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가상현실 게임 세계로 간 여성들

수백만 여성들이 현실세계에서 결핍된 자유와 안전, 권한을 찾아 가상현실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 이것이 과연 소셜 미디어의 미래일까?

BY이경진2021.08.18
 
 
나는 늦은 밤 닌텐도 스위치 콘솔을 손에 들고 스마트폰을 통화 모드에서 스피커 모드로 바꾼 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동물의 숲〉) 앱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모두 현실에선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닌텐도 콘솔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이 게임의 요점은 바로 익살스러운 동물 이웃으로 둘러싸인 열대 섬에서 자신을 위한 ‘제2의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것. 〈동물의 숲〉 같은 가상세계가 이론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약속이다. 나의 외모와 주변 사람들, 얼마나 안전한 환경에 속할 것인지까지. 팬데믹과 정치적 분열, 일상화된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로 몸부림치는 현실에서 위안과 자유,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가상공간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쩌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멀티버스 가상현실 게임이 곧 차세대 소셜 미디어라고 예측한다. 여전히 틱톡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 중인 사람이라면 〈동물의 숲〉과 같은 다른 가상현실 비디오 게임을 받아들이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온라인 매체 〈테크 크런치 Tech Crunch〉 저널리스트 에릭 페컴은 이렇게 설명한다.
 
“멀티버스 가상세계는 물리적 현실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을 가진, 새로운 국가처럼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후 사람들은 좀 더 진화된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사람들을 사귀고 교류할 거예요. 지금 우리가 인스타그램, 트위터, 틱톡을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친구들과 힘을 합쳐 가상세계에 무엇을 건설하는 일은 아주 흔해질 거고요. 가장 인기 있는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벤트는 대중문화 뉴스의 기삿거리가 될 것입니다.” 가상세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곳곳에서 느껴진다. 일라이저 우드를 포함한 유명 인사들은 그들의 〈동물의 숲〉 타운에서 팬들을 만났다. 미국의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이하 AOC)는 2020년 5월에 선거운동의 일부를 이 게임에서 했다. AOC 캐릭터는 ‘AOC!’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과일을 교환하며, 상호작용 영역에서 자유 게시판 메모에 서명했다. 〈동물의 숲〉은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는 유저들의 플랫폼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 이 앱은 중국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삭제됐다.
 
80년대와 90년대에 실리콘 밸리의 기술 산업은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메타버스란 현실세계와 매우 비슷해서 두 세계 간의 구분이 무의미한 가상세계다. 그러나 사이버 문화를 선도하는 전문가들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만남에 대한 개념화에서 벗어나 ‘멀티버스’의 출현에 집중했다. 온라인 세상은 이미 그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과 혼합돼 있다. 소셜 미디어의 출현 이후 거의 모든 사람이 오직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자신의 분신을 갖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판타지 비디오 게임에서 기술적으로 향상된 내 아바타 이미지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일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테크 플랫폼에서 뜻이 맞는 타인들과 유대관계를 추구하는 것과 과연 다를까? 대답은 갈수록 ‘아니오’로 기운다. “많은 첨단기술산업 관계자와 미래학자들은 가상현실에서 영화 〈아바타〉 같은 미래 세상을 생각했지만, MZ세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온라인 표현을 창조해 냈어요.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에서 필터링된 자신의 모습처럼요. 우리에게는 가상공간에서 살고 있는 제2의 인생이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이 예측한 대로 반드시 3D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죠.” 스토리 디자이너이자 미래주의 소설가인 리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끝없는 영상통화, ‘줌’으로 술 마시기,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생경한 공연과 전시회, 수업을 통해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가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짝 맛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빨리 노트북을 닫고 서둘러 밖에 나가려고 필사적일 때, 어떤 이들은 강요된 시간을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이겨냈다. 〈뉴욕 타임스〉에 자신의 작품을 게재하는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인 35세의 루이즈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영국 브라이튼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2000년대에 게임 〈세컨드 라이프〉의 유저였다. 최근 그녀는 록다운 동안 외로움을 느낄 때, 다시 〈세컨드 라이프〉 게임을 했다. 루이즈가 “과장된 〈더 심스 The Sims〉”라고 묘사하는 이 게임은 요즘의 가상세계 게임들과 비교하면 구시대적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다. 개발 회사에 따르면 2020년에 총 90만 명의 유저가 이용했으며, 그 수는 팬데믹 동안 조금 더 늘어났다. 특히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커뮤니티와 소속감을 대안적 세상에서 찾고 싶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런던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들의 공간이 줄어들고 있거든요. 특히 여성들의 공간은 많은 곳이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있는데, 이 커뮤니티들이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여전히 번창해요. 비록 컴퓨터로 만들어진 이상한 세계지만요.” 루이즈는 말했다. 나는 〈세컨드 라이프〉 속에서 루이즈를 만났다. 우리는 플랫폼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잠시 동안 채팅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라운지 음악이 흐르는 호화로운 레즈비언 찻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다음으로 우리는 지하의 고스족 클럽을 방문했다. 클럽에선 2000년대 인더스트리얼 뮤직을 틀었는데, 듣자마자 내면에 잠재된 별난 10대 청소년의 자아가 깨어났다. 나는 20분 동안 여러 가지 춤을 추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울하게도 최근 몇 달 동안 내가 가진 최고의 밤이었다. 이 가상세계의 아바타 고객들 사이에는 진정한 즐거움과 흥분이 퍼져 있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모여봐요 동물의 숲〉

