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화이트 큐브 개관전에서 만난 이진주

아시아 두 번째로 서울에 문을 연 화이트 큐브 개관전. 7인 아티스트 중에서 유일한 한국 여성, 이진주가 의문을 품은 것들.

프로필 by 전혜진 2023.09.29
화이트 큐브 서울 개관전은 12월 21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 개관전은 12월 21일까지.

 
 개관전 주제 ‘영혼의 형상’과 당신 작품은 어떤 접점이 있나
 
전시된 넉 점의 ‘블랙 페인팅’ 시리즈에서 얼굴이나 손은 파편화된 채 그려졌다. 인체 형상이 아닌, 세계를 바라보는 영혼의 주체로 말이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인지하고, 해석하는 세계는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 상상이 결합돼 아주 주관적이고 내밀하다. 신체 일부만 노출된 채 모두 어둠으로 가려진 여백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볼까. 진짜 보는 풍경은 무엇이고, 이 세계를 마주한다는 건 무엇일까. 역으로 눈을 가리거나, 듣거나, 말하는 제스처를 통해 ‘보는 것’의 의미를 재정의했다.
 
동양적인 ‘선형’이 두드러지던 과거 작품과는 달리, 검정을 필두로 극강의 어두운 ‘면면’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작품에 사용한 검정색은 남편이자 작가 이정배가 여러 실험을 거쳐 고안했다. 기존과 다른 채도와 질감을 지녔다. 2017년부터 시리즈가 시작됐는데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 시기에 많이 아팠던 아버지가 이듬해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때 삶과 사회적 죽음 혹은 개인적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에는 검은 어둠 속에 파편화된 얼굴과 손, 오브제들만 떠올랐다. 검은색 여백을 작품에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낱낱하고 세밀하게 표현된 잔털과 붉은 흉터, 주름을 지닌 작품 속 ‘여성’은 누구인가
 
‘그녀’ 혹은 ‘그’도 될 수 있다. 털은 인체에서 입술과 손바닥, 발바닥을 제외하고 모든 피부를 덮고 있다. 얼핏 보면 징그럽다. 여성은 털을 제거하려 애쓰기도 하고, 사춘기 때는 그것이 큰 의미로 와닿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개미를 관찰하면, 그 작은 개미가 온 눈에 가득 찬 것처럼 확대돼 보이는데, 그런 효과를 의도했다. 모든 인지 감각과 자극을 집중해 어떤 것을 새롭게 볼 때 우리가 새롭게 인지할 수 있는 지점 혹은 그 인지를 통해 느끼는 감각이나 생각, 기억을 환기하고 싶었다.
 
당신의 세밀화를 ‘집념의 묘사력’이라고도 한다. 빽빽하게 획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감정은
 
완성도나 묘사력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빽빽하고 밀도 있게 세계를 구현해 온 내 시간과 시선을 보여주는 방법이자 통로다.  
 
전시 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무엇을 얻길 바라나
 
몸의 세밀한 표현에서 그간 발견하지 못한 걸 느끼시길. 제 작품에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관람자의 시간을 갖고 싶다. 아주 세밀한 세계, 손톱 하나하나까지 다 보이는 작은 형상들을 쫓아가다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세계가 당신에게도 있길 바란다.
 
그림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려는 것은
 
이 세계가 굉장히 부조리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매일 뉴스를 봐도 인간의 어리석은 역사는 반복되고, 결코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이에 좌절하고 회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계속 작품으로 마주하면서 세상의 본질을 알아가고 싶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Courtesy of 이예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