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지금] 이태원으로 출근하는 사람, 한국이 좋아서 온 사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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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지금] 이태원으로 출근하는 사람, 한국이 좋아서 온 사람

마땅한 존중과 애도가 뿌리 내리길 바라며! 지금 이태원에 사는 사람들.

이마루 BY 이마루 2023.03.11
김혜경의 직장은 한강진역과 이태원역의 중간 지점에 우뚝 선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이다. 회사 바로 옆 뒷골목에 자리했으나 지금은 영업을 종료한 그로서란트 슈퍼마르쉐 앞에서.

김혜경의 직장은 한강진역과 이태원역의 중간 지점에 우뚝 선 광고기획사 제일기획이다. 회사 바로 옆 뒷골목에 자리했으나 지금은 영업을 종료한 그로서란트 슈퍼마르쉐 앞에서.

 

김혜경

낮에는 광고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쓴다. 책 〈시시콜콜 시시알콜〉 〈아무튼 술집〉 〈한눈파는 직업〉 등을 썼다. 팟캐스트 ‘시시알콜’에서 술 큐레이터 DJ로도 활동 중. 
 
내가 사랑하는 이태원
낯설고 색다른 느낌, 변화에 예민한 도시 감각 때문에 생기는 이태원만의 활기를 사랑한다. 외국인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서울에서 가장 다양하고 이색적인 맛집을 즐길 수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트렌드에 맞춘 즐길 거리도 많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형태로 공존하는 것을 보며 저마다 매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태원과 나의 인연
이태원 중심에 있고, 한밤중에도 항상 불이 켜져 있어 이태원의 가로등이 돼주는 광고회사에 다니는 만큼 이태원은 내게 한없이 일상적인 곳이다. 특별한 기억을 꼽자면 작업실을 운영했던 2년간. 보광동 골목에 있는 월세 25만 원짜리 원 룸을 아늑하게 꾸며놓고 팟캐스트 녹음도 하고, 술도 헤아릴 수 없이 마셨다.
 
10·29 참사를 둘러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
10년간 반복하고 있는 출근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회사에 가려면 이태원역에 내려서 걸어야 하니까.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지나치게 될 수밖에 없어 눈물이 날 것 같아 한동안 이태원역에서 내리지 못했다. 일부러 한 정거장 더 가서 한강진역에 내려 더 먼 오르막길을 걸어서 출근했다. 그 길에서 많은 회사 사람과 마주쳤는데 모두 말은 하지 않지만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체로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이태원역을 다시 이용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미디어의 반응
유가족을 위로하고 슬픔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긴 보도들. 국가 애도기간 중 영업은 하지 않지만 소방관이나 경찰들이 쉴 수 있도록 매장을 열었던 이태원 뚜레쥬르에 대한 보도도 인상 깊었다. 최근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이 연대해 준 시민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읽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개인의 일상 혹은 관심사에 생긴 변화
여전히 출퇴근을 반복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공연장처럼 많은 사람과 좁은 곳에서 놀아야 하는 곳에 가기도 한다. 다만 나와 같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누군가가 이제 이 세상에 없고, 그래서 많이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이 더 슬퍼하고 분노하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란다. 특별한 날 색다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친구들과 노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이태원이 어떤 면모를 잃지 않길 바라나
슬픔을 잊지 않고 기쁨을 잃지 말길. 우리나라에서 제일 복잡하고 혼란한 매력을 가진 지역이니까, 그 모든 감정을 가지고도 계속해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이태원을 찾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해한다. 슬픔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니까. 사람마다 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동안 이태원역을 이용하지 못했던 것처럼.
 
야근이 일상인 만큼 사무실에서 해 질 녘 이태원을 보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야근이 일상인 만큼 사무실에서 해 질 녘 이태원을 보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사무실에서 바라본 이태원. 무지개가 떴던 날.

사무실에서 바라본 이태원. 무지개가 떴던 날.

