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아웃오브서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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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아웃오브서울

책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저자. 평일에는 리빙 MD로 주말에는 작가이자 주말 농부로 사는 김미리의 진솔한 오도이촌 이야기.

김초혜 BY 김초혜 2023.04.07
 
오도이촌을 하고 있다. 1주일에 5일은 서울에서 살고, 나머지 이틀은 시골에서 보낸다. 금요일 밤,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이면 천천히 밥을 먹고 서울 집을 정리한 뒤 도로 위에 차가 서서히 줄어들 때 시골로 출발한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거의 자정이다.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기도 하고,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며 고요한 밤을 즐긴다. 계절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내 시골마을은 봄이면 쑥과 풀꽃이 지천이고, 여름엔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을 수 있다.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겨울이면 인적 드문 산길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집은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 가운데 있는 한옥이다. 처음 봤을 땐 마당에 버려진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폐가였는데, 동시에 아궁이의 흔적이 남아 있고 멋진 툇마루와 서까래가 잘 보존된 집이기도 했다.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현대식 설비와 구조를 더하면서 한옥의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고쳤다. 주방 천장은 서까래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주방 앞쪽에는 터닝 도어를 달고 뒤쪽에는 통창을 시공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앞마당의 화단과 뒷마당의 텃밭을 모두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나의 집 연대기는 경기도 외곽의 작은 원룸에서 시작됐다. 주방과 거실, 침실이 한 공간에 있는 방이었다. 다섯 평 정도의 작은 방은 머리맡에 옷걸이를 설치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어느 밤에는 얼굴 위로 쓰러진 묵직한 옷 더미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몇 년 후엔 주방과 분리된 1.5룸으로 이사를 갔다. 옷에 냄새가 밸까 봐 주방을 거의 사용하지 않던 나는 그때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욕조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간 후에는 다양한 욕실 용품을 사는 취미도 생겼다. 삶의 방식은 어떤 곳에 사는지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었다. 막막했던 마음이 공간을 따라 성장했다. 오랜 시간 도시 삶을 이어오던 내가 어느 날 돌연 시골에 집을 사게 된 건 지독한 번아웃 때문이었다. 직장생활한 지 10년 차 되던 해, 치열한 회사생활과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같이 ‘퇴사’ ‘휴직’ ‘한 달 살기’를 검색하다 우연히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처음엔 시골의 집 매물을 검색해 봤고, 나중에는 지방 곳곳의 집을 보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여러 집을 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세 가지. 옆집과 너무 붙어 있거나 너무 큰 마을에 속한 집이 아닐 것. 툇마루가 있는 한옥 형태면서 기본 골조가 튼튼한 집일 것. 서울에서 차로 두세 시간 내의 거리일 것. 막연하게 집을 다 고치고 난 뒤에는 영영 서울을 떠나 시골에 내려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물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시골생활에서 큰 위안을 얻었기 때문일 거다.
 
농사를 지으면서 같은 작물도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 역시 그렇다. 모두의 행복이 서울에 있거나 시골에 있지는 않을거다. 스스로를 행복과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잘 자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놓는 건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앞으로도 쭉 오도이촌 삶을 유지할 거냐고 물을 때면 아직도 나는 늘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지금처럼 시골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게 될지, 언젠가는 아예 시골에 자리 잡게 될지, 그것도 아니면 시골살이를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에서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과 삶의 균형을 실감하고 있다. 집 앞 냇가에 풍덩 뛰어들어 다슬기를 잡으며, 직접 키운 무와 배추를 수확해 김치를 담그며, 계절에 따라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자연을 생생하게 감각하며.
 
김미리 책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의 저자. 평일에는 리빙 MD로, 주말에는 작가이자 주말 농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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