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어느 천재 디자이너의 드라마틱한 모멘트!

지난 10월 2일 아침, 루브르 카레 궁정 안뜰이 마크 제이콥스의 스완 송으로 채워졌다. 파리의 헤리티지 브랜드를 최고의 파워 하우스로 만들어낸 이 유명한 뉴요커의 지난 16년, 그 인상적인 모멘트.

프로필 by ELLE 2013.10.28

 

 

 

 

 

 

 

 

 

 

 

 

 

1997년, 19세기부터 존재한 파리의 유서 깊은 헤리티지 브랜드에 34세의 뉴요커가 부임한 일은 전 세계가 놀랄 만한 그해의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최고의 럭셔리 하우스가 모인 파리를 진두지휘하던 수장들은 유럽에 본거지를 둔 이들이거나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들이었다. 뉴욕 태생의 마크 제이콥스는 파슨스 스쿨의 졸업 쇼(1984년)로 페리 엘리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1986)하자마자 CFDA 신인상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미국 패션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더욱이 너덜너덜한 시폰 드레스와 줄무늬 셔츠, 청키한 니트 비니, 닥터 마틴으로 채운 페리 엘리스의 그런지 컬렉션(1992년)은 센세이셔널한 논쟁과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패션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완벽하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마크의 미학이 여실히 드러난 결정적인 순간 이후, 커리어의 최대 전환점이 찾아왔다. 비록 뉴욕의 패션 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해도 럭셔리 브랜드에서의 경험은 전무했던 그에게 파리 최고의 럭셔리 하우스에서 러브 콜을 보낸 것이다.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마크 제이콥스는 기성복도 ‘잇’ 백도 슈즈도 전무했던 모노그램 브랜드의 새 역사를 써내려갔다. 단 하나의 모노그램 백도 등장하지 않은 채, 마치 텅 빈 캔버스처럼 미니멀리즘으로 채운 데뷔 컬렉션부터 아이코닉한 ‘잇’ 백을 만들어낸 성공적인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들, 최근 몇 시즌의 아카이브를 총망라해 성대한 피날레를 장식한 마지막 컬렉션까지, 지난 16년 동안 그는 여자들이 꿈꾸는 패션 판타지와 갈망하는 럭셔리를 현실로 이뤄낸 창조자였다. 복식학 특강 수업을 듣기 위해 파리를 찾은 17세의 마크가 운명적으로 빠진 파리와의 러브 스토리는 2013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적어도 현재는.

 

 

 

Credit

  • EDITOR 주가은 PHOTO IMAXTREE
  • GETTY IMAGE
  • LOUIS VUITTON
  • 멀티비츠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