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찐 북튜버 김겨울이 꼽은 여성과학자 책! #엘르보이스

우리나라에도 여자 과학자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

BY이마루2021.08.12
 
 

당신의 과학자를 떠올려보세요

 
유구한 넌센스 퀴즈가 있다. 아들과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 병원에 실려갔다. 그런데 환자를 본 의사는 자신은 수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을 직접 수술할 수 없다면서. 어찌 된 일일까? 이것도 문제라고 냈냐는 표정으로 답할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의사가 엄마인가 보지!” 여성 의사상(象)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덕이다(물론 그 의사가 아버지의 남편일 수도 있지만!).
 
최근 여성 과학자가 쓴 책을 연달아 읽었다. 심채경 천문학자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와 문성실 미생물학자가 쓴 〈사이언스 고즈 온〉이다. 〈랩 걸〉과 〈유리우주〉 등 여성 과학자를 다룬 책을 읽은 적 있지만, 이 책들은 우리나라 저자가 썼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과학자를 떠올릴 때 여성을, 그것도 동양 여성을, 나아가 한국 여성을 떠올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책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다르면서 비슷하다. 저자 한 명은 한국에서 연구하는 천문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미국에서 연구하는 미생물학자다. 두 사람 모두 학부 때부터 평생을 과학에 매진해 왔고, 결혼해 자녀를 두고 있다. 여성 과학자로서 적지 않은 편견과 마주해 왔다. 악의 없는 편견, 숨 쉬듯 존재하는 편견. 심채경 천문학자는 이야기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저녁 회식 자리에서 만난 동료가 내게 ‘애는?’ 하고 물었다. 우리 애 지금 00개월인데 요즘 말이 늘어서 질문에 대답하느라 바쁘다 했다. 그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 질문의 속뜻은 ‘이 시간에 네가 여기 있으면 지금 애는 누가 보니?’였다.” 문성실 미생물학자는 말한다. “그렇게 내 앞에 가던 언니들은 사라졌다. 한때 내가 우러러보던 언니들 말이다. 우리 과는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학업 성적도 여학생들이 더 높았고 여학생의 대학원 진학률도 높았다. 그렇게 과학계 어딘가에서 앞서 걸어갈 줄 알았다. 함께 석사를 졸업했던 동기들은 어디 있지? 내 후배들은?”
 
여성 과학자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에 대해서는 김상욱 물리학자도 이야기한 바 있다. tvN 〈알쓸신잡3〉에서 김상욱 물리학자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과학계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인지 자체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과학에 열정을 가진 여성들은 늘 있었다. 다만 예전에는 과학고에 여자 화장실이 없었고,  여자 기숙사가 없었을 뿐.
 
두 책에서도 저자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열정이 점점이 묻어난다. 어떤 것을 향한 사랑은 꼼꼼함과 비례하기 마련인데, 두 저자 모두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 연구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세심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게 느껴진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밤새워 우주를 관측하는 천문대의 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고즈넉한지 이야기한다. 〈어린 왕자〉를 읽을 때마다 솟구쳐 오르는 천문학자로서의 직업병과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의 근사함을 고백한다. 문성실 미생물학자는 처음 보는 1.5ml 튜브를 휴지에 곱게 싸서 가져가던 학부 시절의 설렘을, 피페팅을 하느라 닳아버린 손목을, 바이러스를 실패 없이 배양하는 손맛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과학자였고, 과학자이며, 과학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두 권의 책은 비단 ‘여성 과학자의 책’만이 아닌, 과학자가 쓴 훌륭한 에세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일반 독자에게 이 책들은 친근한 길잡이가 돼준다.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코로나19 백신은 실제로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가? 과학자가 된 사람들은 어떤 학부 시절을 거쳤는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책 속에 들어 있다. 우리를 위한 친근한 언어로.
 
나도 그런 열정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지금은 북튜버이자 작가로, 문학을 읽고 문예지에 글을 쓰기도 하는 사람으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실은 고등학교 때 이과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가 좋았고, 화학이 좋았다. 직관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우주의 작동 원리가 재미있었고, 원소가 붙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물질이 되는 원리가 흥미로웠다. 내가 사는 세계가 실은 에너지와 장과 원소로 구성돼 있다는 건 얼마나 흥분할 만한 사실인지.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성별에 따라 이과와 문과로 분반했는데, 여자 이과 반은 전체에서 겨우 두 반에 불과했다. 그것도 한 반에 25명이 채 못 됐다. 한 반에 평균적으로 30명 정도 있었던 시절이다. 나는 이것이 타고난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과학자를 떠올려보자. 우리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 여성 과학자의 모습이 이토록 부족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결과다. 요리 프로그램이 유행하면 셰프가, 유튜브가 인기면 크리에이터가 장래 희망 1위를 하는 것처럼.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여성이라는 사실도, 인류 최초 달 착륙 궤도 계산을 여성이 했다는 사실도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적은 수일지라도 여성들이 과학계에서 최선을 다해온 역사가 있다. 과학자를 떠올려보자.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여성을, 우주를 관측하는 여성을, 수식을 계산하는 여성을, 데이터를 다루는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날 미래의 여성 과학자들까지도.
 
김겨울 유튜버이자 작가이자 라디오DJ.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MBC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책의 말들〉,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