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언론 불신의 시대에 대해, 현직 기자가 말하다 #엘르보이스

초년생 기자 시절, 내가 울면서 배웠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BY이마루2021.08.15
 

울면서 배웠는데

 
“새벽에 머리를 감다가 토가 나왔다.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배우 진기주 씨가 강원도 민영방송 기자로 입사했다가 얼마 안 가 퇴사한 배경에 대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취재하고 교육받느라 잠잘 시간도 없이 머리만 겨우 감았다고 했다. 아마도 전국의 수많은 기자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지 알지, 그 마음 알지’라고 맞장구쳤을 것이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자 교육 시스템은 완전히 도제식이다. 정확히 가르쳐주는 건 없고 혼만 낸다. 속칭 ‘하리꼬미’라고 한다. 수습기자는 짧게는 1~2주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배정받은 관내 경찰서·소방서·검찰청·법원·장례식장 등을 돌며 밤사이 사건·사고는 없었는지, 기삿거리를 찾아 돌아다녀야 한다. 이때 1진(직속 선배)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넌 그게 안 궁금하냐?”다. 왜 더 구체적으로 취재하지 않았느냐는 타박이다. 예컨대 수습이 딴에는 6하 원칙에 맞게 “A가 모처에서 피자를 시켜 먹다가 급체해서 병원에 실려갔답니다”라고 선배에게 보고했다고 치자. 수습은 몇 날 며칠 경찰서 숙직실 앞에서 문전박대당하고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말만 들은 채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다가 건진 (그나마) 귀한 정보에 신이 난다. 하지만 1진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피자 브랜드와 메뉴, 사이즈는 정확히 뭐고, 음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있다면 몇 개나 있었는지, 배달원 전화번호는 확보했는지…. 추가 질문을 끝없이 던지다가 “취재 이런 식으로 할래? 30분 뒤에 다시 보고해”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통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런 것까지 굳이 왜 물어보나’ 싶을 것이다. 선배들이 훈련 목적으로 지나치게 괴롭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1년만 기자생활을 해보면 왜 이런 훈련 문화가 생겨났는지 이해하게 된다. A가 정말로 ‘단순히’ 체했나, 혹시 피자나 음료에 이물질은 없었나, 함께 자리한 사람 사이에 또는 피자 가게 사장과 원한 관계는 없는지까지 확장해서 일일이 점검해 보려면 수많은 디테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A가 체했다’는 1차 정보는 대부분 경찰이든 누구든 제3자의 전언이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말만으로 정확한 기사를 쓸 수 없다. 사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 목격자 등 접점을 넓혀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끊임없는 크로스 체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돈이 든다. 회사 입장에서 기자 월급은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이다. 반면 언론사의 수입은 갈수록 줄어든다. 더 이상 사람들이 신문을 돈 주고 사보지 않고, TV가 아닌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소비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도의 정확성과 완성도를 높일 시간에 지면이나 온라인에 콘텐츠를 빨리 만들어내는 것이 그나마 즉각적인 매출에 도움이 된다. 이로 인해 매체 전반에 걸쳐 기자들이 하루에 소화해야 할 기사 양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늘었다. 정치인 한 명에게 어떤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인지, 부처 관계자 등에 확인하다 보면 금세 다른 매체에서 그 한 사람의 말만으로 기사가 난다. 점점 더 많은 정치인과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이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기자들은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페이스북을 또 열심히 체크한다. 개인의 일방적 주장은 그렇게 언론 매체의 기사가 된다. 요즘에는 누가 썼는지 특정되지도, 진위조차 알 수 없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의 글도 기사화된다. 클릭 수 경쟁에 따른 슬픈 단면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인 세 명 중 단 한 명만이 언론을 신뢰한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46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38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편으로 기자로서 속상한 마음도 든다. 언론사들은 표피적인 클릭 수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 양질의 보도를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하려는 노력도 한다. 회사마다 돈이 안 되는 탐사 팀을 운영하고, 환경 보호나 노동권 등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주제에 몇 달씩 추적 보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콘텐츠가 훨씬 더 대중의 이목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그래서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자들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감히 부탁하고 싶다. 모든 기업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소비자들이 자극적인 막말이나 흥미 위주의 사건·사고 기사나 영상을 클릭하는 대신, 공들인 콘텐츠를 알아봐준다면 언론사는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좋은 기사를 발견했다면 마음껏 ‘공유’해 주시길!  
 
심수미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받은, 언론 최전방에 서 있는 JTBC 기자. 30여 년간 인권의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