〈포트나이트〉.

〈포트나이트〉.

 
우리가 서식지로 선택한 가상세계가 인스타그램이든 〈동물의 숲〉이든 이 사이버 공간에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 있다. 
 
과연 가상공간은 짜릿할 정도로 평등한 세상일까? 편견이 존재하지 않고, 원한다면 누구든지 될 수 있으며, 젠더와 인종·연령·능력 등 현실 요소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곳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종종 가상세계 속으로도 우리를 따라온다. 나는 낯선 남자가 가상의 로비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2시간 동안 따라다니며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낸 사건(당시 나는 14세였다) 이후로 지금까지 비디오 게임에서 음성 채팅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여성과 유색 인종, 소외된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명예 훼손이나 괴롭힘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트위터에는 당신의 트윗에 “음, 사실은…” 하면서 가르치려 드는 남자가 있고, 〈포트나이트〉 같은 가상세계에서는 멍청한 10대 소년이 여자와 한 팀이 됐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첨단 기술은 종종 현실의 편견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가상세계에서 늘 발견하는 것은 가능성이다.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의 본모습과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동물의 숲〉에 있는 내 개인 소유의 열대 섬에서 내가 선택한 친구들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2019년, 두 명의 〈세컨드 라이프〉 플레이어가 대서특필된 적 있다. 41세의 켈리 섹스턴과 30세의 닉 본 애스턴은 온라인에서 수년 동안 아이 한 명을 둔 부부로 롤플레잉 게임을 한 후, 현실에서도 눈이 맞아 서로의 배우자를 떠났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가상세계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사적 영역을 만들고 있다. 이런 만남은 곧 일상의 표준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상의 환경을 통해 미래 파트너의 언어 구사력, 취향, 패션 스타일을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 볼 수 있다. 어쩌면 DM을 주고받는 것보다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이 간파할 수 있으면서도 실제 만남보다 위험도는 여전히 더 낮다. 만약 관계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냥 ‘나가기’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멀티버스가 가까운 미래에 현실세계의 자리를 빼앗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실의 난잡한 물리적 혼돈 속에 존재하면서도 자신의 분신을 만들고, 스크린 뒤에 있는 세상을 선별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서식지로 선택한 가상세계가 인스타그램이든 〈동물의 숲〉이든 이 사이버 공간에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 있다. 사이버 공간은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 경험을 계속해서 바꿀 것이다. 지금 당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