 
2017년부터 이태원에서 2년간 운영한 작업실 사진. 왼쪽이 내 것, 오른쪽이 친구 것.

2017년부터 이태원에서 2년간 운영한 작업실 사진. 왼쪽이 내 것, 오른쪽이 친구 것.

 
‘냉삼’으로 유명한 이태원 터줏대감 ‘나리의집’ 빨랫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냉삼’으로 유명한 이태원 터줏대감 ‘나리의집’ 빨랫줄을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원 일대와 남산, 해방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은 파올라가 자연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종종 찾는 장소다. 이 공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자리한다. 독립을 위해 싸운 어린 소녀를 기념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매료됐다.

이태원 일대와 남산, 해방촌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태원부군당역사공원은 파올라가 자연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종종 찾는 장소다. 이 공원에는 유관순 열사의 추모비가 자리한다. 독립을 위해 싸운 어린 소녀를 기념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매료됐다.

 

파올라

라디오 DJ, 오디오 엔지니어, 작가로 활동 중인 이탈리아인. 국내 음악 신에 대한 애정으로 음악과 한국어를 공부하러 왔다. 
 
내가 사랑하는 이태원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서툴러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태원은 달랐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나이트라이프와 클럽이 유명한 것에도 끌렸고. 좋아하는 클럽에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점, 경치가 아름다운 언덕이 많고, 한강과 가까우면서 서울 중심부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가장 중요했던 건 아웃사이더 모두가 환영받고, 편견 없는 동네라는 점이다.
 
10·29 참사를 둘러싼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경험
팬데믹으로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맞는 핼러윈데이였다. 참사 전날에 이태원에 있었지만, 10월 29일에 친구가 개최하는 파티가 있는 합정동으로 갔다. 이태원에서 소식이 들려오고 사태가 분명해졌을 때 더는 파티를 즐길 수 없었다. 집이 참사 현장 근처였기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새벽 4시쯤 겨우 택시를 잡았지만, 이태원로는 통제됐고 상황은 끔찍했다. 동네 친구들과 안부 문자를 주고받으며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미디어의 반응
젊은이들을 탓하는 것. 이번 참사는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아니었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어린 친구들의 잘못이 아니다. 예방이 가능했기에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이트라이프를 ‘혼돈’이나 ‘소란’과 연결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태원은 그냥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 있고, 자유로운 장소일 뿐이다. 이태원이 위험한 동네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울의 다른 붐비는 지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참사 당일 내 연락을 받은 이탈리아의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한국을 유럽의 다른 많은 지역보다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변화가 있다면
처음엔 모두 충격을 받았고, 즐겁게 노는 행동을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한 이태원의 바와 클럽에서 다시 음악을 듣는 일 또한 비극을 대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어떤 골목은 걷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이태원의 거리, 맛집과 숍은 여전히 오간다. 이웃들의 삶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이태원을 찾길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특정 잣대로 판단되지 않아도 되고, 타인의 세계를 자유로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다양한 아티스트의 그림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밤뿐 아니라 낮에도 아름답고 재미있는 동네, 이태원을 다시 즐기러 오길 바란다. 이태원은 언제든 당신을 환영할 테니까.
 
경리단길 정상에서 바라본 일몰.

경리단길 정상에서 바라본 일몰.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SCR (Seoul Community Radio)에서 프랑스인 친구 이네스과 미국인 카 와이와 함께.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SCR (Seoul Community Radio)에서 프랑스인 친구 이네스과 미국인 카 와이와 함께.

 
바비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한 건물.

바비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한 건물.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이태원 한 고깃집 간판.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이태원 한 고깃집 간판.

 
오래된 주택과 주상복합건물이 뒤섞인 이태원의 가을.

오래된 주택과 주상복합건물이 뒤섞인 이태원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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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전혜진/정소진
    사진 김형상
    아트 디자인 김려은
    디자인 장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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