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조각 설치미술 작품에서 회화에 이르는 폭넓은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2011년 3월 퐁피두센터에서 〈My Way〉라는 회고전을 가진 최연소 작가이자 아시아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고,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2016년 〈Jean-Michel Othoniel: Black Lotus〉전, 2020~2021년 〈Jean-Michel Othoniel: New Works〉전을 개최했다. 그간 여러 곳의 파리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이어오던 오토니엘은 2018년 파리 동쪽 몽트뢰유에 대형 부지를 마련하고 창조적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동시에 거대한 스케일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스튜디오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장장 4년에 걸친 레너베이션을 마무리하고 대중에게 공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남들보다 일찍 초대받은 〈엘르 데코〉가 스튜디오에 들어선 순간, 눈에 띈 곳은 다름 아닌 아티스트 서적과 프린트 등을 판매하는 아트 숍이었다. 아티스트의 사적 공간인 줄 알았던 이곳이 곧 대중에게 개방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스튜디오는 공식 오픈 이후 대중에게 일부 공간을 개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 작업실은 이곳 스튜디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데,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스케치와 페인팅 작업을 겸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 아티스트와 스태프들은 5월부터 시작되는 프랑스 남부 오트리브(Hauterives)에 있는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Palais Ideal du Facteur Cheval)’ 110주년 특별전 〈물의 꿈 Le Re^ve de L’eau〉와 6월 16일부터 예정된 서울시립미술관의 〈정원과 정원 Treasure Gardens〉 전시 준비로 분주했다.
유리 조각 시리즈 ‘Noeuds Sauvages’.
장-미셸 오토니엘 스튜디오 내 그랜드 홀.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 110주년 기념 전시에 선보일 분수 작업이 한창이다.
스튜디오 곳곳에서 활기가 넘친다.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가
한쪽에서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 110주년 특별전에 설치할 분수를 조립하고 있다. 다른 쪽에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일 작품 60여 점의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곧 배에 실어 보낼 예정이다.
유리 구슬 시리즈에 사용될 각양각색의 재료들.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에서 개최될 〈물의 꿈 Le Re^ve de l’eau〉전을 위한 장-미셸 오토니엘의 드로잉.
6월 중순 예정된 서울시립미술관 〈정원과 정원 Treasure Gardens〉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모든 작업이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됐고, 전개 방식은 올 1월에 막을 내린 프티 팔레(Petit Palais)의 〈Le The′o re‵me de Narcisse〉전과 마찬가지로 미술관과 인접한 정원에서 전시를 시작해 자연스럽게 내부로 이어갈 것이다. 특별히 2개의 무한대 매듭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인데, 나의 매듭 시리즈는 전문 수학자와 함께 연구한 형태와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남다르다.
유리 벽돌 작업인 ‘The Big Wave’ 앞에 선 장-미셸 오토니엘.
아틀리에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Noeuds Sauvages’ 시리즈.
‘매듭’은 한국의 전통 수공예 기법이기도 한 걸 알고 있나
5~6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성들이 한국 전통 매듭을 만드는 서울 교외 공방을 방문한 적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 작품에는 매듭과 함께 무한대라는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번 서울 전시의 매듭 시리즈는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읽힐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훨씬 더 명상적 혹은 정신적인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스튜디오 꼭대기 층에 마련된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 작업실.
작품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변화야말로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전시다. 예전 퐁피두센터 회고전 〈My Way〉는 다양한 도시를 여행하며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일깨워줬다. 먼저 나라마다 비전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작품에 자신의 문화와 감정을 투영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만든 사물이 충분히 개방적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선보일 환상적인 정원 또한 다른 환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스튜디오 꼭대기 층에 마련된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 작업실.
‘Mirror Lotus’ 앞에 선 장-미셸 오토니엘.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은 소박한 우체부가 33년간 만든 곳이지만, 가우디 건축물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피카소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공간이다. 이곳에서 열릴 〈물의 꿈 Le Re^ve de L’eau〉전도 무척 궁금하다
이 궁전이 위치한 프랑스 중부 오트리브(Hauterives)는 내가 나고 자란 생테티엔(Saint E′tienne)과 가깝다. 매년 여름 이 궁전에 방문했을 정도로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110주년 기념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수락한 이유다. 하지만 원작자의 자유로움이 빽빽하게 채워진 곳에서 무언가를 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장소임은 분명했다. 우선 나는 페르디낭 슈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꼼꼼하게 분석하며 공부했고, 그가 궁전 주변에 여러 분수를 설치하고 그 분수들을 통해 장소들이 서로 소통하며 지속되길 바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었기에 당시 그 분수들은 결국 작동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아티스트의 꿈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해 전시 제목도 ‘물의 꿈’이라 지었다. 그가 꿈꿔온것처럼 궁전 곳곳에 작동되는 분수를 설치해 덥고 건조한 여름을 이색적으로 물들일 예정이다.
유리 구슬 시리즈 ‘Kiku Ayameiro’.
〈물의 꿈 Le Re^ve de l’eau〉전을 위한 분수 작업.
당신의 작업에서 재료만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컬러다. 이 전시에서 보여줄 색채는 어떤가
시간이 지나며 색이 전부 바랬지만, 이 궁전은 원래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고 들었다. 따라서 이전에 쓰였던 블루와 레드 컬러를 포함해 다양한 컬러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해 궁전 곳곳에 설치한 다음 이 유리 사이로 비치는 빛이 궁전 표면을 입히도록 만들 예정이다. 내가 제작하는 모든 조각품은 궁전이 가진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형태이고, 아주 조심스럽게 벽 사이, 돌 사이에 자리 잡아 이토록 완벽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아티스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작업실 안쪽에는 포토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구슬 모양의 초기 작업부터 최근의 벽돌 작업까지 아티스트로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업의 원동력이나 영감은 어디서 얻나
내 작품들은 여행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삶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만남과 문화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다. 처음 아티스트로 발판을 마련해 준 계기는 이탈리아 베니스였고, 후기의 벽돌 작업은 인도에서 시작됐다. 특히 벽돌 작업은 내 작업을 건축적 스케일로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는 것만큼 앞으로 나의 작업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보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