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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이 가장 최근에 간 전시, 나도 가볼까!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_인싸 전시 #21

살아 본 적도 없는 시대에 대한 낭만.

BY김초혜2021.02.19
 김환기, 달밤, 1951, 종이에 유채, 50x50, 개인 소장

김환기, 달밤, 1951, 종이에 유채, 50x50, 개인 소장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1930년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현대성’의 징후들을 이미 체험하고 거기에 반응한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실험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시기는 흔히 ‘암흑’의 시대로 인식되어 왔지만, 그 속에서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는 서양의 문화적 충격에 직면해 최첨단의 ‘아방가르드’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애쓰며 교류를 나눈 눈부신 시기이기도 하다. 그 흔적을 그림, 글, 영상, 서신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전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가 한국 근대미술을 전문으로 소개해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다. ‘옛것’을 다루는 이 전시는 뜻밖에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아트 러버로 유명한 BTS의 RM이 다녀가기도 했다. 전시는 미술 작품 140여 점과 서지 자료 200여 점을 펼쳐 보이는 방대한 규모로 4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꾸려졌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전경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전경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전경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전경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 전경
 
1934년 ‘모던 보이’ 이상은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이곳에서 문인들과 화가들은 경성에 시차 없이 소개된 장 콕토의 영화 등을 보며 최신 예술 사조를 논했다. 제1전시실에서는 제비를 둘러싼 예술가들의 네트워크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적 실험을 조명한다. 절친했던 화가 구본웅과 이상이 지금의 서촌 거리를 거닐며 서로의 세계를 응원했던 흔적은 야수파의 강렬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상의 초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판인으로 활약했던 조풍연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 화가들이 선물한 화첩에는 길진섭, 김환기 등 쟁쟁한 화가들이 축복의 의미를 담아 그린 다정한 그림들이 실렸다. 1920~1940년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린 신문소설의 삽화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제2전시실은 그림 한 점 없는 지상(紙上)의 미술관으로 꾸렸다. 뱅커스 램프 아래서 한 시대를 풍미한 삽화가들의 흔적을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 자체로 예술인 아름다운 장정의 책들을 원본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백석의 유일한 시집으로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꾸밈을 하지 않아 더욱 존재감이 빛나는 〈사슴〉, 괴석 옆에 핀 진달래꽃을 그린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의 원본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라는 이태준의 〈무서록〉 한 구절을 실감케 한다.
 
이중섭_시인 구상의 가족, 1955, 종이에 연필, 유채, 32x29.5cm, 개인 소장

이중섭_시인 구상의 가족, 1955, 종이에 연필, 유채, 32x29.5cm, 개인 소장

 
시인 백석의 수려한 외모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당대 최고의 삽화가인 정현웅은 백석의 옆얼굴을 그리며 이렇게 썼다.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은 조상과 같이 아름답다. 미스터 백석은 서반아 사람도 같고 필립핀(필리핀) 사람도 같다. 미스터 백석에게 서반아 투우사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1934년 백석은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여기서 발행한 자매지 〈여성〉의 편집장이 되었는데 그때 정현웅과 한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문인과 화가들의 개별적인 관계를 조명한 제3전시실에서는 이 무렵 백석이 발표한 그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정현웅의 삽화가 결합해 실린 1938년 3월호 〈여성〉의 아름다운 페이지를 감상할 수 있다.
 
천경자, 정원, 1962, 종이에 채색, 130x162, 개인 소장

천경자, 정원, 1962, 종이에 채색, 130x162, 개인 소장

 구본웅_친구의 초상, 1935, 캔버스에 유채, 62x5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구본웅_친구의 초상, 1935, 캔버스에 유채, 62x5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던 화가들의 글과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제4전시실에서는 장욱진, 천경자, 김환기 등을 만난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날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던 김환기는 여러 시인들과 가깝게 지냈다. 특히 김광섭과는 뉴욕에 머물던 시기 자주 편지를 교환했고 1970년, 그가 죽었다는 오보를 접하고 슬픔에 겨워 김광섭의 시구절에서 따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 전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김환기를 대표하는 ‘점화’의 시작이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요새 제 그림은 총록홍. 점밖에 없어요. 왼편에서 수평으로 한줄기 점의 파동이 가고, 또 그 아래, 또 그 아래, 그래서 온통 점만이 존재하는 그림이야요. 이 점들이 내 눈과 마음엔 모두가 보옥으로 보여요.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창밖에 빗소리가 커집니다.’  
 
 
5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