들어서는 클로드 몽타나, 크리스티나 오티즈와 같은 빅 디자이너들을 영입하면서 점점 침체되어가던 하우스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잔느 랑방 사후 랑방을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패션 하우스로 부활시킨 일등 공신은 바로 알버 엘바즈다. 2001년, 로레알 그룹을 거쳐 타이완 재벌 그룹에 의해 새롭게 주인이 바뀐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된 이스라엘계 미국인인 알버 엘바즈는 오랜 전통의 랑방을 단번에 패션계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외모부터 사랑스런 이 천재 디자이너는 2002년 F/W를 위한 첫 컬렉션을 시작으로 매 시즌 전 세계 프레스와 바이어로부터 최고의 찬사와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파리 패션계에 ‘올드 하우스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기라로시와 이브 생 로랑, 크리지아를 거쳐 2001년 랑방에 안착한 그의 성공 요인에는 랑방의 전통을 현대 여성에 맞게 재해석하며 여성스러움과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크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 데 있다. “랑방의 옷은 100년 이라는 시간 동안 멋진 여성들의 패션이 되어 왔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어머니와 딸, 두 세대 모두가 랑방의 같은 드레스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 랑방의 정신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자신의 스타일만이 아닌 랑방의 전통적인 패션 정신을 존중하며 발전시키고 있는 엘바즈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리본 장식마저도 그의 손에선 더없이 시크한 디테일로 표현되었으며 겉으로 드러난 지퍼 여밈과 솔기의 아방가르드함 마저로 부드러운 여성성을 잃지 않았다. 이것에 바로 쥴리엣 비노쉬 같은 파리지엔 뿐 아니라 밀라 요요비치, 제시카 알바, 클로에 셰비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로부터 그가 사랑받는 이유다. 2007년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있는 아티스트 100인에 뽑히는 영광을 얻은 그는 2007년 1월에 열린 오트 쿠틔르 컬렉션의 마지막 날인 1월 25일, 프랑스 문화 장관으로부터 기사장에 해당하는 슈바리에 드 라 메종 도뇌르도 받았다. 이 훈장은 1926년 잔느 랑방도 받은 바가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금융위기로 전세계 패션계가 위축했던 지난 시즌, “저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닌 현실주의자입니다. 인생 역시 파티와 런치 약속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알버 엘바즈는 랑방이라는 역사적인 패션 하우스의 수장으로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기에 패션 하우스 랑방은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고, 잔느 랑방을 뛰어 넘어 한층 모던하고 센슈얼한 엘버 알바즈의 랑방을 만들 수 있었다. 120년의 오랜 역사를 나타내면서도 모던함을 잃지 않는 패션 하우스 랑방은 유구한 역사의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도 혁신적이며 우아한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절제된 시크함 그리고 셈세한 디테일과 최상의 품질로 랑방만의 럭셔리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1 189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부티크 '메종 잔느 랑방'을 열면서 본격적인 패션 산업에 뛰어든 잔느 랑방은 코코 샤넬과 함께 20세기 초 프랑스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2 이스라엘계 미국인 앨버 엘바즈. 그는 랑방의 전통을 현대 여성에 맞게 재해석하여 여성스러움과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크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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