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리에서 열린 펜디의 2022 F/W 오트 쿠튀르 쇼를 보던 중, 캐멀 코트를 입은 모델의 목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목걸이를 발견하고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조명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휙휙 달라지는 무지갯빛 광채가 화면을 뚫고 나올 기세였기에 ‘저건 분명 다이아몬드야!’라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쇼가 끝나자마자 펜디 최초의 하이 주얼리가 공개됐다는 소식이 SNS를 도배했다. 펜디가 일반적인 커스텀 주얼리를 넘어 파인 주얼리를 건너뛰고 곧장 하이 주얼리를 선보인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주얼리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주얼리는 최상급 원석을 공수하는 것부터 원석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형태로 연마, 광채를 최소한으로 가리는 세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고도로 숙련된 노하우와 장인 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주얼리 하우스에서도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한 번 선보이는 데 수 년이 걸리는데, 놀랍게도 최근 패션 하우스가 하이 주얼리의 영역을 활발하게 탐하기 시작했다. 루이 비통은 2018년 티파니 출신의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란체스카 암피시트로프를 시계 및 주얼리 부문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한 뒤, 올해 하우스의 네 번째 하이 주얼리 컬렉션 ‘루이 비통 2022 스피릿’을 통해 브랜드의 상징인 ‘V’ 이니셜을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해 대담한 하이 주얼리를 공개했고 연이어 하우스의 시그너처인 모노그램 플라워를 형상화한 다이아몬드 커팅을 선보여 온라인을 들썩이게 했으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직접 진두지휘하는 구찌는 2019년 세 개의 테마로 시작한 ‘호르투스 델리키아룸’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대폭 확장해 무려 다섯 개의 테마에 걸쳐 19세기 중반~1970년대에 이르는 시대적 모티프를 다채로운 컬러 스톤과 세팅 기법으로 구현해 본격적인 주얼러의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샤넬의 버지니 비아르는 오트 쿠튀르 쇼에 뉴 하이 주얼리 컬렉션 ‘1932’를 함께 스타일링해 런웨이에 올렸고, 돌체 앤 가바나는 알타 모다 쇼가 열리기 전날,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로타 데이 코르다리 동굴에서 새로운 ‘알타 조엘레리아’ 컬렉션을 선보이는 대규모 쇼를 열고 하우스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디자인에 이탈리아 전통의 보석 세공 기법을 접목한 하이 주얼리 피스를 선보였다. 패션 하우스가 이토록 하이 주얼리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이유는 뭘까? 더 이상 명품 가방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신흥 부자, 일명 ‘영 & 리치’의 안목을 만족시키는 ‘울트라 럭셔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하이 주얼리 시장은 최근 1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LVMH의 주얼리 & 워치 부문 매출이 지난해 대비 40%나 성장했고, 올해 5월 기준 국내 대형 백화점 네 곳에서 럭셔리 주얼리·워치 부문의 매출이 하이패션 부문을 한참 웃돌았다는 리포트가 발간된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 소리 나는 금은보화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하이 주얼리를 슈퍼카에 비유하곤 한다. 모두가 탈 순 없어도 누구나 욕망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다. 패션 하우스는 하이 주얼리를 통해 욕망의 사다리 중 가장 높은 칸에 올라서려 하고 있다. 이 진취적인 도전장은 전통적인 하이 주얼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유서 깊은 주얼리 하우스가 원석의 가치와 세공, 헤리티지에 집중하는 반면 패션 하우스는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진귀한 보석들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금고에 고이 보관됐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내는 하이 주얼리가 아닌, 보다 피부에 와 닿는 ‘패셔너블’한 하이 주얼리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고 있는 것. 케이트 블란쳇과 사라 폴슨, 리한나가 등장한 초호화 캐스팅의 블록버스터 영화 〈오션스 8〉이 까르띠에의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잔느 투상’의 이름을 딴 가상의 하이 주얼리를 훔치는 이야기였음을, 또 영화 〈도둑들〉 속에서 일확천금을 가져다 줄 보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물방울 옐로 다이아몬드인 ‘태양의 눈물’이 세팅된 목걸이가 등장한 걸 떠올려보면 기존의 하이 주얼리가 얼마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졌을지 추측할 수 있다. 반면 패션 하우스의 이름을 건 하이 주얼리는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펜디의 ‘더블 F’ 로고, 루이 비통임을 직감할 수 있는 날렵하고 각진 형태의 ‘V’ 모티프 등 특유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이 우리에게 익숙한 문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1932년에 하우스 최초의 하이 주얼리를 선보인 가브리엘 샤넬은 “여성의 손가락에 있는 주얼리가 리본 같았으면 한다. 내 리본은 유연하고 탈착도 가능하다” “나는 잠금장치가 싫다. 그래서 잠금장치를 없애고 변신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었다”는 말을 남겼다. 익숙한 틀을 부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그리하여 무한하게 변신하는 패션의 특성을 이토록 잘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이제 패션의 손길이 닿은 하이 주얼리계는 변화의 파도를 맞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