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이 쿠커에서 구입한 상판과 뮬러 반 세베렌(Muller Van Severen)이 디자인한 알록달록한 패널로 조립해 완성한 싱크대. 모든 주방 집기가 손 닿는 곳에 걸려 있듯 그는 단순하고 효율적인 주방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싱그러운 홈메이드 요리를 선보이는 카페 아틀리에 셉템버와 아폴로 바 앤드 칸틴,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1층 카페테리아까지, 미식 도시 코펜하겐에서도 유독 많은 사람이 ‘단골’을 자처하는 공간을 완성한 프레데릭 빌 브라헤(Frederik Bille Brahe)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뜨거운 요리사다. 시그너처 스타일인 볼 캡과 티셔츠, 데님 팬츠 차림에서 짐작 가능하듯 유쾌한 에너지와 남다른 친화력의 소유자인 그가 지난 9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후 이번에는 코펜하겐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그의 패밀리 하우스로 〈엘르 데코〉 코리아를 초대했다.
심플하면서도 ‘쿨’하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프레데릭과 아내 캐롤라인, 큰딸 소냐와 막내아들 악셀의 보금자리는 18세기에 지어진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햇빛이 잘 스며드는 공간에서 피어나는 좋은 에너지 때문.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거쳐간 공간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이 좋았어요. 저와 아내는 바쁜 사람입니다. 뉴욕에서도 살았고, 일 때문에 가끔 베를린에서도 지내지만 이곳만큼 ‘집’처럼 느껴지는 공간은 없어요. 저희 부부가 팬시하거나 스타일리시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곳이죠.
파스텔컬러 러그를 깐 아이방처럼 알록달록한 패브릭이 집 안에 온기를 더하고 있다.
아늑하고 단출하게 꾸민 집은 거실과 부엌, 아이방으로 구성된 1층과 침실과 드레스 룸이 있는 2층으로 이뤄져 있다.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알록달록한 싱크대는 컬러와 소재 간의 창의적인 결합을 선보이는 벨기에 디자인 스튜디오 뮬러 반 세베렌의 솜씨. 코펜하겐 곳곳에 수많은 주방을 설계해 온 프레데릭이지만 지금의 부엌을 구상하고 구체화하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아시아와 유럽의 디자인 미학이 조화를 이루는 주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통적인 동양 가옥에서 볼 법한 나무 기둥 디테일과 마룻바닥을 그대로 살리고, 스칸디나비아 원목 가구와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알록달록한 오브제를 조화롭게 배치했죠. 조립식 가구에는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같은 현대적 소재를 가미해 실용성과 편의성을 높였고요.
루이스 폴센의 펜던트 조명과 마르셀 브로이어의 토넷 체어, 독특한 조형미를 뽐내는 샤히니언(Shahinian) 스피커 등 간결하고 실용적인 스칸디나비아 미학을 보여주는 아이템과 동양의 아트피스, 패브릭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풍경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다이닝 룸에 모인 프레데릭과 아내 캐롤라인 그리고 큰딸 소냐와 반려견 메스터.
아이들에게 친화적인 공간을 설계하는 일도 중요했다. 원래 꿈꿨던 커다란 주방에 대한 로망을 내려놓고, 주방을 단순한 ‘ㄱ’ 자 형태로 설계한 이유다. 패션 브랜드 카로 에디션(Caro Editions)을 이끌고 있는 아내가 원단 샘플을 뒤적이고, 딸 소냐가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신은 레서피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이닝 공간과 홈 오피스를 결합한 형태로 1층을 완성했다. 부엌과 층계, 옥탑방에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선반을 설치해 넉넉한 수납공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엄청난 수집가인 저와 아내가 플리마켓과 경매, 여행지에서 하나둘 모은 것이 아이들 장난감과 뒤섞이지 않으려면 무질서 속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결국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인테리어도 요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지난 한국 여행에서 술에 안주를 곁들이는 한국의 술 문화가 특히 좋았다고 회상하는 프레데릭에게 ‘페어링’이란 요리할 때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적용되는 중요한 키워드다. 신선한 재료로 최상의 시너지를 선보여 온 그가 서로 다른 미학과 철학을 품은 가구와 소품을 아름답게 배치하고, 자신의 취향과 가족의 편의를 조화시키는 데 집중한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이닝 공간 한켠에 마련한 개방형 서재. 따뜻한 우드 소재로 가득한 공간에 다양한 패턴의 쿠션과 오브제, 책과 그림이 기분 좋은 포인트가 돼준다. 시선을 잡아끄는 다이아몬드 테이블은 실험적인 아티스트 포스(Fos)가 코펜하겐의 갤러리 에타게 프로젝트(Etage Projects)와 함께 디자인한 것.
전통을 중시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어요. 어느덧 8년을 함께한 이 집 역시 우리 가족의 역사와 추억이 곳곳에 깃든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고 화목한 에너지와 타인에 대한 환대가 넘치는 집이었으면 좋겠고요.
깔끔한 화이트 톤으로 마감한 2층 풍경. 아이들의 장난감과 인형, 책들이 생동감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