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오스카가 외면한 수작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수상에 실패한 뒤늦은 개봉작들은 한결 같이 좋은 배우들의 열연을 품고 있다.

프로필 by ELLE 2014.04.09

 

잘 알려진 대로 <세이빙 MR. 뱅크스> <메리 포핀스>(1964)를 영화화하는 과정을 큰 줄기로 둔 실화 바탕의 작품입니다. 이는 곧 <메리 포핀스>라는 작품의 영화화 과정에 있어서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는 말이겠죠.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인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월트 디즈니가 영화화하고자 했던 자신의 소설 <메리 포핀스>의 판권을 10여 년간 거부해왔지만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이를 수락할 것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의 초대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 월트 디즈니의 사무실을 방문한 그녀는 그곳에서 영화화 작업에 자신의 의견이 관철돼야만 판권을 넘기겠다는 조건을 내겁니다.

 

영화는 두 시제를 두 다리 삼아서 전진합니다. <메리 포핀스>의 영화화 작업이 이뤄지는 1961년의 현재 시제와 원작자 린던 트래버스의 자전적인 비화가 담긴 1904년의 과거 시제가 바로 영화를 걸어나가게 하는 두 다리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긴 발자국을 좇아서 오랜 행보를 따라잡듯이 현재와 과거의 사연을 플래시백하며 원작자인 린던 트래버스 <메리 포핀스>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죠. <메리 포핀스>의 영화화 작업에 관여하며 주변인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히스테릭한 인물 노릇을 하던 원작자 린던 트래버스는 점차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되짚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유년기에 감내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상심 또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그녀 자신이 오랫동안 극복해내지 못했던 내적인 치유와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객석의 관객들에게도 일종의 울림을 전달할 것입니다. <세이빙 MR. 뱅크스>가 그만큼 영화적 경험을 뛰어넘는 감정적 몰입을 제공함으로써 캐릭터와 동화되는 감동적인 경험을 전하는 영화라는 말이죠. 특히 결말부의 시사회 신에선 찰랑거리던 감정의 파고가 넘치는 순간이 존재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유머와 페이소스가 함께 전달됩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세이빙 MR. 뱅크스>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히스테릭한 작가 린던 트래버스를 연기하는 엠마 톰슨은 시종일관 견고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를 통해서 영화는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켜켜이 건축해나가죠. 그리고 톰 행크스는 그 봉인된 감정에 노크를 하듯 유연하면서도 발랄한 리듬감을 그려 넣습니다. 엠마 톰슨이 악보에 그려진선지 같은 바탕을 마련한다면 톰 행크스가 그 위에 유머와 페이소스의 음표들을 그려 넣으며 능수능란하게 캐릭터를 표현해낸다고 할까요. 두 배우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록 있는 배우들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한편 조연을 맡은 폴 지아마티는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공헌도가 상당한 역할을 해내는데 마치 큰 파도를 견디는 단단한 둑을 연상시키는, 든든한 조연의 필요성을 몸소 증명해내는 것만 같습니다.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은 <세이빙 MR. 뱅크스>의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생각해 보면 <메리 포핀스>도 줄리 앤드류스의 열연이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메리 포핀스>가 배우들에게만 온전히 기대는 영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배우들의 공헌도가 뚜렷하게 눈에 띄는 영화들이 있죠.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가 그렇습니다. 한편으로 명음악감독 토마스 뉴먼이 만든 유려한 스코어를 비롯한 음악들도 훌륭한 감성으로 극을 보좌하는데 <세이빙 MR. 뱅크스>는 올해 아카데미 음악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너무 길다(Life is very long)’ T.S. 엘리엇의 시구를 읊는 목소리로부터 시작하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 August: Osage County>를 일축해서 설명하자면 막장 가족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막장의 카타르시스로만 점철된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막장엔 지극히 뚜렷한 지정학적인 인과가 존재하니까요. 원제이자 배경인 오세이지 카운티는 미국의 남서부에 위치한 주이며 현재엔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오래 전 백인들이 빼앗은 인디언들의 영토였다는 말이죠. 이 역사성은 이 영화와 뿌리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오세이지 카운티라는, 허허벌판 같은 땅에서 머무르는 노부부의 가정으로 갑자기 날아든 비극으로부터 장전되는 사연입니다. 이 비극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세 딸이 실로 오랜만에 한 집안에 모여들게 되고 오랜만의 재회는 가슴 깊이 뿌리내린 앙금을 실탄 삼아 저마다 방아쇠를 날리는 총격전 같은 소동극으로 이어집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10여명 남짓의 모든 캐릭터가 저마다 폭탄처럼 터집니다. 결국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의 재회는 대참사에 가까운 독설과 폭로를 통해서 갈갈이 찢기는 해체의 과정을 겪게 되죠. 이 과정에서 오세이지 카운티라는 지정학은 비범한 의미를 얻게 됩니다. 침략과 학살을 통해서 영토를 넓힌 미국이라는 거대한 세계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이 겪게 될 필연적인 비극을 잉태한 역사로 인식됨으로써 결국 미국이라는 국가의 태생적인 원죄를 환기시킵니다.

