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예술과 마주한 조각들

지구의 탄생, 생명력을 지닌 동식물, 사람들이 모여 만든 문화와 전통, 개인이 사랑하는 그 무엇까지. 만물을 낯설게 본 시선이 담긴 2023 하이 주얼리 컬렉션.

프로필 by ELLE 2023.10.19
 
 
194캐럿 이상의 아콰마린과 옐로 사파이어를 세팅한 ‘드리프트’ 링은 LOUIS VUITTON HIGH JEWELRY.

194캐럿 이상의 아콰마린과 옐로 사파이어를 세팅한 ‘드리프트’ 링은 LOUIS VUITTON HIGH JEWELRY.

루이 비통의 아트 디렉터 프란체스카 암피테아트로프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 ‘딥 타임(Deep Time)’은 암흑 같던 우 주 속, 행성이 탄생하고 대지의 생명이 꽃피기까지 지구의 역사와 수억 년을 거쳐온 시간에 대한 찬사를 담았다. 컬렉션은 화산, 파도, 파열 등 지구의 지질학적 진화를 추적한 ‘지올로지’와 요동치는 우주 속에서 탄생하는 생명 력을 형상화한 ‘라이프’ 두 가지 챕터로 전개된다. 루이 비통은 살아 숨 쉬는 고대 문명의 도시, 아테네의 헤로데스 아티구스 소극장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그렸다.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하고 80개의 팬시 컷 블루 사파이어로 지중해를 표현한 ‘하이 주얼리 세르펜티’ 네크리스는 BULGARI.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하고 80개의 팬시 컷 블루 사파이어로 지중해를 표현한 ‘하이 주얼리 세르펜티’ 네크리스는 BULGARI.

새로운 만남은 흥미로운 발견과 성장을 불러온다. 2023년 불가리는 영감의 원천이었던 로마에서 눈을 돌려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는 인류 문명이 방대하게 교류된 실크로드 끝에 위치해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지중해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도시다. 이런 문화는 창의성을 불태우며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불가리 창립자 소티리오 불가리의 정 신과 닮아 있었고 ‘메디테라네아(Mediterranea)’ 컬렉션의 테마이자 무대가 되기에 충분했다. 불가리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치아 실베스트리는 지중해의 햇살 가득한 해변, 강렬한 토 양, 푸릇한 정원, 정교한 건축물 등 시선과 마주하는 모든 것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깨우쳤고 이탈리아인의 밝고 풍부한 에너지를 주얼리에 옮겨 담았다.

 
표범 털은 기하학적인 픽셀 형태로, 눈과 점은 아몬드 모양의 에메랄드와 오닉스로 세팅해사실적으로 묘사한 ‘르 보야주 레코망쎄 팬더 지브레’ 네크리스는 CARTIER.

표범 털은 기하학적인 픽셀 형태로, 눈과 점은 아몬드 모양의 에메랄드와 오닉스로 세팅해사실적으로 묘사한 ‘르 보야주 레코망쎄 팬더 지브레’ 네크리스는 CARTIER.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근원’이라 한다. 까르띠에는 2023년 하이 주얼리 컬렉션 ‘르 보야주 레코망쎄(Le Voyage Recommencé)’로 오랜 역사와 전통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까르띠에는 메종의 노하우가 담긴 네 가지 탐구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심도 있게 관찰했다. 첫째는 소재와 스톤의 두께, 경사, 라인의 정밀한 비율을 고려하고 균형을 이뤄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빛’을, 두 번째는 대칭과 비대칭에 토대를 두고 패턴을 만들어가는 ‘기하학’을, 세 번째는 감성적인 동화 속 이야기에서 탈피해 사실적 묘사를 담은 ‘자연’을, 마지막으로 수많은 인류와 나라가 형성한 ‘문화’를 주제로 탐구했다. 주얼리 크리에이션 디렉터 재클린은 과거의 까르띠에를 현대적 시각으로 접근해 미래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수백 개의 차보라이트와 에메랄드를 세팅해 빛나는 잎사귀를 표현한 브레이슬릿은 DOLCE&GABBANA.

수백 개의 차보라이트와 에메랄드를 세팅해 빛나는 잎사귀를 표현한 브레이슬릿은 DOLCE&GABBANA.

자연의 비정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교하게 모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이탈리아 남부 지역 풀리아의 1000년이 넘은 올리브 나 무들을 보며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알타 조엘레리아(Alta Gioielleria)’를 구상했다. 칭칭 감아 올라간 뿌리와 가지는 하나의 커다란 나무 기둥이 되고, 이탈리아의 내리쬐는 햇볕 아래 얼기설기 자라난 잎사귀가 짙은 녹음을 띠며 반짝이던 어느 순간을 마주했을 것이다. 돌체앤가바나는 고대의 전통을 숭고하게 여기며 오랜 장인 기술과 자연의 산물인 원석을 가까이했다. 원석은 모양이 다양하고 불규칙하지만, 이내 완전하고 웅장한 피스로 완성된다. 마치 올리브 나무처럼.

 
패브릭처럼 유연해 보이는 ‘타이 더 노트’ 브로치, 옐로 사파이어를 구체 형태로 세팅한 ‘디스 이즈 낫 어 링’ 링은 모두 BOUCHERON.

패브릭처럼 유연해 보이는 ‘타이 더 노트’ 브로치, 옐로 사파이어를 구체 형태로 세팅한 ‘디스 이즈 낫 어 링’ 링은 모두 BOUCHERON.

