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플랫폼이자 스토어로서 경리단길의 활기를 되찾는 데 일조하는 노우웨이브 서울 옥상에서. 낮부터 새벽까지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문화 교류가 이뤄지는 이태원이 다시 활기를 되찾길 바란다.
장르 불문의 글로벌 커뮤니티 플랫폼 ‘노우웨이브 서울’의 디렉터. 유튜브, 노우웨이브 웹사이트에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와 전문가 인터뷰 라디오도 진행 중이다.
밤에 놀거리가 활발하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개성적인 사람이 모여 문화의 경계가 없는 동네. 특히 2010년부터 2018년 까지는 그 농도가 매우 짙었다. 그즈음 새벽에 이태원 가자는 탑승자에게 싫은 내색을 하는 택시 기사도 있었다. 새벽 2시에도 골목이 붐볐으니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공간이었던 케이크샵 서울 앞 공터가 지금은 추모공원이 됐다.
펜데믹 당시 지역 전체가 ‘셧다운’되는 경험을 한 이태원이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초반부터 활기를 찾았다. 지난해 4월에 문을 연 노우웨이브도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2~3주마다 열릴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 기세를 몰았던 게 10월 28일에 열린 지구촌 축제다. 다음날 나도 나름의 코스프레를 한 뒤 이태원의 밤을 만끽했고, 이태원 소방서 옆 건물 2층에서 파티도 즐겼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파티는 중단됐고, 참사가 벌어졌다. 오전 6시까지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거리가 마비됐다.
점점 활발해지나 싶던 해방촌과 경리단길도 다시 한산해졌다. 활기를 잃고 몇 달이 흐른 지금 정체되는 느낌을 받아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서른 명 정도의 친구들과 함께 뱅쇼 파티를 열고 서로를 위로했다. 전에 하지 않던 캠핑도 시작했다. 참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며 입은 정신적 타격을 회복하기 위해 취미를 찾아 나섰다.
밤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길 바란다. 사람들은 이태원의 밤 문화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태원은 방탕하게 노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교류되는 장이다. 음악 · 미술 등 예술 활동이 일어나고,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이런 문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영감과 새로운 재미를 얻어간다. 자주 찾던 클럽이 사라지는 현상이 더 지속되지 않길 바란다.
미디어에서 이태원 골목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자주 비춰줬다. 동네이기 때문에 방문해 촛불을 켜고 기도했다. 울부짖는 음성이 가득한 한편, 공기는 삭막했다. 황폐화된 도시에 남겨진 것 같았고, 보도블록엔 외국인만이 지나다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위치한 펍 ‘선셋비치’를 방문했다. 주말이면 꽉 찼던 곳인데 직원만 덩그러니 남아 있더라.
“여러분, 이태원 으로 오세요”라는 말이 현 상황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주민과 상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붙박이처럼 이태원에서만 생계를 이어왔다. 그런 사람들이 크고 작은 변화를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 ‘힙’한 공간 때문에 갑자기 사람이 몰렸다가 끊기는 게 반복됐고, 과거 사건사고에 이어 참사까지 일어났다. 반복된 변화를 맞는 건 오로지 이태원에 머무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극복하고 견뎌왔다. 지금도 아프지만 견뎌내고 있다. 그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이태원의 명물, 합덕 수퍼 앞에 마련한 첫 작업실에서.
노우웨이브 라디오 촬영을 위해 찾은 보광동 건물 옥상.
이태원 남쪽에 자리 잡은 볼레로 앞에서 친구들과 한 컷.
과거 클럽 레거시의 북적이는 활기를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이태원 옆 해방촌은 반려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기견이었던 정원이가 빠르게 집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고,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곳이 많은 동네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해방촌의 골목골목을 잇는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서.
이태원 옆 해방촌에 살면서 글을 쓰고 방송을 제작한다. 비혼 라이프 가시화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이자 ‘해방촌 비혼세’라는 닉네임으로 친근한 방송 작가. 지난해 10월 반려견 ‘김정원’과 가족이 되며 동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 중.
한국에서 가장 다양성과 고유성이 존중받는 동네다. 다양한 인종과 힙스터가 모여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토박이 주민도 많다. 비건과 할랄 식당, 견종을 가리지 않고 중대형견과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많으며, 동네 전체가 한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퀴어 프렌들리하다. 외국인이 관광객이 아니라 사장님인 풍경도 자연스러운 동네. 누구도 주인이 아니고, 누구도 기준이 아닌 곳이어서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동네다.
참사 2주 전인 10월 13일, 반려견 김정원 을 입양했다. 참사 당일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늘 분리수면을 했지만 정원이가 많이 놀란 것 같아서 처음으로 침대로 올려 안심을 시키는데,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사이렌 소리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정원이와 산책하다 남산공원쯤에서 스마트폰을 켰더니 ‘난리’ 였다. 연락을 확인하며 계속 심호흡을 했다. 내가 아는 직접적인 희생자는 없지만 많은 친구들이 한동안 장례식에 가거나 안부를 확인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6년째 이곳에 사는 주민 입장에서는 모든 게 새삼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놀라울 정도의 인파가 아니었는데도 너무 이례적인 일이다 보니 참사가 발생한 것처럼 보도되는 것도, 일방통행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자들이 서 있는 모든 골목이 20대 이후 쭉 추억을 만든 공간이라 카메라가 어디를 잡아도 그곳에 얽힌 기억 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CPR을 하고 사람이 절규하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방송으로 보여줘 그런 장면과 마주하는 게 정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늘 이태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그 감각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상구를 확인한다. 희생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연재하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_ itaewon_official) 계정을 팔로하며 정독한다. 피해자 유가족의 추모가 존중받길 원한다. 동네를 오가며 분향소를 보면 모욕적인 현수막과 인파가 정말 많다. 서울시가 추모 공간을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옮길 것을 통보했다는데, 이 참사를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여기는 듯해 주민 입장에서도 모욕적이다. 서울시청 분향소가 잘 지켜지고,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 날 이태원에 사람이 모인 것은 그저 일상의 한 조각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가끔 들러주길. 이태원은 이미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외국인이 많아서… 퀴어 클럽이 많아서…. 비슷한 사건을 겪어도 혐오를 바탕으로 한 편파적인 보도로 인해 고비를 겨우 넘긴 상권에 또다시 위기가 닥친 것이 마음 아프다. 한국 어디에도 없는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누구든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이 동네에 사랑을 돌려주길 바란 다. 마침 상권 회복을 위한 10% 할인 상품권도 서울페이에서 판매 중이다.
회복탄력성. 한마디로 ‘존버력’! 이태원은 녹록지 않은 상황과 편견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존버력으로 피어난 동네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많은 소수자와 소외된 사람들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마음 둘 곳이 됐고, 나 또 한 20대 이후 이태원과 나이를 먹은 덕에 내 안의 자기혐오나 타인에 대한 포용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멋진 동네가 이번에도 이태원답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응원과 사랑을 담아 오늘도 이태원으로 술 마시러 갈 예정이다.
동네 친구들과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해방촌 래빗 홀에서 열린 벌레스크 쇼. 안무를 맡은 친구를 응원할 겸 찾았다.
마을버스가 지나다니는 해방촌 언덕. 매일 다니는 산책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