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200명의 중심에서 "혼자 사세요!"를 외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엘르보이스] 200명의 중심에서 "혼자 사세요!"를 외치다

'물리적 독거'를 넘어서 '내가 나인 채로' 살아보기로 결심한 사람들과 진행한 비혼세의 첫 공개방송기.

이마루 BY 이마루 2023.03.14
200명의 중심에서 “혼자 사세요!”를 외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심심하고 외로워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아무래도 결혼이나 양육 이야기가 많은데 주변에는 비혼자가 더 많아 이런 사람들도 잘 산다는, 생각보다 별일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셈이었다. 스스로 팟캐스트의 팬이기도 하고, 녹음 핑계로 친구와 만나 수다도 떨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1인 녹음으로 시작한 팟캐스트는 예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선택을 의심받아야 했던 비혼주의자,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아직도 고민 중인 현재 비혼자, 대출 때문에 혼인신고를 한 동거 커플 겸 비혼 실패자, 미국에서는 유부녀지만 한국에서는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레즈비언 부부 등이 출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청취하고 사연을 나눠주었다. 우리의 비혼 라이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덕질, 음주가무, TV 프로그램, 운동, 반려동물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진행자인 나와 청취자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1월 7일, 비혼세의 첫 공개방송에 도전하기로 한 것. 공개방송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솔플’(솔로 플레이의 줄임말)의 달인을 자처하는 분답게 동반 없이 1매만 예매한 관객이 많았다. 혼자 살자는 사람들이 기를 쓰고 모인다는 소문에 많은 분이 발 벗고 나섰다. 200명이 넘는 관객에게 줄 선물을 기꺼이 내주기도 하고, 선물 포장할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소중한 토요일을 헌납하고 현장 직원이 돼주기도 하면서. 공연 시작! 수년간 매주 편집하며 들어온 오프닝 음악이 흐르고, 암전 속에서 라이브로 오프닝 멘트를 했을 때는 온몸이 떨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나, 이 사람들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까, 눈앞에 있는 나를 보며 실망하진 않을까,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내 외모에 대한 평가와 내가 좋은 진행자인지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며 백스테이지 암막 커튼과 함께 눈앞을 막았다. 이미 컴컴한 무대였지만, 눈을 질끈 감고 멘트를 읊었다. “All the single ladies, single people이 말하는 비혼의 세상, 비혼세!” 순간 공연장 전체에 환호성이 터졌다. 조명이 켜지고 “안녕하세요, 저는 해방촌 비혼세입니다!” 하는 순간 눈앞에 진짜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스크 위로 한껏 웃어 보이면서. 충격, 비혼세 청취자 실존! 긴장한 덕분에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여러분, 여기 왜 왔어요?”로 시작된 시답잖은 이야기에 매 순간 웃어주는 관객 덕분에 얼굴의 절반을 덮은 초면의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체감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관객을 만났다는 느낌보다 200명의 비혼세를 만난 기분이었다. 늘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고,
 
언제나 서로에게 너그러운 사람들. 이기적인, 홀로, 외로운 등으로 허술하게 포장됐던 비혼 여성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잘 연대하고 포용적이며 다양하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신해 왔던 사람들이 추운 날 먼 길을 걸어와 조명처럼 ‘탁’ ‘탁’ 켜졌다. 캄캄한 백스테이지에서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비혼 라이프를 둘러싸고 우리가 서로 나눠온 메시지를 똑같이 전해줬다. 괜찮다고, 우리 이렇게 함께 있으면 안전하고 따뜻하다고. 두 시간이 거짓말처럼 흐르고, 비혼세 팟캐스트가 조금씩 커져가고 공개방송을 꿈꾸기 시작한 이후로 늘 하고 싶었던 걸 해보기로 했다. 다 함께 혼자 살자고 외치기. ‘결혼하세요’를 외치는 세상에서 “혼자 사세요!”를 외치는 한 명이 돼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던 클로징 멘트. 여기서 외치는 ‘혼자’란 물리적 독거가 아니라 ‘내가 나인 채로, 내 삶을 결정한 채로’라는 의미를 알아본 사람들과 함께 외쳐보고 싶었다. 비혼세를 함께 끌고 와준 고마운 게스트, 현장에서 뛰어준 친구들, 공연장에 와준 200명의 소중한 사람들과 오지 못한 사람들의 몫까지 쩌렁쩌렁 외쳤다. “혼자 사세요!” 그 순간은 지금까지도 액자처럼 남아 글을 쓰는 지금도 코가 시큰거린다.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선명하게 배우는 건 ‘혼자 잘 사는 방법은 잘 의존할 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날 “혼자 사세요!”를 함께 외쳐준 마음에 의존하면서, 더불어 혼자 살아갈 방법을 함께 찾아갈 생각이다. 이렇게 살아도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평범하고, 많고, 다양하고, 즐거워요. 여러분, 혼자 사세요! 
 
곽민지
‘해방촌 비혼세’라는 닉네임으로 조금 더 친근한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방송작가.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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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디자인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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