 

 

 

저마다 뇌관을 안고 있는 듯한 모든 캐릭터들이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극이 굴려가는데 연쇄폭발하듯 거듭되는 이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이 끝내 가 닿는 잔인한 결말이야말로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의 핵심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뚜렷하게 발견되는 건 저마다 끓어오르듯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인상인데 특히 연기 잘하는 것을 알고 보면서도 매번 감탄하게 되는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가공할 연기를 보여줍니다. 줄리아 로버츠 또한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절정이라 할만한 필생의 연기를 선사하죠. 두 배우가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음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그 밖에도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 쿠퍼, 줄리엣 루이스, 더모트 멀로니, 아비게일 브레스린까지 모든 출연진이 제 몫을 해내는데 그 중에서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대단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캐릭터의 비중이 적음에도 극의 서스펜스에 불을 붙이는 큰 심지 역할을 해내는데 등장부터 퇴장까지 단연 인상적입니다. 마치 배우들의 격전장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전직 BBC 기자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옵니다. 자신의 아들을 찾아달라는 한 할머니의 부탁인데 문제는 그 아들이 50년 전 수녀원에서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입양돼버렸다는 것이죠. 물론 그 할머니는 현재 수녀원에 머물지도 않고, 수녀도 아닙니다. 심상치 않은 사연임을 감지한 남자는 특종을 노리고 일을 받아들이지만 여러 모로 방향을 잡기가 난감한 사연이지만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서 과거를 추적해 나갑니다. 그러니까 <필로미나의 기적>은 호기심을 안고 시작하는 여정입니다. 50년 전에 이별한 아들의 행적을 쫓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여정임과 동시에 결국 그 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호기심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여정과 그 동선의 묘사만으로 보자면 <필로미나의 기적>은 로드무비의 묘미를 지닌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버디 무비의 묘미를 지닌 영화이기도 하고요. 중년 즈음의 남자가 지긋한 나이의 노부인과 함께 그녀의 아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떠나는데 종종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관계적 변화는 만담을 나누듯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모자 관계를 연상시키면서도 세대차를 뛰어넘는 우정 어린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적인 변화 자체로부터 얻어지는 재미란 이 영화의 감상적 몰입을 위한 유도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덕분에 소소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도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여정의 종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은 쓰고 비통합니다. 단순히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여정에 불과해 보였던 이 영화는 결말부에 다다르면 생각지도 못했던 형태의 감상을 남겨놓습니다. 일종의 고발극과 같은 메시지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영화는 이 불합리한 진실을 통해서 어떤 흥분을 유발하기 보단 담담한 응시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에 대한 여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도 같고요.

 

 

 

아이러니한 건 그 여정에 동참하고 결과를 목격하게 되는 3자보다도 직접적인 당사자의 입장이 매우 덤덤하고 차분하게 묘사된다는 점인데 오래된 숙원을 성취로 보답 받지 못하는 이의 심정이란 건 결국 그 누군가가 쉽게 이해할만한 단순한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만듭니다. 결국 당사자 본인만이 그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 이후의 선택 또한 그럴 테지요. 그런 심도 있는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 주디 덴치의 깊이 있는 표정 덕분입니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시종일관 귀엽게 떠들어대는 주디 덴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단호하고 명확하게 그 상황을 장악해버립니다. 스타카토처럼 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악센트처럼 방점을 찍어버린다고 할까요. 그리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 주디 덴치의 옆을 지키는 스티브 쿠건은 그녀의 연기와 자연스럽게 공명합니다. 자신의 자리를 명확하게 다지는 배우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음악상까지 아카데미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었습니다. 비록 트로피 하나도 거머쥐지 못했지만 영화를 채우는 대부분의 요소들이 영화에 적절하게 기여하고 있는, 성실한 작품이라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Credit

  • EDITOR 민용준
  • DESIGN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