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가 짙게 낀 하늘도 거짓말처럼 파래진다. 햇빛과 바람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파랑을 목격할 수 있는 강원도 양양. 지평선 끝자락에 바다가 보이고 푸른 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박푸름·최수경 부부와 여섯 살 아들이 살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에서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동네에 새로운 건축물이 생겨도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 집터를 찾고 있었어요.”
부부는 오랜 시간 오대산과 바다가 보이는 집을 짓는 것을 갈망해 왔다. 신혼 때도 직접 지은 집에서 살았지만, 초보 건축주였기에 느꼈던 아쉬움을 보강한 드림 하우스가 이곳에 펼쳐졌다. “하조대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을 보고 이런 곳에 살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남편이 선뜻 ‘그러면 살면 되지’ 하더라고요.” 홍콩을 여행하다 만난 두 사람은 사귄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고, 상견례하기 전에 용인 타운 하우스에 가계약금을 넣었다.
직접 지은 신혼집을 뒤로하고 연고 하나 없는 양양에 터전을 잡는 것 역시 커다란 결정이었지만 이번에도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아마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아파트 생활을 했을 거예요.” 주택에 대한 로망은 결혼과 동시에 현실이 됐다. 부부는 차곡차곡 모아온 두 번째 집에 대한 바람을 건축사무소 나우랩과 만나기 전에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해 갔다. 17평짜리 3층 집에서 살았던 이들은 관리하기 힘든 마당 면적을 줄이고, 층수가 많은 대신 한 층의 면적이 넓기를 바랐다. 두 사람은 조감도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기둥 위로 지붕 중앙이 동그랗게 열려 있어 하늘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액자를 연상했다. 자갈이 깔린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즐기거나 텐트를 치고 캠핑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부는 자신의 마당을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도화지라 부른다. 출입문을 지나 1층 복도를 따라가면 침실과 욕실에 난 유리문이 찬란한 햇살을 방 안으로 들여온다. 이는 수영을 마친 뒤 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욕실로 향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낮은 담과 기둥으로 둘러싸인 건물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2층에는 설계 계획에 없던 다락방이 들어섰다. “현장 소장님의 아이디어로 아이에게 선물 같은 공간이 생겼어요. 뻐꾸기 창과 미끄럼틀 때문에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동선도 물 흐르듯 이어지죠.” 공간 구석구석 코너마다 콘크리트 벽면을 둥그렇게 마감한 이유도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길 바라서다.
뻐꾸기 창을 낸 다락방은 발판을 밟고 올라가면 된다.
“가끔 낮잠을 자다 어슴푸레 눈을 뜨면 우리 집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내가 살아도 되는 집인가, 꿈 같은 기분이 들곤 해요.” 칠흑 같은 밤이 오면 세 가족이 마당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보는 시간은 일상에서 여행의 설렘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양양이 품은 초록은 가족이 함께하는 풍경을 오롯이 바꿔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