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앨런 치퍼필드


52번째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치퍼필드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절제된 건축물을 선보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를 마구잡이로 차용하며 유행에 편승하는 여타의 건축가들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죠. 대신 그는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이나 생명력을 잃어버린 건물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가령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광장에 세워진 ‘프로쿠라티에 베키에’의 내부 벽돌을 그대로 유지하며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가까이 방치된 ‘베를린 신 박물관’의 총탄 박힌 기둥을 그대로 살린 채 복원하는 식으로 전통과의 조회를 꾀하면서요.



치퍼필드는 2017년 완공된 용산 아모레 퍼시픽 본사를 설계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정갈하고 고요한 정취를 간직한 조선백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흰색 정육면체 모양의 건물 외벽에는 약 2만 개의 빽빽한 수직 차양 틀이 드리워진 모습인데요.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연과 맞닿을 수 있는 건물 내 3개 정원도 놓치지 않았죠. 이렇듯 멀리서 봐도 단 번에 눈에 띄는 감각적인 외관과 일반 대중 또한 자유로이 출입이 가능한 공공 공간으로 건립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9년에는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고층 건물’에서 2개 부문 대상과 1개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중국 상하이의 웨스트번드 미술관, 스페인 발렌시아의 아메리카스 컵 빌딩, 일본 이나가와 묘지 예배당 등 도시의 역동적인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건축물을 선보여온 치퍼필드. “건축가보다 건축물이 중요하다”라는 그의 말처럼,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건축의 고유한 기능에 집중한 그의 작품 안에서 도시의 구성원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호흡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