고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낙천적 태도는 삶과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코로나로 록다운이 지속되던 어느 날, 부쉐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은 생각의 전환을 시도한다. 하이 주얼리의 일반적 크기와 형태, 소재 등에서 벗 어나 즐거움으로 가득한 컬렉션을 만들자고! 그렇게 탄생한 ‘모어 이스 모어(More Is More)’ 컬렉션 피스는 팝한 컬러로 시선을 끌며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든다. 남자 모델의 어깨를 덮을 만큼 커다란 체인 형태 네크리스는 그림 같은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팬시점에서나 볼 법한 스티커 디자인은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부쉐론은 오랜 기술력과 장신 정신을 기반으로 무한한 상상력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바게트 사파이어로 해파리의 촉수를 표현한 ‘컬러드 젬스톤’ 이어링, 18캐럿 오벌 카보숑 블랙 오팔을 세팅한 ‘블랙 오팔’ 브레이슬릿은 모두 TIFFANY & CO.

바게트 사파이어로 해파리의 촉수를 표현한 ‘컬러드 젬스톤’ 이어링, 18캐럿 오벌 카보숑 블랙 오팔을 세팅한 ‘블랙 오팔’ 브레이슬릿은 모두 TIFFANY & CO.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티파니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잔 슐럼버제. 혁신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던 그에게 환상적인 바닷속 생물은 무한한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훌쩍 넘은 2023년, 티파니는 슐럼버제의 디자인 철학을 이은 블루북 컬렉션 ‘아웃 오브 더 블루(OutoftheBlue)’를 공개했다. 이번 컬렉션은 하이 주얼리 수석 예술 감독 나탈리 베르드일이 디자인한 첫 번째 티파니 블루 북으로 조개, 산호, 해파리, 불가사리 등 일곱 가지 테마를 현대적으로 각색해 선보인다. 컬렉션 피스들은 섬세하고 유기적인 디테일로 생명체의 형태를 더욱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담아냈고, 수중 생물을 낯설고도 신비한 모습으로 표현해냈다.

 
 (위)9.35캐럿 에메랄드 컷 사파이어를 세팅한 ‘아가판서스’ 링은 CHAUMET. (아래)핑크와 블루, 옐로 사파이어로 다채로운 꽃잎을 표현한 ‘르 자댕 드 라 꾸띄르’ 네크리스는 DIOR JOAILLERIE.

(위)9.35캐럿 에메랄드 컷 사파이어를 세팅한 ‘아가판서스’ 링은 CHAUMET. (아래)핑크와 블루, 옐로 사파이어로 다채로운 꽃잎을 표현한 ‘르 자댕 드 라 꾸띄르’ 네크리스는 DIOR JOAILLERIE.

(위)쇼메 창립자 마리에티엔 니토는 스스로를 ‘자연주의 주얼러’라 일렀다. 자연을 이해 하고 주얼리에 동화시키는 데 진심이었던 그의 정신은 2023년 ‘르 자뎅 드 쇼메(Le Jardin de Chaumet)’ 하이 주얼리 컬렉션까 지 이어진다.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컬렉션 은 숲속의 다채로운 식물과 마주한 메종의 여행을 표현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자라는 고사리 같은 소박한 식물부터 무성한 덤불을 지나 햇살에 반짝이는 밀밭, 수확을 기다리는 포도나무를 향해 고개를 들면 끝을 알 수 없이 장엄한 나무가, 다시 촉촉한 대지에 놓인 연약한 꽃까지 아름답게 공생하는 자연물을 68가지 피스로 완성했다.
 
(아래)크리스챤 디올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랑빌의 저택에는 큰 장미 정원이 있었다. 디올은 원예에 뛰어난 감각을 보였고 이것이 오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수많은 컬렉션을 꽃으로 물들였다. 2023년 디올의 정원은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의 지휘 아래 ‘르 자댕 드 라 꾸띄르(Les Jardins de la Couture)’ 하이 주얼리 컬렉션으로 재구성된다. 컬렉션은 자연의 풍부한 생명력에 화려한 컬러를 더해 식물 세계를 아름답게 구현해냈다. 또 다양한 사이즈와 원근법을 활용하고 비대칭과 불균형 사이를 오가며 자연의 매력을 이끌어냈다.
 
루비 앙상블과 10.17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트위드 로열’ 네크리스는 가격 미정 CHANEL HIGH JEWELRY.

루비 앙상블과 10.17캐럿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트위드 로열’ 네크리스는 가격 미정 CHANEL HIGH JEWELRY.

사랑은 예로부터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가브리엘 샤넬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공작과의 연애 시절 그가 입던 재킷을 빌려다 트위드 컬렉션을 만들었고, 이후 트위드는 샤넬의 상징적 아이템이 되 었다. 샤넬의 화인 주얼리 크리에이션 디렉터 파트리스 르게로 또한 가브리엘이 창조한 놀라운 패션 세계를 사랑했고, “보석으로 세팅한 트위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라고 전하며 ‘트위드 드 샤넬 (Tweed de Chanel)’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였다. 가브리엘이 사랑한 리본, 까멜리아, 사자 등 다섯 가지 아이콘을 담아 완성한 컬렉션은 트위드 소재 특유의 풍성함, 섬세함, 유연함 등 고려해야 할 수많은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시간을 투자했다. 디테일한 작업을 마친 주얼리는 마치 옷을 걸쳐 입듯 몸의 곡선을 따라 자리 잡는다.

 

Credit

  • 에디터 김영서
  • 아트 디자인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인 민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